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도자기의 자연스러움과 생동감에 끌렸다”
▶ 한국 예술가들과 오랜 친분... 음악가들 미국진출 지원하기도
한국을 방문해 고(故)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찾은 프랭크 베일리.
지난 10월 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코리아 위크’ 넷째 날 행사에서 프랭크 베일리(79) 씨는 구본창 사진작가와 조선 백자를 주제로 가진 대담회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버클리에서 법률을 전공한 뒤 변호사와 전문경영인 등으로 활동한 그는 예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도자기와 예술품을 수집하고 시애틀미술관을 비롯한 미국 주요 박물관에 기증해 왔으며 한국 음악가들의 미국 무대 진출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외할머니 토머스 스팀슨 전 시애틀미술관 관장이 구입 후 박물관에 기증해 53년간 소장된 덕종어보를 2015년 반환하는데 협력한 일로 베일리 씨의 이름이 알려진 바 있다.
프랭크 베일리 씨와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한국 예술가들과의 인연에 관해 들어봤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뮤지엄(AAM)에 전시된 제작년도 1600년경 추정의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유교적 미덕으로 여겨진 청렴함과 정직, 소박함 등이 담겨있으며 풍요와 온화함 등 여성적인 특징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프랭크 베일리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예술품으로 조선 백자를 뽑았다. [사진 AAM]
-베일리 씨를 잘 모르는 독자 분들을 위해 간략히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프랭크 베일리, 79세로 은퇴한 변호사다. 은퇴했지만 고향인 시애틀의 가업을 관리하며 클래식 음악과 미술, 그리고 특별히 한국 예술에 관심이 많아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여러 미술관에서 이사직을 수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미술에 열정을 갖게 된 계기를 소개한다면?
■시애틀미술관에서 여러 해 동안 트러스티(Trustee, 신탁관리자)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 트러스티다. 외할머니께서 2차대전 당시 징집된 전 관장의 뒤를 이어 관장으로 재직하셔서 나는 어린시절에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여러 문화권에 걸쳐 다양한 물품을 기증하셨지만 그 중에서 중국 송대 묵화와 도자기, 고려청자를 가장 좋아하셨다. 예술품을 수집하고 기증하는 과정에서 외할머니는 마크 토비, 모리스 그레이브스, 케네스 캘러한 등 현역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게 되셨고 그들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하셨다.
외할머니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습은 내게 큰 힘이 됐고 그분의 모습을 통해 예술품을 수집하고 기증하는 것을 자연스런 일로 여기게 됐다. 또 예술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외할머니의 신념 역시 물려받게 됐다. 외할머니뿐 아니라 친할머니도 80대에 그림을 배우셔서 1인 회랑 전시를 여실 정도로 예술에 열정을 가진 분이셨고 어머니는 일생 동안 그림을 즐겨 그리셨다. 아버지도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이셨고 고모는 시애틀 공립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동양예술을 미국에 소개하는데 기여하셨다. 고모는 또 일본 민예운동을 이끄는 미술가들과 친구관계였고 이 분이 나중에 나에게 조선시대 백자를 소개해주셨고 나는 지금까지도 한국 도자기 가운데 조선백자를 가장 좋아한다.
-한국 도자기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70년대 후반 시애틀미술관 동양미술관 큐레이터 빌 래스번과 시애틀에 거주하던 일본인 미술가 사와다 이쿠네와 알고 지냈었는데 그들이 모두 조선왕조 유물이 서구권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내게 수집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 후 몇년 간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등지를 다니며 한국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을 탐방했고 중개인들을 만나기도 하며 도자기가 갖는 느낌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개인적으로 소장할 뿐 아니라 시애틀미술관에 여러 점을 기증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 미술을 사랑하는 여러 한국인들과 친분을 맺게 됐고 진흙을 사용해 작업하는 예술가들과도 교류하게 됐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당시 정양모 관장과 고(故)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등과 좋은 친구가 됐다.
또 한국 현대 도자기 예술에도 큰 관심을 갖게 돼 박영숙, 윤광조, 김기철 등 도예가들의 작품을 구매해 몇몇은 개인적으로 소장했으며 보스턴미술관, 시애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뮤지엄, 대영박물관 등에도 기증했다. 그리고 구본창 사진작가를 만나면서 오래된 한국 도자기를 사진에 담는 그의 작품세계에 빠지게 됐다. 나의 한국 전통 도자공예에 대한 관심은 현대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뮤지엄(AAM)에 전시된 제작년도 1600년경 추정의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유교적 미덕으로 여겨진 청렴함과 정직, 소박함 등이 담겨있으며 풍요와 온화함 등 여성적인 특징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프랭크 베일리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예술품으로 조선 백자를 뽑았다. [사진 AAM]
-한국의 도자 공예가 갖는 특징은?
■한국 도자기가 갖는 느낌은 특별하다. 고전 작품과 현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개방적이고 넘치는 생동감으로 이것은 지나친 기술적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요소다. 아주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데 희귀한 특징이다. 한국 도자기에는 한국인만의 정서가 담겨있다고 하는데 그 말의 진위 여부를 내가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한국 도자기가 분명히 한국적이라고 느낀다. 나는 주로 민족성에서 벗어나 작품과 작가를 탐구하는 편이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메롤라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음악가들을 다수 초청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술 외에 음악에도 열정을 갖고 있는지? 어떤 계기로 한국 음악가들과 인연을 맺게 됐나.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2차대전 당시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집에서 할머니께서 피아노를 연주하시고 어머니께서 브람스의 노래를 부르시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피아노를 조금 배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음악 감상을 즐긴다. 1970년대 초에 지금은 사라진 SF오페라 부설 교육기구 웨스턴 오페라극장의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프로 음악가들과 그들이 지닌 예술적 기질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1990년대 초 SF오페라에서 태평양 연안 국가들로부터 젊은 음악가들을 초청해 한 달간 오페라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퍼시픽 보이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때 SF오페라 측에서 한국에서 오디션을 도울 인맥을 구하지 못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다행히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게 돼 2명을 최종 선발할 수 있었다. 선발된 음악가들의 실력이 아주 훌륭해 메롤라 오페라 프로그램에서 계속해 여름 프로그램에 젊은 한국 음악가들을 선발하게 됐다.
당시 메롤라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이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커티스 음악대학에서도 오페라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었는데 그가 커티스에서 한국 음악가들을 여럿 선발하기도 했다. 나 또한 커티스의 감독위원(Overseer)으로 초대돼 지금은 트러스티(Trustee)로 재직하고 있으며 랑랑, 유자왕, 리처드 용재 오닐 등 훌륭한 음악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커티스 출신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훌륭한 공연을 선보일 때 정말 기쁘다. 최근에는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가 추진하는 음악 프로젝트 ‘38도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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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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