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층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면 누구에게도 닥치는 게 죽음이다. 최고 권력과 호사를 누리는 통치자들이거나 길거리에서 태어나 구걸로 연명하는 거지들에게나 어김없이 죽음이 닥친다. 태어나는 날이 있으면 죽는 날이 있다는 면에서 죽음 자체는 인간들의 배경이 전혀 문제가 안되는 평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죽은 다음의 의식 절차에 있어서는 망자의 신분과 배경에 따라 처우가 달라진다.
우선 보통 사람들의 사망은 친족들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 신문이나 방송 미디어의 부고 기사로는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과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일생은 기사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유명인사들의 부고기사는 몇 년 전 부터 준비 작성했다가 사망원인과 장례식 마련을 추가하여 게재된다. 11월 30일 94세로 일생을 마친 미국 제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12월 2일자 워싱턴 포스트 제1면 톱기사는 오랫동안 포스트의 정치부 기자를 하다가 얼마 전부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카렌 투멀티의 ‘공복(Public Servant) 겸 정치가’ 라는 부시의 부고 기사였다. 그 기사는 사진까지 곁들여 A-10면에서 12면으로 이어진다. 1면에는 또한 부시의 레이건 시절 부통령 때와 대통령 재임시 그를 취재했었던 은퇴기자의 분석 기사가 실렸다. 그 밖에도 또 하나의 민완기자 회고담이 게재되었고 톱 사설도 부시에 대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OP-ed 페이지에는 두 명의 칼럼니스트에 더해 빌 클린턴의 회고담이 실렸다. 클린턴은 1993년 1월 20일 취임식에 이어 집무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의 전임자가 남겨놓은 편지를 인용한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당신이 잘 하시길 빕니다… 이제는 당신의 성공이 우리나라의 성공입니다. 나는 당신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조지”
1992년 대선 때 “이 바보들아, 경제가 문제야”라는 클린턴 진영의 선거구호가 상징하는 두 선거 진영들 간의 치열했던 경쟁을 회고해보면 부시의 너그러움의 금도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아프리카의 기근 해소를 위해 20억불에 가까운 모금을 했었다는 기록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2차대전 때 만 18세에 해군으로 들어가 조종사로 일본군함들을 폭격하다가 격추당했던 부시는 커네티컷 주 출신 상원의원이었던 부친의 교훈대로 공공봉사 정신에 투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텍사스로 주를 옮겨 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었지만 나중에 하원의원으로 당선 되어 4년 의정생활도 했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 시절에 유엔대사, 국교수립이전의 주중대사를 거쳤고 그 이후에 CIA국장직에 있다가 레이건의 부통령으로 8년 경험을 했으니까 잘 준비된 대통령이었지만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1989년 1월부터의 첫 임기 중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유엔을 사용한 30개국의 공동연합전선으로 100시간 동안의 전쟁 끝에 이라크 군들을 몰아냈지만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매파들을 실망시켰다.
전쟁을 실제로 체험한 사람으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을 쉽사리 내리는 대신 신중하고 온건한 정책을 추구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중공이 천안문 사태로 많은 젊은이들의 민주화 운동을 탱크로 진압했을 때도 중국의 불안정한 상태가 세계정세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여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국무차관을 등소평에게 보내기도 했다. 냉전과 소련의 끝장도 부시 임기 중에 있었던바 여기저기 헛발디디기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고르바초프등 소련의 개혁파를 지지하여 동구권의 해방과 소련제국의 붕괴에 큰 탈 없이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년도 4월에 사별한 바바라 부시와는 73년 동안의 결혼 생활로 백악관 주인들 중 신기록을 세웠다는 점도 다른 대통령들과 대조된다. 바바라 부시는 나는 맨 첫 번째 키스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언급하곤 했었다는 것만 보아도 정말 모범적 결혼이었던 모양이다. 후세인과의 전쟁과 소련 제국 붕괴 이후 한때는 90퍼센트 정도 인기가 있었던 그가 재선에 패배한 것은 세금을 안올리겠다는 공약을 파기한데다가 경제 상태 때문이었고 로스 페로 제3당 후보에게 잠식당한 결과였다.
그러나 부시는 존 아담스와 그의 아들 퀸스 아담스를 이어 부자 대통령 가문을 일구었다. 제프 부시의 2016년에서의 실패로 트럼프와의 관계가 나빠졌지만 트럼프를 자신의 장례식에 초대하도록 지시한 것 역시 그의 온건성과 신사도를 상징하는 듯하다. 추도사 하는 사람들도 43대 아들, 캐나다 전 수상, 알란 심슨 전 상원의원과 부시 전기 집필자로 다른 전직 대통령이 포함되지 않은 데서도 그의 배려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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