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은 현재진행형의 활화산
▶ 체제 선전화라는 고정관념 뒤집어 제대로 평가해야
문범강 교수(왼쪽)가 2018년 펴낸 북한미술 전문서적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
우리에게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이기도 한 북한, 가장 폐쇄적이며 베일에 쌓여 있던 북한의 미술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며 남북 화해, 민간 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준 문범강 교수. 그는 2018년 봄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를 출간하며 한국에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켰다. 저서는 지난 8년간 총 아홉 번 북한을 방문, 현장 답사 위주로 쓴 최초의 북한미술 전문서적이다. 집필에만 4년이 걸렸으며 올 봄 3월에는 영문판이 나올 예정이다. 저서 발간 준비와 북한미술 특강 등으로 분주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문범강 교수에게서 북한미술에 대해 들어봤다.
▶북한미술(조선화)의 연구계기
워싱턴 지역에 북한 산수화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화상이 한 분 있었다. 2010년 그 분의 소장품을 미 주류사회에 소개하려고 전시 기획 과정에서 북한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분과 함께 2011년 처음 평양미술계를 둘러보기도 했다. 지금은 추구하는 바가 달라 왕래가 없지만 나의 북한미술 탐구는 이 분을 도와주려던 인연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미술에 대한 우연한 관심은 점차 본격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로 발전, 예술가로서 내 인생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만들었다. 내가 발견한 북한미술의 매력은 유화에서가 아니라 조선화에서였다. 전통적인 동양화를 한국에서는 ‘한국화’라 부르고 북한에서는 ‘조선화’로 부르는데, 단지 명칭만 다른 것이 아니다. 조선화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고 입체감 표현에 탁월하며, 인물 표정의 섬세함을 리얼하게 표현하는데, 이 세 가지 점에서 북한의 조선화는 타 동북아시아의 동양화와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동양화로 서양화 같은 표현을 할 수 있는 기막힌 세계가 나를 사로잡았다.
▶총 9회의 북한방문에서 보고 느낀 북한미술
지난 8년 동안 평양미술계를 총 9회 방문했지만 매회 방문이 극적이었고 매우 힘들었다. 우선 장거리 여행에서 오는 육체적 어려움도 컸지만 심리적 불안감이 그 못잖았다. 언제 나도 예기치 못한 실수를 저질러 억류되거나 심지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초조함이 매번 엄습했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 불안 속에서도 많은 작가들을 만나고, 여러 창작사 관계자, 조선미술박물관 관장, 학예관, 평양미대 부학장, 조선화 학부 학생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미술 정보를 한 가지라도 더 알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았다.
북한미술은 크게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다. 즉 국가의 정책을 반영하고 혁명과 전쟁을 통해 투쟁하는 인간상을 그리며, 인민의 생활을 밝게 표현하고자 하는 기본 임무에 충실하다. 이런 기본 프레임 속에서 조선화가 나타내는 기법, 섬세함과 웅혼함은 동양화를 아직도 추구하는 모든 국가의 미술과 비교해 그 에너지가 상대가 안 될 만큼 끓어 넘친다. 기개가 높다. 그러면서도 무척 시적이다.
▶미술사적에서 본 북한미술의 수준, 문 교수의 북한미술 연구에 대한 평가
미술사적으로 보아서 북한미술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현장이 2019년에도 왕성히 펼쳐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활화산이다. 1991년 구 소련 붕괴 후 세계미술사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대단히 성급한 판정이었다. 내 연구 목표 중 하나는 북한미술을 통해 아직까지도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흐름이 현재 진행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주지시키는 것이고, 또한 북한미술이 과거의 소련이나 중국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과는 다른 영역을 확보, 개척하고 있다는 미학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일이다. 이런 뚜렷한 사명감을 갖고 미국내 여러 대학(하버드, 콜롬비아, 존스합킨스, 오하이오주립대학 등)과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등에서 북한미술 강연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또 책을 집필하고, 국제적 규모의 북한미술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모든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 그러하듯, 북한의 미술도 주제가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그 표현력은(특히 조선화에서) 장쾌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감성을 최고의 미학으로 간주하기에 아주 독특하다. 화가로서 나는 동양화로 창작된 이러한 표현법을 북한의 조선화 외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2017년 영국의 인텔리층 계간지인 Index on Censorship은 내 연구가 대부분의 다른 북한미술 전문가의 견해, 즉 북한미술은 천편일률적인 체제선전화라는 고정관념을 뒤엎는데 주목했다. 북한미술의 독특함과 깊이, 나아가 ‘북한식’ 표현의 미술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선함을 간파한 연구가 기존의 다른 연구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의 '북한미술전' 성과
대단했다. 예상 밖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북한미술전을 포함해 총 7개의 본 전시로 구성되었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오직 북한미술전 하나만을 보려고 왔다는 후평을 남겼을 정도로 폭발적 성원을 받았다. 국내외 언론의 보도 경쟁도 뜨거웠지만, 중요한 것은 관람객들에게 제대로 된, 북한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시였다는 점에서 감동이 컸던 것 같다.
비엔날레가 세계 현란한 현대미술을 다루는 행사이기에 북한미술, 특히 동양화의 한 분야인 ‘조선화’가 조명을 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미술을 세계에 알리려는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미술이 ‘북한’에 국한 된 예술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간 너무 분리해서 생각해 왔다. 미래 통일된 한반도의 큰 프레임을 구상하기 위해 남북의 모든 문화는 ‘한반도 전체 문화’의 구성 인자라고 본다.
▶북한미술의 남북문화교류 기여에 대한 전망
독일 통일을 연구한 자료에서 통일 전 동서독의 문화, 특히 미술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데이터가 있다. 그러나 독일과 비교해 한반도의 형세는 통일을 쉽게 달성하기 쉽지 않은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냉정히 말하면 한반도의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 결국은 한반도 자체 내에서 도모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남북의 힘이 국제적으로 너무 미약하다.
그렇다면 통일은 서서히 언젠가는 이뤄질 민족의 대과업으로 염원하면서, 당장은 남북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북한미술이 남북문화교류에 기여할 바는 크다. 그림을 통해서 북한인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고, 사회의 한 단면을 배울 수 있다. 서로간의 이해는 상대를 알아야 시작된다. 그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전에 대한 한국정부 자세
무척 흥미로웠다. 정부(최소한 통일부, 문체부)가 남북교류를 진심으로 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유엔 제재에 대한 염려를 앞세워 전시의 언론 노출을 막고자 하는 의사까지 전달 받았다. 두 부처의 비협조적, 무관심한 태도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2018년 9월)이 평양에서 진행되는 그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방문, 현재 광주에서 북한 미술작품 22점이 전시되고 있다고 언급까지 하는 관심을 보인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요즘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의 후속 편인 ‘평양미술: 베일을 벗다’ 집필을 구상 중이다. 더불어 2019년 6월에 예정된 서울에서의 개인전 준비도 하고 있다. 1월 초에 대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되므로 강의 준비도 바쁘다. 또한 지금 얘기가 진행 중인 2019년 5월 캐나다에서의 북한미술전 준비 관계로 1월 중순 캐나다에 다녀 올 생각이다.
■문범강 교수는…
서양화가이며 미술저술가로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미술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으며 2016년 DC 아메리칸 대학 미술관에서의 북한현대미술전을 기획, 미국에 최초로 북한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을 소개했다. 메릴랜드주 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암호놀이’, 영문 도록 ‘North Korean Art: Paradoxical Realism’ 등이 있다. 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인 수미타 김 교수(몽고메리 칼리지)와 포토맥에 거주 중이다.
<
정영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