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우 변호사
‘촌철살인’이란 한문 4자 성어는 어떤 사태의 정곡을 찌르는 표현을 이른다. 지난 주말 워싱턴 포스트의 만평 하나도 그런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병문안 카드의 겉장은 ‘제발’(Please)이란 단어를 28차례 반복하더니 3번째 면에 ‘완쾌되십시오,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라 되어 있다. 긴스버그는 25년 전 클린턴이 연방 대법원 판사로 임명하여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대법원 홍일점에서 벗어나게 한 진보 성향의 인물이다. 금년 85세인 긴스버그 판사가 중간선거 직후 자신의 집무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갈비뼈가 세 개 부러져 입원한데 대한 촌평이었던 것이다.
만약 긴스버그 판사가 2년 사이에 건강악화로 사망하거나 사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 후임을 임명할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 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 성향의 논객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트럼프는 취임 초에 닐 고서치를 임명했고 얼마 전에는 우여곡절 끝에 브렛 캐버노의 상원인준에도 성공했다.
따라서 그가 긴스버그의 후임을 임명하게 되는 경우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당으로서 의석을 늘린 상태에서 인준은 식은 죽 먹듯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민주당계 인사들이 겁내고 있다. 물론 종신직인 대법원 판사들이 반드시 임명권자와 같은 성향의 판결만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공화당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하다가 1953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임명했던 얼 워런 대법원장이 있다. 그는 1954년에 브라운 대 (캔사스 토피카) 교육청이란 대법원 판례를 9대0으로 도출하여 노예해방 이후에도 온갖 차별을 받아 왔던 흑인들의 인권 신장에 큰 획을 긋는 역할을 했다.
‘플레시 대 퍼그슨’이라는 1896년의 연방 대법원 판례는 흑인들과 백인들의 시설이 동등하기만 하면 흑·백을 분리시켜도 수정헌법 제 14조를 어기는 게 아니라는 억지 주장이었다. 그 판례에 따라 미국 전체, 그리고 특히 남부 여러 주들에서는 철저한 인종차별과 흑인들로부터의 참정권, 교육권 등 기본권의 박탈이 공공연히 자행되어 왔었다.
흑인들의 참정권 또는 투표권을 빼앗은 방법으로는 하버드 대학생도 붙기 어려운 투표권자 시험을 요구하는 게 있었다. 백인들에게는 그런 시험을 요구하지 않았던바 소위 ‘할아버지’조항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투표한 적이 있으면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으니 흑인들의 투표권 박탈을 위한 것이었다.
흑인 아이들은 집 부근에 있는 백인 학교에는 갈수가 없었고 몇 마일 걸어 흑인 전용 학교에만 다닐 수 있었던 것을 1954년 새 판례로 “인종분리 자체가 헌법의 인종들 간의 평등권에 위배 된다”고 뒤엎었기 때문에 정말로 역사적인 판례였다. 1954년의 대법원 결정이 만장일치의 판례였음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여러 교육청들의 대규모 저항으로 공립학교들이 문을 닫았던 역사도 있었다. 마음속의 편견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마틴 루터 킹 박사의 민권 투쟁에 이어 1960년 중반에 이루어진 투표권법과 민권법으로 흑인들만이 아니라 다른 소수계 민족 출신 시민들의 권리도 크게 신장되었다. 하지만 헌법 해석의 쟁점들은 여전히 상존한다. 미국의 양대 정당이 대법원 판사 임명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대법원의 현재 분포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조시 w 부시), 클레런스 토마스(아버지 부시),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클린턴), 스티븐 브라이어(클린턴), 새무엘 앨리토(조지 w 부시), 소냐 소토마이어(오바마), 엘레나 캐건(오바마), 닐 고서치 (트럼프), 브렛 캐버노(트럼프)이다.
9대0은 커녕 8대1 또는 7대1의 판례는 보기가 어렵고, 5대4인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 미국의 첨예화된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만약 트럼프가 또 한 명의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게 되면 많은 대법원 사건들이 6대3으로 보수일색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많은 진보 인사들은 긴스버그가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 승리를 거두어야 긴스버그의 후임자를 임명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앞으로 양당의 싸움은 더 치열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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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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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엔 하늘은 우릴 버리지 아니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