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눈부신 백사장과 야자수의 장관.
에메랄드 빛 바다, 그리고 눈부신 백사장을 따라 들어선 수많은 해양 리조트들. 겨울이면 달려가고 싶은 가까운 남국이 멕시코 캔쿤이다. 워싱턴에서 불과 3시간30분이면 당도하는 이 카리브 해의 천국에는 호텔 구역 밖에도 숨은 매력이 도처에서 유혹한다. 이슬라 무헤레스란 섬과 마야의 바다인 툴룸, 그리고 ‘핑크 호수’와 한인 이민자들의 역사와 애환이 서린 애니깽의 도시 메리다. 캔쿤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이슬라 무헤레스와 툴룸, 그리고 메리다…
# 여름의 세계로
볼티모어 공항(BWI)을 이륙한 기창(機窓) 아래로 지난여름의 무성한 욕망이 스러져간다. 초겨울의 정념(情念)이 갈색 숲에서 바스락거리고 있다.
기장의 도착 안내방송에 창의 열개를 여니 아, 발칙한 남국의 파도들이 긴 해안선을 따라 넘실댄다. 눈부신 블루 스카이(Blue Sky) 물빛이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떠나간 연인을 다시 만난 듯 후끈거린다. 불과 3시간 반 만에 여름의 세계로 귀환했다. 카리브 해의 천국이라는 캔쿤(Cancun)이다.
# 다운타운과 호텔 구역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이 해변의 도시는 마야(Maya)어로 ‘깐꾼’이라 부른다. ‘뱀의 둥지’란 뜻이다. 고대인들에게 뱀은 죽음과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 생과 사의 패러독스처럼 인구 50만의 도시는 ‘호텔 구역’과 ‘다운타운 구역’으로 나뉜다.
다운타운은 현지인들의 거주지다. 페인트 벗겨진 시멘트 집들, 털털대는 낡은 버스, 체념인지 달관인지 구분키 어려운 사람들의 표정…. 300년 스페인 식민의 명과 암은 여전히 캔쿤의 다운타운에 깊고 넓게 드리우고 있다.
그 다운타운의 바다 쪽으로 호텔 존(Zone)이 있다. 호텔 존은 멕시코의 가난, 절망과 높은 담을 쌓은 성처럼 존재한다.
“저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이다. 난 그들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뿐이다.”
한 40대 현지인의 무표정한 말처럼 이곳은 다운타운과는 격리된, 관광객만을 위한 별세계다. 1970년대만 해도 그들이 살던, 아름다운 작은 어촌은 또 하나의 미국으로 변모했다. 아메리카의 일상에 지친 미국인들이 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그의 생의 에너지를 새로이 부여하는 세속의 성소가 된 것이다.
2. 이슬라 무헤레스 섬의 선착장. 바다 빛깔이 곱기가 그지없다. 3. 이슬라 무헤레스 섬을 카트로 돌다보면 만나는 에메랄드 빛의 바다. 지평선에 언뜻 보이는 곳이 캔쿤이다. 4. 캔쿤에서 유일한 한식당 ‘오 마이 고기’. 선여행사 김진형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한국에서도 소문이 나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갈비 등 각종 숯불구이가 일품이다. 5. 툴룸에서 볼 수 있는 마야의 유적지.
# 하늘색 물빛이 유혹하다
해변은 길다. 28킬로미터의 기나긴 해변을 끼고 200개의 호텔과 리조트가 저마다의 천국을 만들어 놓았다. 매일 밤 춤과 뮤지컬 공연이 펼쳐지고 침대는 안락하기 그지없다. 창을 열면 하늘색을 닮은 물빛의 신비한 바다가 유혹한다. 하늘과 바다는 서로를 연모하다 그 빛을 닮으려 했다.
배가 고프면 호텔마다 구비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산해진미를 무한정 먹어도 괜찮다. 맥주와 위스키, 럼 그리고 데킬라…. 웨이터들이 다니며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채워준다. 이 모두가 공짜다.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란 이름으로 비싼 여행비에 포함된 것이다.
호텔 바깥은 바로 카리브 해다. 맨발로 걸어 나가면 백사장. 하얀 밀가루처럼 곱디고운 모래사장 위를 걷거나 그 바다에 몸을 담그면 왜 이곳이 카리브 해의 천국이라 불리는 지 실감이 난다.
