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에서 맥주 4캔과 과자를 사는 것이 일상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사 온 캔맥주를 냉장고에 넣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원한 맥주와 과자를 먹는다. 적은 돈으로 만든 행복이다.
작은 사치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었다. 이른바 나를 위한 소비가 트렌드다. 화가 나서 먹은 치킨, 우울해서 미용실에 가는 비용 등 홧김에 쓴 비용을 뜻하는 ‘시발비용’과 같은 맥락이다. 행복함을 느끼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소비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오픈 마켓 지마켓이 9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가 “올해 자신을 위한 소비를 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위한 소비가 필요한 이유로, “나 자신에 대한 보상 차원(36%)”이라고 답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각종 소비와 관련된 신조어가 생기고 있다.
탕진잼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를 일컫는 용어다. 인테리어를 위한 생활용품을 사거나 불쑥 여행을 떠나는 등 일상생활에서 돈을 낭비하듯 쓰며 소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스트레스가 만든 트렌드로, 결국 ‘탕진잼’은 시발비용의 연장선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낭비하며 재미를 느낄 일도 없기 때문이다. 탕진잼의 역사는 꽤 길다. 지난 1930년대 미국에서는 대공황 시기
였음에도 립스틱 매출이 증가했고 경제학자들은 이를 ‘립스틱 효과(불황일수록 여성들의 립스틱이 붉어지는 현상)’라고 불렀다. 큰돈 들이지 않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립스틱이 당시 여성들의 탕진잼이었던 셈이다.
온미맨드
소비자의 수요가 생산 시스템을 결정하는 ‘온디맨드(On demand)’에서 유래한 말로, 나의 개성과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소비 형태를 뜻한다. ‘온미맨드’의 주체는 남들의 눈을 의식하거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20대다. 개성과 개인화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세대인 그들은 혼자 살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 물리적 가치나 가격보다 심리적 만족을 주는 소비를 한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각종 상품을 수집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는 신발이라도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식이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진 않는다. 다른 세대에 비해 경제력이 약하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은 후 구매를 결정하는 성향을 보인다.
가심비
가성비와 반대되는 말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의미하는 말이다. 내가 지갑을 열었을 때 얼마나 흡족함을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다소 비싸더라도 자신의 행복이나 즐거움을 위해 상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심리적 위안을 위한 비용인 셈이다. 가심비를 겨냥한 대표적인 상품은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러, 로봇청소기, 소형 냉장고 같은 것이다. 가심비를 추구하는 이들은 스타일러에 옷을 넣어 살균하는 것으로 빨래를 생략하며 “생활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플라시보 소비
‘위약 효과’를 뜻하는 플라시보(Placebo)와 소비가 결합된 용어로 실생활에 도움 되는 소비는 아니지만 소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거나 마음을 치유한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함께 추구하는 소비다.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성능, 높은 만족도까지 모든 요소를 충족해야 소비가 이뤄진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이용해 각종 정보를 수집한 후 소비한다. 숙박업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여행지 숙박업소의 장단점, 가격을 비교 분석한 후 숙박업소를 정해 합리적이면서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는 것이다.
휘소가치
‘휘발하다’의 ‘휘’와 ‘희소가치’의 합성어다. 순간적인 자기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휘발성을 가진 무의미한 물건일지라도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소비다. 이 때문에 같은 또래라도 성향에 따라 소비 행태는 전혀 다르다. 쇼핑을 좋아해 식비를 아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용돈의 대부분을 식비에 사용하는 이도 있다.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는 기부 배지·팔찌를 구매하는 착한 소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불매 운동도 휘소가치 소비의 일부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지만 자신의 만족에 소비의 목적이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홈루덴스족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에서 파생된 말로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들에게 집은 더 이상 부의 개념이 아닌, 나만의 아지트이고 휴식 공간이자 내 취향을 오롯이 실현하는 공간이다. 어디를 꼭 가지 않아도 집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이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 큰 의미를 두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한다. 이들은 소품 및 가구 DIY를 하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거나 취미 활동에 집중한다. 형체가 고정돼 있지 않고 묽은 젤리처럼 생겨, 손으로 만지는 대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슬라임이나 여러 가지 컬러를 색칠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컬러링 북이 유행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라곰식 소비
‘라곰’은 스웨덴어로 ‘많지도 적지도 않음’을 뜻한다. 라곰식 소비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생각해 절제하며 주어진 환경 내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현재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에 집중한다. 애초에 소비를 줄이는 게 우선이다.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고 소비 습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도록 그 둘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지키려 한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땐 음식을 접시에 얼마나 담아야 한 끼 분량으로 적당한지 고민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 동료와 즐겨야 할 때는 음식이 넘쳐나는 시간을 즐긴다. 이렇게 양극으로 오가며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크고 확실한 행복 대신 꾸준히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을 좇는다. 근사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대신 동네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는 것이다.
멍청비용·쓸쓸비용
‘멍청비용’은 조금만 주의했다면 아낄 수 있는 비용을 뜻한다. 예를 들어 돈을 출금하기 전에 거래 은행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봤다면 현금인출기(ATM) 수수료를 아낄 수 있었다거나, 할인 기간을 놓쳐 제값을 주고 상품을 샀을 경우를 뜻한다. ‘쓸쓸비용’은 쓸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이다. 혼자인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쓰는 비용인데,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영화를 보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지출도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일점호화
평소엔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어떤 한 가지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것을 뜻한다. 일본 영화감독 데라야마 수지가 1967년에 쓴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 처음 등장한 용어인데, 일본의 장기 불황 때 유행했다. 일점호화 소비족은 전반적인 소비 지출은 줄이지만, 소비 욕구를 마냥 참는 것은 어려우므로 특정 부분에선 과감하게 고급 소비를 한다. 매일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지만 명품 백을 사거나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일점호화다. 국내 경기와 여행은 활성화되지 않지만 명품은 꾸준히 잘 팔리고, 해외여행객이 갈수록 느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있어빌리티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소비다. ‘있어 보이다’와 ‘Ability’의 합성어로, SNS에 자랑할 만큼 예쁜 비주얼과 뛰어난 성능, 이름값을 지닌 것에 돈을 쓴다. SNS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시대에 어울리는 소비 형태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멋지고 여유로워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다. 핫하다고 알려진 전시회에 가는 것, 맛은 없지만 예쁜 음식을 먹는 것 등이 ‘있어빌리티’에 해당한다.
출처: 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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