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지나는 동안 가장 감명 깊었던 날은 4.27 남북평화 선언의 날이었다. 문재인 김정은 두 지도자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한 가운데 멈춤 턱을 서로 넘기를 권하며 거닐던 장면은 우리 역사에 찬연히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전경은 우리 민족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잊히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조짐들은 벌써부터 염원의 기대치에 맥을 풀어 놓고 있다. 남북 우리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보수, 진보라는 눈먼 증오에서 깨어나고 있지 못한 탓일까. 광풍처럼 쉴 새 없이 몰아닥치고 있는 외부압력 탓일까. 4.27 감격에 뜨겁고 달콤한 입맛을 채 다시기도 전에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쉴 새 없는 황당한 충동들,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파워게임, 다양한 트집들로 극한 언사들이 난무하는 장면은 우리의 정확한 진단을 결코 허락하지 않고 있다. 핵폭탄보다 더 엄청나다는 북한 소유의 ‘생화학무기’는 어떻게 처리되었으며 우리가 그렇게도 격렬히 비난하던 30여개의 땅굴들을 도대체 어떻게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과연 핵무기만이 남·북 사이에 문제란 말인지, 핵무기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가 바로 통일의 길로 평화의 길로 간다는 것인지, 남북과 이해관계 당사국들의 꿍꿍이속을 가늠하기가 힘들어 불안요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먼저 남북은 양측이 갖고 있는 헌법조항을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 2년 전 북한이 채택하고 명시해 놓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핵보유국이다”라는 조항과 남한은 헌법 영토주권 조항에서 “북한은 한반도 내의 불법단체”로 규정해 놓은 조항을 수정이 아니라 완전 삭제해 버려야 한다. 양측이 이런 조항들을 방치한 채 우물쭈물 협상 등 교류를 진행하는 것은 진정성이 인정되지 않고 결렬의 여지만 보장하고 있는 형태다.
오늘날 한반도의 신세가 19세기 구한말의 운명과 너무나 흡사한 것도 불길한 예감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그래도 그 당시 우리는 분단 상태는 아니었다. 그 당시 만주를 석권하려는 소련과 일본은 방어와 침략의 수단으로 한반도를 먼저 수중에 넣으려고 각축전을 벌였고 청나라는 나름대로 한반도를 장악하여 일본과 미국의 공세를 차단하려 했었다.
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했지만 그것은 중국대신 자기편을 끌어들이려는 일본의 간계였다. 중국은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하응)을 납치해 산동성 한 촌락에 위리안치 시켜놓고 온갖 압력을 가해왔다. 이후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등 온갖 도를 넘은 만행을 서슴치 않는다.
할 수 없이 우리 조정은 미국 교육을 받은 민영환(충정공)을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특사로 보내 구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일언지하에 도움을 거절하고 태프트 국방장관을 일본에 보내 한반도 보호를 인정한다는 조약을 맺는다.
이른바 그 악명 높은 ‘가쓰라-태프트 조약’이다. 이후 일본은 고종황제를 겁박하고 이완용 등 주구들을 사주하여 을사보호조약을 맺게 한다.
민 충정공은 45세 나이로 자결하고 대한제국 군대는 해산 당한다. 일본은 우리 외교권뿐만 아니라 모든 주권을 강탈하고 한일병합을 진행한다.
그 후 우리는 김일성이 공산주의를 끌고 들어와 북한 땅을 점령하고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자유민주주의를 들여와 남한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6.25 사변 때 북한이 거의 대한민국과 미국에 의해 점령될 뻔 했으나 소련으로부터 대량의 무기를 원조 받은 중공군이 인해전술(무한자폭전술)로 맞서는 바람에 통일의 좋은 기회를 놓치고 다시 분단의 현실로 돌아와 있다.
그간의 우리 역사를 냉정한 눈으로 반추해 보자. 어느 나라가 우리의 통일을 열망하겠는가. 휴전기간에만도 남한은 574회, 북한은 4,300여회의 휴전협정을 위반했다. 참으로 길고도 살벌한 동족간의 극한대치 기록이다. 남북이 만나는 것, 철도건설, 라면상자 건네는 것 까지도 우리 맘대로 할 수 없고 모두 일일이 감시당하고 허가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인접국 일본은 핵항모 건설을 준비하는 등 군국주의 부활에 혈안이 돼 있고 중국은 미국과 맞서 패권상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소련은 신 동방정책으로 한반도를 첫 상륙목표로 삼고 있다. 이 틈새에 우리 한반도가 분단 상태로 놓여 있다. 분단 상태란 외세가 우리를 요리하기 좋은 신세임을 상징한다. 동맹국도 우호관계도 우리가 아닌 남인 것을 정신 차리고 실감해야 한다. 우리는 우수한 슬기와 지혜가 있는 민족이다. 이심전심 총 단결하여 중도의 길로 가자. 새해에는 힘차게 평화와 통일의 길, 새 역사를 써나가자.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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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자유광장 회장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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