# 이슬라 무헤레스
호텔에서 싫증이 날 때면 찾는 별색의 코스가 있다.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eres)와 툴룸(Tulum). 이슬라 무헤레스는 캔쿤의 건너편 섬이다. 항구에선 이 섬으로 30분마다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섬으로 가는 쾌속선 위에서 호세라는 악사가 전통 악기로 연주를 했다. ‘철새는 날아가고’ 그리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나탈리’…. 거센 해풍에 소리는 연신 날아갔다. 선창가수의 손가락에서는 굵은 금반지가 반짝였다. 멕시코 사람들의 애처로운 정열처럼….
‘여인의 섬’이란 뜻의 이곳은 길이 4마일, 폭 800미터에 불과하다. 운송 수단은 골프 카트와 택시다. 카트를 타고 길쭉한 섬을 한 바퀴 돈다. 적도의 태양이 내리쬐는 골목에서는 오수를 즐긴 늙은 개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저 건너 호텔 존이 신기루처럼 구름 아래로 보인다. 우도에서 바라본 제주의 풍경처럼 아련하다. 문득 지나치는 부잣집 별장의 담장마다 이름모를 붉은 꽃이 피었다.
# 에메랄드빛 향연
길에서 마주치는 바다는 에메랄드빛이다. 초록의 숨 막히는 향연이 펼쳐지는데 문득 고개를 멀리 돌리면 바다는 사파이어 빛으로 변한다. 이 기막힌 조화를 보면서 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가 떠올랐을까.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흰 나비가 저 초록 바다 위에서 나폴 나폴, 상상의 날갯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섬의 해변은 저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을 품었다. 푸른 바다는 일탈의 욕망을 안고 출렁댄다. 욕망을 통제하려는 들숨과 날숨처럼 파도는 모래 위에 쓰인 애욕의 글씨들을 지워낸다. 하얀 백사장의 야자수 그늘에서는 사람들이 무위와 염담(恬淡)의 지경에 빠져들어 있다.
멕시코 만 근처에서 볼 수 있는 ‘핑크 호수’의 기묘한 색깔.
# 마야의 성, 툴룸
캔쿤에서 남으로 1시간30분. 툴룸이 있다. 마야의 성(城)과 카리브의 멋진 바다가 어우러지는 곳이다. 마야 문명은 잉카, 아즈텍과 함께 아메리카의 3대 문명이었다. 흔히들 마야하면 치첸이사의 피라미드를 떠올리지만 진짜 유적지의 면모는 이 도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해변의 도시는 마야인들의 무역선이 들르던 항구였다.
성벽의 규모는 남북으로 380미터, 동서 170미터다. 16세기까지 융성했던 도시는 스페인 침략 후 폐허가 됐다. 처음 보는 짐승인, 침략자들의 말발굽과 총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빼어난 건축과 천문학 기술을 보여준 그들은 석기기대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분열돼 있었다.
지금은 툴룸의 곳곳에 흩어진 건물의 벽돌과 기둥의 잔해들이 그 성시(盛市)의 융성함을 말해준다.
돌로 된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내렸다. 열대성 스콜이었다. 비를 피할 곳이 없다. 빗소리는 마야의 돌 벽을 때렸다.
‘바람의 신전’ 아래서 마야의 여인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꼼짝없이…. 귀 밑에는 붉은 남화(南花)가 걸려 있다. 돌 틈에서 새어나오는 아득한 조상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까, 아니면 카리브 해로 떠오르던 마야의 해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비는 이내 그쳤다. 해풍에 낡아가는 성벽 너머 바다는 서러울 정도로 곱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을까, 하는 탄성이 튀어나온다. 바위 위에서는 이구아나들이 바다를 향해 깊은 묵상에 잠겨 있다. 그 아름다운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납량객들의 즐거움이 5월의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천국 같은 툴룸의 해변을 걷다보면 이 바다는 마야인에 대한 신의 연민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푸른하늘과 핑크 호수, 그리고 애니깽의 애환…
# 핑크 호수
메리다(Merida)로 향했다. 멕시코 제2의 도시이자 캔쿤이 있는 유카탄 반도의 가장 큰 도시다.
북서로 난 길은 정글을 뚫어냈다. 끝없는 정글 속의 도로는 마야의 길이었다. 왕의 도시인 티지민(Tizimin)도 그 노상에 있었다. 차는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덮은 그들의 초옥(草屋)과 더위를 피하려는 듯 두터운 시멘트로 두른 집을 스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메리다로 가기 전 ‘핑크 호수’로 잠시 방향을 바꿨다.
멕시코만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핑크 호수’는 기이한 자태를 드러냈다. “딸기 스무디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맞장구를 쳤다. 붉은 새우와 염도가 만들어낸 빛의 예술이라는데….
