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또 한해가 저문다. 성탄 캐롤이 울리는 세모의 거리에서 뒤를 돌아본다. 걸음걸음 내 발자국이 보인다.
살아볼수록 삶의 의미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는 듯하다. 어디에 도착했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삶의 과정이 ‘선’의 연속이라면, 결과는 한낱 ‘점’에 불과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선과 선들이 모여 훗날 입체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진면목이리라.
12월 초에 돌아간 아버지 부시의 장례식에서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 그가 대통령이었다는 결과보다 평생 보여준 그의 겸손과 품위 있는 덕성, 맺은 인연들에 변함없는 충정 등, 인간미에 국민들은 존경을 보냈다. 덕과 복을 누린 삶이었다고 추모했다.
덕스러울 ‘덕(德)’을 풀어보면, 열(十)사람의 생각이나 안목(目의 횡서)을 한 마음(一心)으로 묶을 수 있는 넉넉한 품성이다. 열이면 열, 모두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한 마음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 때문이리라. 신뢰와 존경은 절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거짓 없는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미덕임을 우리는 잘 안다.
덕을 쌓는 사람은 자신에겐 매섭도록 철저하고 남에겐 후하다. 남의 잘못은 보고도 못 본 척 하되 자기 실수는 성실히 고치려는 자세가 마음 그릇을 크게 만든다. 속이 비고 자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포용할 수 있을까? 겉으론 남을 위하는 체하면서도 속은 항상 자기중심적인 소아병적인 위선도 덕스런 사람의 품성과 멀다.
복이란 글자도 풀어보면 하늘의 복이 어떤 뜻인지 너무도 분명해진다. 복(福)이란 한(一)사람이나 식구(口)가 손수 경작한 자기의 밭(田)을 보여(示)주는 것이다. 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불로소득도 요행수도 아니다. 사람이 땀 흘리고 수고하여 갈고 닦은 자기의 밭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참 복이란 뜻이다. 자랑하려 보이는 것이 아니요, 있는 그대로, 자기가 가꾼 열매 그대로 떳떳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밭을 옥토로 가꿔 내기 위해, 젊어서부터 쟁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복된 일이다.
옛날 한 부자 노인이 잔치를 앞두고 평생 부리던 두 하인을 불렀다. 그리고 짚을 한 섬씩 주면서 말했다. “이 짚으로 새끼를 꼬게. 가능한 한 가늘고 길게 꼬게, 잔치가 끝나는 날, 내 앞에 가져오게.”
한 하인은 투덜거렸다. “이 늙은이, 평생 부려먹더니 잔칫날까지 … 난 이제 신물이 나” 하며 대충대충 굵고 군데군데 마디가 지게 꼬곤 잠들었다.
다른 하인은 ”주인께서 지금까지 거둬 주셨으니 부탁하신 일을 잘 끝내야겠다”며 밤새 가늘고 길고 튼튼한 새끼줄을 만들었다. 잔치가 끝난 후, 부자 노인이 말했다. “여보게들, 그 동안 날 위해 고생했으니, 이 광에 모아둔 내 재산의 일부를 자네들이 꼰 새끼줄에 마음껏 끼워가게”하며 광문을 열었다. 그 속엔 번쩍이는 엽전들이 가득했다. 가늘고 긴 새끼줄을 밤새 만든 하인만 엽전을 바리바리 싣고 떠날 수 있었다.
주인의 부탁을 성실히 이루려는 일념으로 과정을 충실히 마친 하인의 모습이 결과보다 더 귀하다. 그가 받은 상은 결과를 잘 예측해서가 아니고 과정을 성실히 산 응분의 대가일 뿐이다. 노력에 비해 지금 당장 결과가 좋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언젠가는 꼭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믿음과 뚝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과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열매가 더 단 것이 삶의 진리이다.
또한 하늘의 복을 경작하는 성경 속의 밭 이야기도 우리의 영성을 깨워준다. 돌밭도 있고, 가시덤불 우거진 밭도 있고, 옥토도 있는 것.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흙이 얇아 뿌리 내리지 못하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가시에 걸려 더 자라지 못해 새의 먹이가 될 뿐.
그래서 우리는 마음 밭에서 부단히 돌을 골라내야 한다. 덤불과 잡초를 솎아내 옥토로 만들기 위해. 태만과 시기, 거짓과 탐욕, 속물근성과 이기주의 같은 돌과 덤불들을 거둬내야 하겠다. 그리고 그 흙 속에 참 지혜와 사람을 모으는 덕을 심고 키워야 하리라. 그래야 내 옥토 밭의 열매를 떳떳하게 보일 수 있으리라.
캘리포니아 겨울비가 사뭇 줄기차게 내린다. 온 누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비는 자기 밭을 성실히 가꾸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늘의 선물이자 은혜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은혜의 은(恩)자도 내 마음(心)으로 인(因)함이다. 은혜를 받음도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하늘은 항상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것은 손수 쟁기를 들고 자기 밭을 오늘도 꾸준히 가는 자에게만 내리시는 하늘의 진정한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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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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