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프란시스코가 해외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대한인국민회, 해외 한인사회와 유기적 관계 독립운동 선도
▶ 3.1운동 소식 들은후 독립운동 자금 후원,외교등 항일운동... 해외 독립운동의 요람지 샌프란시스코에 기념공간 필요해
중가주 다뉴바에서 1920년 3.1절에 가졌던 거리 퍼레이드를 지난 2012년 재현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주 한인이민의 관문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요람지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맞아 샌프란시스코가 이민역사에서 갖는 중요성과 선조들의 독립운동 내용을 독립운동사 연구 권위자인 이명화 박사와 인터뷰를 통해 재조명해본다.
이명화 박사는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역임 후 현재는 한국 도산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명화 박사는 지난 12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의 초청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북가주와 독립운동’ 강연을 했었다. 또 2017년 7월에는 신민회 창립 110주년을 맞아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주최로 오클랜드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미주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하는 등 미주 한인 이민역사 연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이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2일 특강이 끝난후 상항 한국인연합감리교회 역사 박물관에서 가졌다.
이명화 박사
-해외독립운동사 측면에서 샌프란시스코가 갖는 중요성과 의미는 ?
▲북미 한인들의 첫 이주지이며 한인커뮤니티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북미 한인 역사의 출발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03년에 북미 최초의 커뮤니티인 샌프란시스코 한인친목회는 샌프란시스코 한인의 친목과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으나 러일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고국의 실상을 외면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은 구국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범한 공립협회는 미국 본토는 물론 하와이와 만주, 그리고 시베리아 등지에 흩어진 한인들과도 소통하고 연락하며 조직망을 구축하여 수난에 빠진 조국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이로 보면 해외 독립운동사 측면에서 샌프란시스코는 해외독립운동사의 요람지이며 구심점이 되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한 북가주지역의 가장 중요한 독립을 위한 활동이나 내용은 ?
▲샌프란시스코는 1903년에 북미 최초의 결사인 ‘샌프란시스코 한인친목회’가 결성된 이래 공립협회와 국민회, 그리고 대한인국민회로 발전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친목회의 작은 예배모임으로 시작되어 1903년에 창립한 샌프란시스코 연합감리교회 등은 한인 이민생활에서의 정신적 믿음의 고향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를 중심한 북가주 지역에서는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와 같은 독립운동의 조직운동이 일어나 한인들이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미주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한국 독립운동의 첫 총성이라 할 수 있는 1908년의 장인환∙전명운의사의 샌프란시스코 의거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대한인국민회 등 단체의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은 ?
▲미주에서는 여러 단체들이 조직되고 활동하였지만 가장 위대한 조직을 꼽으라면 단연 대한인국민회입니다. 대한인국민회는 당대의 그 어떤 결사보다도 뛰어난 조직과 제도를 갖추고 해외 한인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독립운동을 선도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어 발전해간 대한인국민회는 전 해외 동포사회를 국민의식과 국민조직으로 통일 연합한다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을 수행하였습니다.
대한인국민회는 재외동포들의 가슴에 멸망해버린 나라를 되살려 주었으며 그들에게 국민의식을 불어넣어주어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해주었습니다. 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가난과 차별의 수난 속에서도 한국민에게 자유 민주주의 독립국가 건설의 비전을 잃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재미한인사회를 모델로 하여 한국과 중국, 하와이, 북미, 러시아 연해주, 멕시코까지 네트워크하여 민족독립국가의 국민으로 되살려 주었던 업적이야말로 가장 큰 독립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3·1독립운동이 우리민족에게 주는 의미는 ?
▲3·1운동은 오랜 역사문화를 전수해온 뿌리깊은 역사 안에서 엄청난 민족적 에너지를 방출하여 거대한 폭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3.1운동에서 보여주었던 한민족의 정신력과 자신감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이어져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토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오늘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은 3.1운동의 정신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3.1독립선언서에 제시되어 있듯이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고 인류공영의 길을 추구하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도주의, 문화주의가 존중받는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제 전민족이 3.1정신으로 한마음 한뜻의 국민대통합을 이루어 민족통일의 길을 완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3·1운동과 연관한 미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은 ?
▲한국민의 3·1운동의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미주 한인들입니다. 이들이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움직여나갔기에 3.1운동의 밀알을 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주에 3.1운동의 소식이 전달된 이후 재미한인들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국민국가 건설에 앞장서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한 외교활동과 선전활동의 선두에 서서 항일운동을 지도했습니다.
3․1운동의 소식이 미주 전역에 전달되자 재미한인사회는 대한인국민회가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일을 재미한인의 책무로 여기었고 배일운동과 함께 미국인과 미국정부를 상대로 외교활동과 언론 및 선전활동을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한국민의 굳건한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시작을 이루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한인의 무장독립투쟁을 지원하였고 무엇보다도 3.1운동 이후 수립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지난 12월 ‘북가주와 한인독립운동’ 강연에서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후대에 독립정신을 전승할 기념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기념 공간을 생각하는지요 ?
▲북미주의 로스앤젤레스 지역만 해도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을 비롯해 한인들의 기념공간이 존재하고 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북미주 한인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기념공간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의 기념공간이 마련된다면 역사의 기억을 찾아 이야기를 복원하여 의식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의 고귀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전파한다면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에게 자부심과 연대의식을 심어줄 것입니다. 오늘날의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은 물론 그 후대에까지 한인 아이덴디티 의식의 공유와 일체감을 진작시키는 데 공헌하는 상징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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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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