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자락 12월에 들어섰다. 더해지는 나이와 계절의 상념은 함수관계에 있는 것일까. 해마다 이때쯤이면 점점 더 깊은 우수에 젖어 드는 시간이 잦아진다. 왜 그럴까. 올 한해의 여정 또한 예외 없이 복잡다난한 혼미의 연속이었기 때문일까. 사사로운 보람이나 행복한 순간의 갈피들을 엄청난 사회 부조리 모순들이 일 년 내내 압도해 버린 탓일까. 어쩔 수 없이 긴 탄식을 토하며 한 해의 종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하늘나라가 너희 중에 있느니라.” 성경 말씀 중 가장 감명 깊은 구절이다. 너희 영혼 가운데에 있는 모든 부정적 요소를 완전히 버려라. 진정한 사랑과 무욕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 곳이 한 없이 청정한 하늘나라가 아니겠는가.
석가모니 깨달음의 내용도 ‘즉심시불’, ‘일체유심조’. 결국 하늘나라가 너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서로 질투하지 않고, 모략중상 하지 않고, 분열하지 않고 서로가 잘 되기를 축복한다면 그 곳이 바로 우리들의 하늘나라가 아니겠는가.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계속해서 설파한 것이 무엇인가. 똥, 오줌 더러움으로 가득 찬 ‘예토’를 벗어나 ‘서방정토’로 가자는 것이었다. 서방정토가 유럽인가 아니다. 인간 서로가 탐욕으로 시비를 불러 살육과 강탈 모함의 지옥을 만들지 말고 자비로 가득 찬 극락세계 ‘피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늘나라가 너희 중에 있느니라.” 바로 그 말씀이다. 불교의 유행가처럼 돼 있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우리 함께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에 도달하였네 아, 깨달음이여 영원하라!)
현 세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면서 일 년을 양심 고백해 본다면 무슨 답이 나올까. 아무도 자괴감에 선뜻 고백하지 못하겠지만 그 답은 단연코 ‘부끄러움’ 일 것이다. 하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지구를 우리가 얼마나 더럽히고 있는가.
지금 세계 어디를 가도 TV를 틀거나 신문을 보면 빼앗고, 죽이고, 저주하고, 악담하는 내용 등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뿐인가 습관화 돼 있는 거짓말, 허풍, 사기, 부부, 자식 부모 존속 살해가 다반사가 되어 가는 지경이다. 더 나아가 종교의 이름을 팔아 각종 범죄가 양산되는 극악한 참상마저 보통일처럼 지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러운 금전비리와 멈출 줄 모르는 마약과 육체적 타락의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한해가 아니었나.
시종 일관 ‘덕’을 강조한 공자는 항상 ‘피상교’를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가면을 쓰고 살지 말라는 얘기다.
사람을 사귀되 진심을 빼놓고 가짜를 사귀면 서로가 피해를 입고 악이 발생하게 되니 진심을 가지고 서로가 화합하며 살아야 좋은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그런 뜻일 것이다.
노자도 장자도 ‘무위자연’, ‘상선약수’를 주제로 삼았다. 건전한 자연의 승화처럼 인간의 본성, 선을 지향하라는 중용지도다. 증오와 탐심을 버리고 더러움 없는 경지, 즉 하늘나라를 만들자는 진리이다.
올 한해 우리 모두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나 반성해 볼수록 괴롭고 아리고 쓰린 회한이 먼저 밀려온다. 그나마 우리 인간에게 예수, 석가, 공자, 간디, 만델라, 테레사 수녀 같은 성인들이 없었더라면 인간으로서의 체면이 엉망이었을 것이다.
전쟁으로는 평화의 세계, 하늘나라가 결코 올 수 없다는 결론을 찾은 대 철학자들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마르셀 등은 ‘한계 상황론(Boundary Situation)‘을 펴며 ‘유신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늘나라에 진정한 평화, 행복이 있음을 여실히 증언한 셈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한해를 선보다 악을, 진실보다 가식을, 양심보다 욕심을 더 추구해 오지 않았나. 이런 토양 속에서 희망이 있는 사회, 행복이 있는 사회가 이룩될 수 없고 바른 정치가 구현 될 수도 없을 것이다.
13세기 유럽의 정치가이자 시성인 단테는 그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신앙의 찬가) ‘지옥편’에서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절망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회 어디엔가 선이 있고 하늘을 추구하는 한줄기 청량한 물줄기가 탁류 분탕질 속에서나마 도도하게 흐르고 있으리라 믿는다. “신은 죽었다”고 절규했던 니체도 마지막에는 “신이 있었다면 믿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우리 모두 하늘나라를 영접할 것을 다짐하자. “하늘나라가 너희 중에 있으니라.”
(571) 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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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자유광장 회장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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