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기분이 이럴까. 색조화장, 선크림까지 걷어냈다. 원래 피부톤과 입술색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색 진단 결과 봄 계열 색상의 옷이 잘 어울린다는 조언을 받았다. <신상순 선임기자>
“눈화장, 립스틱, 선크림까지 다 지우셔야 해요.”요즘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퍼스널 스타일링’을 위해선 ‘자연 상태’가 중요했다. 색조 화장에 선크림까지 모두 지우고 맨 얼굴로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묶었다. 흘러나온 잔머리와 앞머리까지 걷어냈다. 긴 머리카락과 화장으로 가리곤 하던 동그란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굴욕’을 견뎌야 진정한 패션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피부 톤과 얼굴 골격을 꼼꼼히 확인한 민율미 한국패션심리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오늘 입은 블라우스는 화사한 꽃무늬가 가미됐지만, 검은색 바탕이라 어두운 분위기를 주죠. 피부톤이 밝은 편인데, 얼굴에서 옷으로 매끄럽게 흐르는 느낌은 아니에요.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거죠.”
16일 오후 서울 역삼동의 이미지 컨설팅 업체 한국패션심리연구소를 찾았다. 개인의 특질에 맞춰 어떤 화장을 하고 어떤 색에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할지 알려주는 퍼스널 스타일링을 받기 위해서였다. ‘퍼스널컬러 진단’부터 받았다. 말 그대로 개인의 유형을 파악해 어울리는 색을 조언해주는 서비스다. 적절한 색만 찾아주는 게 아니다. 피부 색에 어울리는 메이크업과 의상, 액세서리와의 조합, 헤어스타일까지 상세히 알려줬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둔 연예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체지방 측정·동행 쇼핑까지… 본격적인 코칭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민 소장은 여러 가지 색깔이 배열된 천을 얼굴 밑에 갖다 댔다. 짙은 보라색 천을 대니 얼굴의 굴곡진 부분이 강조돼 나이 들어 보였다. 베이지색 천을 대니 부드럽고 밝은 인상으로 바뀌었다. 민 소장은 “이미지를 보니 상?하의를 모두 파스텔톤으로 가면 인상이 너무 흐려 보일 것 같다”며 “상의는 은은한 계열로, 하의는 원색으로 배치해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한 느낌을 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메이크업. “얼굴에 노란빛이 도는 따스한 피부 톤이지만 볼 쪽은 미미하게 붉은 기도 있는 편”이라며 피치ㆍ코랄 계열의 색상을 추천했다. 상담실에 구비된 색조 화장품 몇 가지를 직접 발라보고 피부에 맞는 화장품 고르는 법과 제품까지 추천 받았다. 액세서리는 동그란 얼굴을 보완할 수 있는 긴 귀걸이가, 색상은 골드 계열이 어울린다고 했다.
평소 자주 활용했던 아이템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살아오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나름 머릿속에 세워둔 패션 원칙이 무참히 깨졌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본 민 소장이 웃으며 달랬다. “본인이 생각했던 스타일과 다른 진단이 나오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괜찮아요.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느냐 안 따르느냐는 개인의 판단이니까요.”
이날 받은 스타일링은 1시간이 소요되는 기본 과정이다. 비용과 시간을 더 투자하면 신체 사이즈와 체지방 등을 측정해 자신의 이미지와 체형에 맞는 패션에 관해 조언 받을 수 있다. 여러 조언을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들은 ‘동행쇼핑’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어울릴 옷을 직접 골라주고 옷 고르는 팁까지 전수해주는 서비스다.
가격은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다. 스타일링 조언 정도만 해주면 대략 6만원 정도 들고, 20만원을 들이면 체지방을 측정하고 잘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해준 후 여러 옷을 입어보고 어울리는 패션을 확실히 찾을 수 있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최근 3~4년 사이 이 무형 서비스에 과감히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민 소장은 “2015년 사업초기엔 한달 평균 30~40명의 고객이 찾아왔는데, 지금은 80~100명이 이용한다”며 “업체도 늘어나고 퍼스널 스타일링에 관한 대중의 이해도 높아져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민 소장처럼 사무실에서 고객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온라인으로 접수를 받고 손님을 직접 찾아나서는 스타일리스트도 있다.
“유행 쫓기 아닌, 나만의 개성을” 퍼스널 스타일링의 개념은 1950년 미국이 컬러방송을 개시하면서 생겨났다. 1950~60년대 개인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컬러 컨설턴트가 확산됐고, 1980년대 퍼스널 스타일링이 대중화됐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 학계에서 연구 목적으로 활용되다가, 10여 년 전부터 전문가 육성 업체가 하나 둘 생겨났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미지 컨설팅업체는 최근 확산되는 추세다.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면서도 경제력을 갖춘 3040세대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 한 업체에서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은 직장인 조연희(48)씨는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찾아 자신감과 만족을 얻고 싶었다”고 했다. “나를 나답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직업 특성상 무채색 옷을 많이 입었는데, 퍼스널스타일리스트의 조언대로 밝은 계열의 티셔츠를 입었더니 주변 반응이 달라지더라고요.”
남성의 경우 결혼시장에 나서는 30대부터 50대 최고경영자(CEO)까지 연령대와 직업이 다양하다. 최근엔 20대 초반까지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이미지 컨설팅업체 리한나 이미지의 리한나 대표(본명 오한나)는 “20대는 별다른 계기가 없어도 더 예뻐지고 싶은 욕구로 이미지 컨설팅업체를 찾는다”며 “연예인 스타일리스트처럼, 나만을 위한 전문가를 쓸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퍼스널이미지연구소 강진주 소장은 “예전엔 옷을 잘 입기 위해 유행을 쫓았다면, 지금은 나만의 개성을 찾는 것이 트렌드”라며 “비용도 저렴해지고 있어 앞으로 20대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류의 발달로 무엇을 골라 입어야 할 지 고민하게 된 환경도 사람들이 퍼스널 스타일링을 찾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패션심리연구소 민 소장은 “패션, 메이크업 등 모든 부문에서 다양한 제품이 쏟아지다 보니 결정장애를 겪는 이들이 많다”며 “나에게 맞는 제품이 무엇인지 몰라 반복해서 구매를 실패하는 이들이 제품을 추천 받으려는 목적으로 찾기도 한다”고 했다.
패셔니스타가 되려면···옷장 안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면, 자신이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옷을 잘 못 입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자신에 대한 무지’를 들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관심이 없으니 단순히 유행을 무작정 따르거나 고가의 의류를 구매한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행만 바라보다가는 뱁새 신세 되기 십상이다. 옷을 고르기에 앞서 전문가들에게 기본으로 지켜야 할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먼저 거울을 자주 보자. 리한나 이미지 리한나 대표는 “자존감이 높은 이들이 대부분 옷을 잘 입는다. 뭐가 나에게 맞는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거울을 자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강 소장은 “평소 많이 듣는 이야기를 객관화 시켜라”라고 조언했다. 주변 사람들이 당사자가 못 보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강 소장은 “주변의 평가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객관화시켜 생각해 본다”며 “무엇을 고쳐야 할지 보이니 이미지를 풀어내기 한결 쉬워진다”고 했다.
이미지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결정했다면, 자신의 형태에 집중한다. 민 소장은 “얼굴과 몸의 형태와 옷 스타일은 반대로 간다”며 “얼굴이 동그랗다면 어깨 선이 각진 재킷을, 날렵한 외형이라면 앙고라 니트 같은 부피 있는 소재를 활용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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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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