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소가 발표하는 북한에 대한 보고서는 새로운 정보를 논의하지 않는 한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런데 지난주 워싱턴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북한내의 13개의 현재 운용중인 미사일 기지에 대한 위성영상 분석보고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면서도 워싱턴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미 이들 미사일 기지들에 대해서 한미 군사당국이 알고 있고, 항상 감시대상이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은 아닐 지라도, 군사정보 접촉이 불가능한 일반인들에게는 위협을 느낄만한 내용이라,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만하다.
보고서 작성자의 한 시람인 조셉 버뮤데즈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들을 미사일 사정거리에 따라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등 3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작전, 전술, 전략 기지로 지칭했다. 이 기지들은 휴전선 인근의 황해도 삭간몰 기지에서 부터, 북중 국경지대에 이르기까지 북한 전역에 걸처 분산 은닉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략기지에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동식 발사가 가능한 ICBM들이 배치되어 있다.
보고서는 11월 12일 뉴욕타임스가 “북한의 미사일 기지들, 대규모 기만의 시사” 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고, 곧 이어 다른 주요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했다. 이어 많은 전문가들과 민주 공화 양당의 연방의회 의원들까지 북한의 비핵화의지를 문제 삼고, 트럼프 대통령의 포용적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심지어 한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놀아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13일 트위터를 통해 뉴욕타임스 기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부정확하며, 가짜뉴스” 라고 반박했다.
보고서의 발표시점이 관심을 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하원의 장악을 상실했고, 11월 8일 뉴욕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간의 회담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취소한 직후였고, 평양선전 매체들이 미국의 제재 유지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병진정책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던 중이었다. 북한에 유리한 거래를 해줄 수 있는 트럼프의 능력에 차질이 생겼다는 의구심을 북한이 가질 수도 있다.
한미 양국이 말하는 것처럼,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새롭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북한이 어떤 합의를 어긴 것도 없다. 북한 미사일 또는 미사일 기지의 운용 또는 폐기 등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김정은이 약속한 비핵화에는 핵무기의 전달체계인 미사일의 폐기도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청와대의 김의겸 대변인은 뉴욕타임스가 사용한 “기만” “미신고” 등의 표현들은 핵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양은 핵무기도 신고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고, 따라서 지금까지 북한이 신고를 하도록 의무화 하는 미북간에 합의가 없다. 이 문제는 제2 미북정상회담이 열려야, 그 때 가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서 핵 억제력의 대량생산을 지시한 바 있다. 그 방침을 중단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북핵은 더 이상 미국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등의 존재 자체가 위협 요소가 된다. 한편 북미가 서로 선제타격을 위협하던 1년 전보다, 지난 10개월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긍정적 행동 등을 고려하여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시켰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있으며, 미군전사자들의 유해를 송환했다. 북한은 또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파괴하고 미국인 억류자들의 석방, 군사력과시 자제, 반미 선전 완화 등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은 제재완화와 종전선언 등 미국측의 상응조치가 없다는 이유로 비핵화 과정의 진전을 가로 막고 있다.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15일 윌슨센터와 북한대학교의 공동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한 조명균 통일장관에 의하면 김정은의 연내 답방이 아직도 살아 있고, 남북간의 연내 종전선언도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중단된 북미간의 비핵화 회담도 곧 열릴 수 있는 신호들이 보인다. 펜스 미 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민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1월 이후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북미정상 회담을 위해서는 첫번째보다 훨씬 구체적인 비핵화 과정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북미 실무자들은 바로 이런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북핵문제는 처음부터 쉽게 풀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의 대화는 아직 살아 있다. 협상은 서로가 주고받는 과정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받는 것 없이 말만 믿고, 핵무기를 포기할 리는 없다.
현 시점에서, 한미는 제재압력 방침에 변화가 없다. 한국은 해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제재문제 해결 없이 북한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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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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