‘핑크 호수’는 워싱턴의 선 여행사 김진형 대표가 발굴해낸 상품이라 아직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다. 이슬라 무헤레스와 툴룸, 그리고 메리다를 잇는 특별한 캔쿤 여행상품도 선 여행사에서만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인근의 강에서는 보트 투어가 있다. 강을 시원스레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도 싹 날아가지만 플라멩고의 우아한 자태와 바로 눈앞에서 악어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2. 메리다의 서민 골목에 위치한 한인 박물관. 3. 한인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는 한인들. 4 .애니깽 한인들이 데킬라 술로 고된 노동과 망향의 설움을 달래던 ‘제물포 바’. 오른쪽 첫 건물로 지금은 전당포가 됐다. 5. 제물포 바 바로 옆 골목에 명명된 제물포 거리 표식. 6. 캔쿤의 외곽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념품 상점들.
# 메리다로 가는 길
맹글로 숲을 지날 무렵 새들은 안식을 찾아 날아갔다. 길이 넓어지자 러브모텔의 붉은 네온사인이 반짝였다. 메리다로 가는 길이다. 길섶에는 마야의 전통과 새로운 문명이 조우한 격동의 부조화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메리다는 1905년, 1천33명의 우리 선조들이 제물포에서 ‘지상낙원 행’ 배를 타고 정착한 땅이다. 그들은 살인적 더위 속에서 20여개 애니깽(Henequen) 재배농장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했다. 월급도 없었고, 돌아온 건 입에도 맞지 않은 식품 쿠폰뿐이었다. 일본 인력송출회사의 농간에 속았던 것이다.
이 도시에는 그 한인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7천여 명이라는데 이미 탈 한국인화 된 4-5세들이다.
# 제물포 바
도심의 중앙 광장 앞에 ‘제물포 바’가 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린 한인들이 한 잔의 데킬라 술로 애환을 풀던 술집이었다. 술에 취하면 떠나온 조국의 ‘제물포’를 외쳐대던 한인 손님들의 서글픈 사연을 들은 멕시칸 주인이 술집 이름을 아예 ‘제물포 바’로 바꿨다 한다. 지금은 전당포로 변모한 그 바의 옆 골목을 인천시와 메리다 시가 ‘제물포 거리’로 명명했다.
그 골목에서 데킬라 술에 취해 귀가하던 한인들의 낙서나 흔적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시간은 흔적도, 기억도 풍화시켜 버린다.
제물포 바 앞에는 스페인 도시문화의 상징인 광장과 성당이 세트처럼 있다. 성당은 스테인 글라스도 조명도 없는 회벽의 날 것 그대로 고색창연함을 드러내고 있다. 코린트 식 열주로만 멋을 낸 그 단조로움이 오히려 신과 나와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 같다. 입구에서는 늙은 걸인과 행려(行旅)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구걸하고 있다.
광장의 태양은 뜨겁다. 광장에 드리워진 나무도 이 염천의 기세를 모두 다스릴 수는 없다. 옆에 아이스크림 간판이 보였다. 1907년부터 영업해온 유서 깊은 가게다. 옥수수를 넣은 밀크셰이크 같은 아이스크림의 맛은 아주 특별났다.
# 한인 박물관
광장에서 10분 거리에 메리다 한인회관이 있다. 서민들이 사는 골목에 적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회관은 을씨년스럽게 그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저장해놓고 있었다. 한 달에 10명도 채 찾지 않는 회관은 한인 후손의 핏줄이 섞인 할머니가 가끔씩 나와 지키고 있다. 한국말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공간이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내부에는 그 잔인했던 기억들을 빛바랜 사진과 자료로 추억하고 있다. 이승만과 안창호의 사진도 보인다. 그들은 죽음 같은 노동으로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그 성스러운 역사를 우리는 지금 기억하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동행한 메릴랜드의 조용보 사장 삼형제 부부가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다.
# 마야의 마을을 지나
다시 캔쿤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야의 최대 마을인 발데로드를 거쳐 가는 길이다. 도중에 뷔페식당에서 마야 전통 음식을 먹었지만 생각은 애니깽 한인들에서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데킬라 술 한 잔이 그리워졌다. 알제리 바닷가의 카뮈에게는 압생트란 술이 그를 위로했지만 마야 마을의 술은 데킬라였다. 생선구이와 또르띠야를 안주로 아가베로 만든 그 뜨거운 술 한 잔을 들이키며 ‘제물포 바’의 그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의 결핍된 지혜를 생각했다.
3시간 만에 당도한 캔쿤은 해가 저무는 중이었다. 해변을 소요(逍遙)하던 사람들은 저마다 품은 에로스를 안고 호텔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떠나야 바다는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 무위의 바다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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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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