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마지막 달은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다. 화살처럼 지나가 버린 지난 11개월. 어떻게 지냈나. 사람처럼 살았나. 아님, 무엇처럼 살았나. 또 새해의 목표가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나. 후회하지 않고 12월을 맞이할 수 있나. 아님, 후회의 연속으로 12월을 채워야 하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이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 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 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감추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제는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 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들어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오광수시인의 시 ‘12월의 독백’ 전문이다.
어쩌면 사람은 후회하는 동물일지도 모른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생. 후회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금년에도 마찬가지. 자부할 일 보다는 후회할 일이 더 많았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시인의 노래처럼 텅 빈 가슴을 또 들어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으로 12월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 사람으로 태어나 시공을 초월해 살 수는 없다. 시와 공을 덧입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 시와 공. 세월. 그래 사람이란 세월을 옷처럼 덧입고 살아가다 그 세월 속에 함몰되어지는 존재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욕심을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인간상의 모습들. 그 부끄러움은 한 해의 끝자락 12월이 되면 더 처절해진다.
“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 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 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 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 12월의 공허. 작년 같은 올 한 해가/ 죽음보다 진한 공허로/ 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 오경택시인의 시 ‘12월의 공허’다. 오 시인은 대머리 시인인가 보다. 욕심과 공허의 보따리들. 그 보따리가 인간의 벗겨진 이마 위를 영원히 지나길 바램 해 본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 알면서도 비우지 못하는 아픔. 그 아픔을 간직한 채 매 년 돌아오는 12월을 맞이해야 한다. 아마도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는 이런 욕심을 벗어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망각의 세월.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되풀이하는 숙맥 같은 인생이 너와 나가 아닐까.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중략)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중략)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고마운 시간들이여.”
이해인시인의 ‘12월의 시‘다. 그래, 우울해하기 보다는 고마워하는 게 좋겠다. 후회도 너무 깊이 하지 말아야지. 맑은 마음, 순결한 눈을 지니도록 계속 노력해야지. 남은 달력 한 장이 바람에 팔랑대도 내년에는 모든 것이 다, 더 나아질 것 같은 기대와 희망 속에 12월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공허여 가라, 고마움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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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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