지난 주 중부 지역에서 공부하는 둘째 애가 한 주 정도 시간을 내서 집에 왔다.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난 이후 날이 갈수록 더 보기 힘들어 온 녀석이라 이번에 꼭 하루 정도는 둘이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2-3일 시간을 내서 겨울 바다라도 같이 다녀오고 싶었는데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바쁘다는 것이다. 그저 하루라도 감사해야 했다.
대신 데이트를 알차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에 워싱턴 D.C의 한 미국 성공회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저녁에 볼티모어 시내에서 흑인 작곡자들의 음악 공연을 보고, 공연장에서 가까운 터키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밤 늦게 집에 돌아 올 때까지 빠듯하게 일정을 준비했다.
찾아가 예배를 드렸던 성공회 교회는 1842년에 세워진 교회였다. 시내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교인들은 많지 않았다. 교인들의 헌금만으로 재정적 자립은 어려울 듯 보였다. 그래도 인근의 무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었다. 교인들 가운데 흑인 무숙자들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백인들이고 평균 연령은 높아 보였다. 여성 목회자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띄였다.
예배 후 점심 식사를 위해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예전부터 우리 집 애들은 그 곳의 한 허름한 지하 식당에서의 탕면(湯麵)과 만두를 좋아했다. 탕면에 중국식 고추가루 소스를 듬뿍 넣어 먹었다. 담백하면서도 얼큰해진 국물에 속이 확 풀리듯 시원해졌다. 전 날 밤 늦게 까지 있었던 친구 약혼 파티 참석으로 두통을 호소했던 둘째의 표정도 한결 편해 보였다.
그런데 이날 가장 의미가 컸던 것은 구 대한제국공사관 방문이었다. 작년 5월에 박물관으로 개관한 그 곳을 해를 넘기지 않고 가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일요일이었지만 안내인이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청나라에서 조선이 미국으로 공사를 파견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던 이유가 충격적이었다.
1882년에 청나라는 미국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일본의 조선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중재했다. 그 조약에 의거해 미국은 다음 해에 공사를 조선에 파견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조선이 미국에 직접 조선의 외교관을 파견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이유는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조선은 청나라가 제시한 ‘영약삼단’ 원칙을 받아들이겠다고 하고서야 1887년에 박정양을 전권공사로 보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조선의 외교사절은 첫째,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둘째,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공사의 밑에 자리를 잡는다 . 셋째, 중대사건이 있을 때 반드시 청국공사와 미리 협의한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말 주권 국가로서는 치욕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박정양은 이를 무시하고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청국 공사 없이 미 국무성을 방문했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날짜를 잡아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청나라 공사는 박 공사에게 따졌다. 그러나 박정양은 본국을 떠나 올 때 정부의 지시를 자세히 받지 못하고 왔다며 굴욕적인 영약삼단 원칙을 끝까지 따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청국공사와의 불화 등이 문제가 되어 부임한지 10개월 만에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이러한 설명에 강대국들에 에워싸였던 구한말 조국의 약한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후 130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그 때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의문도 찾아 들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남-북한이 정말 얼마나 자유롭게 주권을 행사 할 수 있을까. 남북의 대화가 협의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미국과 중국의 사전 동의나 사후 승인 없이 과연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조공과 책봉의 역사 하에 한반도를 속국으로 간주했던 중국의 기본적인 태도도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나. 그리고 그런 면에서 미국은 과연 중국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물음에 이르러서는 자괴감이 든다. 언제나 우리 조국도 주위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미국에서 태어난 둘째 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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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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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미국이 영토적 야욕이 있었다면 멕시코와 중미국가들은 오래전에 미국의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일은 있어도 영구적인 영토화는 안한다. 착취와 수탈을 하지 않으며 현지인 스스로 자립할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