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12만이 넘는 프랑스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또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마크롱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노란 조끼’ 시위는 서민들에 대한 배려 없이 부자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펴온 정부에 반기를 든 시민들의 소요다. 시위는 부유세를 없애면서 모든 국민들에게 똑같이 부담이 돌아가는 유류세는 올리겠다고 발표한, 사실상의 서민증세를 하겠다는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됐다.
시위대 요구에 굴복해 유류세 인상을 철회한 마크롱 대통령은 10일 저녁 생방송 대국민 담화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을 전격 수용하는 등 추가 조치를 발표했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는 프랑스 국민들의 저항을 ‘시위’가 아닌 ‘민중봉기’라 칭했다.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에 국민들이 분노해 일어났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혼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종종 이런 갈등과 충돌이 뒤따른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현재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스웨덴만 해도 이런 가치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38년 체결된 역사적인 ‘샬트셰바덴 협약’이 변곡점이 되기 전까지는 기업과 근로자 간 충돌로 사회는 불안했고 흉포한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이 협약에 따라 스웨덴의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은 정부특혜를 보장받고 그 대신 85%의 소득세를 내는 등 사회적 공헌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의 성난 여론은 불평등 문제에 눈 감은 정치에 보내는 강력한 옐로카드이다. 날로 깊어지는 불평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등 유럽지식인 50명은 10일 ‘유럽 민주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하고 EU의 불평등 관련 예산을 지금보다 4배 더 늘릴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불평등의 해소가 곧 민주화라고 본다. 평등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이념 대결에서 가장 비용을 덜 들이고 민주주의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정치는 불평등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언론들까지 합세해 불평등 조장을 거들고 있다. 언론이 이런 역할을 하는 나라는 후진국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 한국의 계층 간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발표가 나왔다. 보수지들은 기다렸다는 듯 “소득주도성장의 역설” 운운하며 모든 걸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돌리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일부 언론은 심지어 한국국적 포기자가 늘어난 것까지 소득주도성장 탓으로 돌리는 억지를 부렸다. 견강부회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음에도 인내심을 내던진 채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고 몰아붙이는 보수 정치와 언론의 속내는 뻔하다. 야박할 정도로 최저임금 인상을 억누르면서 부자들의 세금은 줄여주던 ‘이명박근혜’ 정부의 정책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부족해진 세원은 담배세 같은 ‘빈부를 구별하지 않는’ 간접세를 통해 충당하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소득주도성장을 겨냥한 집요한 공격에 문재인 정부는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딱하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소득격차를 줄여나가는 해법은 간단하다. 조세와 복지를 통해 가진 사람들의 부담은 좀 더 늘리고, 없는 사람들의 소득은 조금 높여주면 된다. 연방소득세 누진세율이 최고 91%까지 올랐던 60여 년 전 미국은 대단히 평등했고 경제의 생산성은 지금보다 더 높았다.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자본주의가 단단히 서 있던 때였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대는 “부자는 세금을 더 내지 않는데 빈자는 계속 세금을 부담하는, 미쳐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고 외쳤다. 한국 서민들 입에서 이런 절규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정치와 언론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제부터라도 불평등을 개선하는 일에 나서야 하다. 그리고 국민들은 거리로 나선 ‘노란 조끼’들보다, 악의적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정치적 선택을 하는 시민들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이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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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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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6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참 좋은 공감가는 글을 쓰는 분이 한국일보에 계시다니, 감사합니다!
ㅎ ㅎ 최저 임금 몇백원 올린다고 나라 망한다고 문통 죽이려고 난리치는 보수 언론 야당들 프랑스로 보내서 혼좀 내주지
오랜 기간동안 복지에 길들여진 프랑스 . 뒤에서는 경제 후발국들의 추격을 받고 앞서가는 국가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땀흘려 얻는 소득 보다 소득의 분배를 더 요구하는 국민성은 발전의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되었다. 이제는 자원과 물자와 저렴한 노동력까지 제공해 주던 식민지도 없이 오직 전투기와 항공기같은 군수물자 및 사치품, 관광 거리 하나로 왕년의 명성을 이어가는 프랑스. 자신들 보다 한참 못살던 나라들에게 선진국 자리를 넘겨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료세 인상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건 평등의 문제라기보다 국민의식수준의 문제라고 보고싶다.
그 나라의 운명은 결국 국민들이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히틀러도 독일국민들이 민주선거로 뽑았고, 광란의 프랑스대혁명도 그 국민들이 저지른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