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가 불타고 있다. 북가주 북쪽에서 번진 ‘캠프 산불’은 피해규모가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되었다. 화산재같이 자욱한 연기가 연일 몰려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태양을 가린지 벌써 두주 째다. 눈과 목이 따갑다.
근 20년 전, 환경에세이를 모은 내 첫 졸저의 제목이 ‘불타는 숲’이었다. 당시에도 기후온난화와 숲을 침범하는 인간들의 주거지 탓에 점점 대형화하는 산불에 대한 우려를 담았었다. 그런데 근래 현실로 나타난 산불의 빈도와 파괴력은 당시 예측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서울 친구들이 초겨울 북가주 방문 계획을 알려왔다. 극심한 미세먼지를 피해 샌프란시스코의 비취 빛 하늘과 꿀 송이 같은 공기, 울창한 자연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때까진 산불이 꺼지고 날씨도 제 모습을 찾길 바라며 내심 ‘뮤어(Muir) 숲’을 첫 행선지로 생각했다.
오직 캘리포니아에만 있는 숲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구온난화의 희생물로, 인간들의 훼손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숲. 그러나 태멀파이어스 산 계곡에 숨겨진 레드우드 숲을 자랑하고 싶다.
모든 나무들이 다 신의 작품이겠지만 그의 손길이 가장 가까이 머문 나무가 미국 삼나무라 불리는 레드우드가 아닌가 싶다. 우선 레드우드는 땅 위의 어느 나무보다 크고, 수려하며, 우람하고, 오래 산다.
레드우드는 키가 무려 100-130미터 이상 곧게 뻗어 어느 나무보다 하늘에 가깝고, 둥치 지름도 3-10미터나 돼 장정 서넛이 둘러서야 겨우 아름으로 안을 정도다. 수명도 1,000년에서 2,000년이 넘는다. 가장 오래된 수장 격은 ‘셔먼(Sherman) 장군’이라 불리는 3,500세 된 세코이야 거목으로, 신선의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청청하다. 사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신의 햇수로 지금껏 살아온 나무는 이 세상에 레드우드밖에 없다. 이들은 1억년 전 온 북미대륙을 뒤덮었고 그 숲 사이로 공룡들이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신이 레드우드를 특별히 총애한 증거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 첫째로 수백 수천년이 가도 썩지 않고 병들지 않는 특수한 강성 체질이다. 나무 섬유질 속에 천연방부제인 독한 탄닌산이 듬뿍 들어있어 벌레나 곰팡이류가 얼씬도 못한다. 그래서 죽은 레드우드를 잘라 옷장 방부제로 쓴다. 또한 나무껍질의 섬유질이 두터워 웬만한 산불은 그 껍질을 좀체 뚫지 못한다.
또 하나 특징은 130m 이상 되는 높이까지 물을 나를 수 있는 능력이다. 보통 나무들도 대기압과 물의 표면장력을 이용한 모세관 인력으로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을 나무 끝까지 올린다. 그러나 100m 이상 끌어올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통설이다. 그 높이만큼 물을 올리려면 자그마치 기압의 12-13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레드우드 잎새는 정상에서도 늘 푸를 수 있는가에 대해 누구도 시원스런 답을 못하고 있다. 단지 물 분자를 연합시키는 수소 결합의 힘, 즉 확산력과 삼투력 때문이 아닌가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레드우드가 신의 속성을 많이 닮은 점은, 그들의 성장과정과 서로의 끈끈한 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대개 레드우드는 너덧 그루가 가운데 빈자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그로브(grove)를 형성하며 자란다. 그 이유는 어미나무가 어린 묘목 싹을 처음 틔울 때, 씨 발아(發芽)보다는 어미나무 뿌리에서 직접 내는 뿌리 발아법을 쓰기 때문이다.
어미나무는 2세의 어린뿌리들을 자기의 긴 뿌리에서 틔어 먹이고 키운다. 2세 묘목들이 충분히 성장하면 영양을 다 빨린 어미나무는 결국 수명을 다하고 죽는다. 레드우드 그로브 한 가운데 텅 빈 자리는 어미나무의 희생적인 사랑이 남은 흔적이다.
놀라운 사실은 레드우드들의 뿌리가 의외로 깊지 않다는 것이다. 겨우 1-2m 깊이에, 옆으로 20-30m 정도밖에 퍼져 있지 않다. 100만 파운드 이상의 거목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뿌리로는 너무 얕은 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신의 가르침이 있어서, 이들은 함께 얽혀 살면서 서로의 뿌리를 공유하고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서로를 꿋꿋이 지탱해주는 것이다.
옛 친구들이 오면 신의 나무, 레드우드 숲으로 갈 것이다. 중세의 성당처럼 깊고 정결한 숲. 숲 속엔 잘 익은 흙냄새, 촉촉한 이끼내, 또 새로 깎은 연필 내같은 적송 향이 향불 내음처럼 짙게 배어있다.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면 그 청정한 적막 속에서도 바람에 묻어오는 나무들의 따뜻한 숨소리. 또 간간이 푸드득거릴 뿐, 날갯짓마저 삼가며 영혼을 닦는 새들의 구도송(求道頌)들이 들린다. 신의 숲에 오면 늠름한 레드우드에 기대어 모처럼 마음을 쉰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레드우드들이 점점 멸종돼 가는 것이다. 인간들의 무차별한 벌목으로, 대형 산불로 이젠 옛 숲 면적의 5%도 남지 않았다.
이 시대에 레드우드의 사라짐은 무엇을 예고하는 것일까? 신의 성품에서 한없이 멀어져만 가는 인간들로부터 신이 점점 떠나가는 징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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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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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저버린게 아니고??
인간은 신을 버린지 오래 되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