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텔부터 형광까지 다양한 색·화려한 패턴 등장
▶ 남성들 패션 소품으로 각광 양말같은 ‘삭스 슈즈’열풍도
발의 위생과 안전을 담당했던 양말이 다양한 디자인을 입고 당당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맨플로어 제공>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신었던 상공을 가르는 전투기 무늬가 새겨진 양말. <연합>
화려한 패턴의 양말은 시선을 사로잡기 좋다.<사진=맨플로어 제공>
옷과 비슷한 계열의 단색 양말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사진=맨플로어 제공>
색감이 강렬한 양말은 활기차 보인다. <사진=맨플로어 제공>
양말의 위상이 달라졌다. 위생과 안전의 용도로 신었던 양말이 패션을 완성하는 대체 불가한 아이템이 됐다. 땀을 흡수하고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던 양말은 이제 옷에 활기를 더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존재다. 기능적으로는 신발의 영역을 탐하고, 의미적으로 정치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과거 양말은 발을 감추고 보호하는 기능에 치중했다. 발바닥과 발가락만 감싸 신발을 신으면 맨발처럼 보이는 덧신 양말, 발가락 하나하나 들어가게 만든 기능성 압박 양말, 부드럽고 두터운 극세사 소재의 수면 양말 등이 양말의 지평을 넓히긴 했다. 그래도 양말 본연의 기능을 넘어서진 못했다. 양말은 어디까지나 양말이었다.
다양해진 양말 디자인… ‘삭스 슈즈’도 등장
양말의 대명사가 검정 양말이던 시절은 저물었다. 요즘 양말의 변신은 놀랍다. 파스텔부터 형광까지, 다양한 색을 입었다. 패턴과 길이, 형태도 자유로워졌다. 발렌시아가, 베트멍, 구찌,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들은 한껏 힘 준 양말 컬렉션을 내놓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니클로를 비롯한 몇몇 패션 브랜드는 양말 디자인 전담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해외 브랜드 양말을 판매하는 양말 전문 편집숍도 호황이다.
요즘 양말은 신발 안에 숨은 존재이기를 거부한다. 신발의 기능을 입고 세상에 나왔다. 양말 밑에 운동화 밑창을 덧댄 모양의 ‘삭스 슈즈’가 그렇다. 양말 같은 신발 혹은 신발 같은 양말이다. 양말처럼 신는데, 신고 나면 신발이다. 발렌시아가의 삭스 스니커즈는 60만원대라는 고가임에도 올해 초 전세계적으로 품절됐다. 삭스 슈즈 열풍은 올 겨울에도 뜨겁다.
양말은 오랜 기간 푸대접 받았다. 신발 벗는 식당에서, 초대 받은 집에서 양말을 내보이는 건 어쩐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양말로 개성을 드러내는 건 물론이고 정치적 메시지도 전달한다. 지난달 숨을 거둔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양말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때와 장소에 걸맞은 디자인의 양말을 갖춰 신어 화제가 됐다. 고인은 “나는 자칭 양말 맨이다. 더 화려하고 밝고 패턴이 현란할수록 좋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세상 떠나는 마지막 길에도 양말을 골라 신었다. 유족은 미 해군 조종사 출신인 고인의 입관식 때 공군 전투기가 상공을 가르는 무늬가 들어간 양말을 신겨 주었다.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양말 정치’로 유명하다. 그는 취임 후 첫 장관회의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고 붉은색 바탕에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잎 무늬가 그려진 양말을 신었다.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는 나토 깃발 모양이 새겨진 짝짝이 양말로 눈길을 끌었고, 올 초 다보스 포럼에서는 보라색 바탕에 노란 오리가 그려진 양말을 맞춰 신었다. 뉴욕타임스는 “트뤼도 총리는 독특한 양말을 활용해 젊고 새로운 리더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며 “양말은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지드래곤, 한혜연 등 유명 인사들이 방송에서 양말 예찬론을 폈다.
가성비 좋고, 남성 수요 늘고 양말이 패션의 중심에 선 건 ‘나’를 표현하는 데 익숙한 세대가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아이템이어서다. 패션 양말의 평균 가격은 1만원 안팎. 수십 만원의 명품 양말도 있긴 하지만, 개성을 보여주는데 1만원이면 충분하다. 옷, 신발, 가방에 비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양말의 디자인이나 색상, 소재를 바꾸면 같은 옷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며 “양말은 패션에 포인트를 더하는 것뿐 아니라 패션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특히 남성들이 양말에 눈 뜬 것이 양말의 지위를 끌어올렸다. 귀걸이, 목걸이, 신발, 가방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여성에 비해 남성의 패션 연출은 단조로웠다.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남성의 갈증을 양말이 해소해 줬다. 양말 편집숍 맨플로어 관계자는 “무채색 정장을 주로 입는 남성에겐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액세서리가 별로 없다”라며 “양말은 실용적이면서 자신의 취향을 재치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달 들어 경기 안산, 서울 청량리 등 지점에 양말 전문 매장을 열었다. 정두나 롯데백화점 패션 바이어는 “다양한 양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문 매장을 확대하는 추세”라며 “익살맞은 캐릭터나 화려한 패턴이 들어간 양말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보자는 원 포인트로 센스 있게 챙겨 신자니 낯설다. 양말, 어떻게 신어야 할까. 양말 패션 초보자라면 처음부터 화려한 무늬를 고르기보다 단색 양말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입은 옷과 비슷한 계열의 색상을 선택하면 실패 확률이 낮다. 조금 튀어도 괜찮다. 밝은 색 양말은 밋밋한 패션에 포인트가 된다. 단색을 선택하되 자수 로고나 작은 무늬가 박혀 있는 디자인을 고르면 은은한 멋이 난다.
좀더 용기를 내 강한 패턴의 양말을 신기로 했다면, 옷은 심심하게 입는 게 좋다. 이선경 맨플로어 관계자는 “무늬 없는 옷에 강한 패턴의 양말을 맞춰 신으면 전체적으로 패션에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며 “무채색 옷을 많이 입는 겨울엔 과감하게 컬러나 패턴의 양말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검은 남성 정장에도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양말이 잘 어울린다. 트뤼도 총리의 발목을 참고하자. 정두나 바이어는 “클래식한 옷에 튀는 양말을 매치하는 것이 요즘 유행”이라며 “꽃무늬나 땡땡이, 로고나 활자, 캐릭터 등이 새겨진 양말을 신고 발목을 한껏 드러내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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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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