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다. 고도의 문명 발달 덕분에 살기가 매우 편해져서다. 오래 전 캘리포니아 1번 도로 해안가에 위치한 허스트 캐슬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때 이집 주인이 여기 살며 나름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은 평범한 나마저도 쉽게 누릴 수 있는 혜택을(예: 에어컨) 그 부자는 누리지 못했을 거라는 상상이다.
그러나 이런 최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가 않다. 어릴 때, 좋은 차타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집 살면 자연스레 ‘좋은’ 사람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좋은 것들과 사람 좋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인간의 마음들은 팬시해진 외양이나 환경과는 달리 많이 천박해져가고 있다. 마치 구약시대의 바벨론포로 직전의 이스라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영역은 정치계와 법조계다. 한국 TV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잡히는 장면들이다. 고상한 척, 나라를 위한 척, 그래서 자기는 애국자고 영웅인 척한다. 또 자기만이 세상 법을 유일하게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거의 대부분 거짓말이다. 어떤 이는 아예 대놓고 거짓말한다. 가장 신뢰받아야 할 법치의 수장들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 달성을 위해 법을 이용해 백성들을 우롱한다.
더 심각한 곳은 사회적으로 정직의 본을 보여야 할 언론계와 종교계다. 과거엔 언론의 활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신문에 나면 다들 믿는 분위기였다. 요샌 전혀 아니다. 그 신문에 났으니 그건 대부분 거짓말이다. 자사 언론의 생존을 위해 왜곡과 편향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편승해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혼란스러운 사실은 그 말도 안 되는 가짜들이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이용해 더 많은 가짜들이 양산된다. 엄청난 먹이사슬이다.
한 현인은 ‘희생 없는 종교’는 종교로서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요새처럼 딱 들어맞는 때도 없다. 종교는 최후의 사회적 양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계만 봐도 양심이 많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이름은 수도 없이 거론되나, 정작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시는 중이다. 사회적 양심이라는 잣대로 당대 종교계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예언자 이사야의 언어들이 재현되고 있는 실정이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이사야 1장 13절).
필자가 목사 되려고 할 때만 해도 그랬다. 교회와 목사가 사회를 향해 화두를 던지면 그들은 그래도 들으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교회와 목회자가 신뢰받지 못하는 대표적 집단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사태가 왜 일어나고 있는가?
굳이 내 자신을 분류하라면 나는 ‘선지자적 비관주의’에 속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그래서 선지자다(이고 싶다). 그런데 그 미래가 거의 희망적이지 않다. 그래서 비관주의자다(인 것 같다). 딱히 현실적 해결책도 잘 제시하지 못하면서 아픈 미래를 바라보며 속절없이 슬퍼해야 하는 고독한 선지자적 삶 말이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난 매년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해! 꼭 오셔야 해!” 만약 그분이 오시지 않았다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회 안에 팽배해진 선지자적 비관주의에 대한 해결책은 전무했을 것이다. 이 시대 분위기도 그렇다. 예수님 오셨을 때와 많이 비슷하다. 지금도 그때처럼 사회적 양심의 실종으로 인한 강력한 어둠이 온 세상에 드리워지고 있다. 백성들의 심중에는 분노와 체념이 들끓는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가 오셔서 해결하셔야 한다. 금년도 성탄절의 의미는 내게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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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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