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온 미국인 여기자 리 미들턴 씨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생면부지의 그녀는 나를 찾으려고 많은 시간과 발품을 들였다고 했다. 그녀가 건네준 빛바랜 신문 파일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1972년 3월 11일자 코리아타임스 기사였고, 바이 라인(필자란)에 내 이름이 또렷이 달려 있었다.
그 인터뷰 기사를 썼던 거의 반세기 전 새내기 기자 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장문의 그 기사엔 미국인 부인이 한국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는 사진이 딸려 있었다. 미들턴 씨는 그 갓난아기가 자신이라고 했다. 미국인 부인은 한남동 자택 문 앞에 버려진 자기를 발견하고 미국에 입양될 때까지 돌봐준 은인이지만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양부모(작고)에게서 받은 낡은 신문철을 들고 생부모 찾기에 나선 그녀는 우선 서울 한국일보 본사의 코리아타임스를 찾아갔다,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가까스로 만난 이창순 사진기자(30여년 전 은퇴)로부터 내가 오래 전 LA 미주본사로 전근했다는 말을 듣고 LA본사로 연락했고, 다시 내가 오래 전에 시애틀지사로 옮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미들턴 씨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기사에 없는 그녀의 생부모 정보가 내 머릿속에 있을 턱이 없다. 그녀는 나를 찾는 한편으로 한국 관계당국과 다른 언론사들에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처럼 출생의 뿌리를 찾지 못하는 해외 한국 입양아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을 쓰고 있다며 내게도 협조를 부탁했다.
한국 입양아의 애환을 그린 책이 이미 지난달 출간됐다. 역시 미국 언론인인 니콜 정(37)씨의 첫 소설 ‘기껏 알 수 있는 모든 것(All You Can Ever Know)’이다. 정씨는 시애틀의 영세 한인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시애틀 아동병원에서 극심한 조산아로 출산되자 부양능력이 없던 부모는 그녀를 오리건주 시골의 자녀 없는 백인부부에게 입양시켰다.
장성한 정씨는 결혼 후인 10여년전 생부모 찾기에 나서 이혼한지 오래된 친부모와 이복여동생을 비교적 쉽게 만났다. 그녀는 친^양 부모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많은 마음의 갈등을 자전적 소설에서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정씨의 책을 ‘올가을 베스트셀러’로 선정했다. 그녀는 지난달 시애틀 중앙도서관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최저 출산국가지만 여전히 ‘아동수출국’이기도하다. 지난 60여년 간 총 50여만명으로 추계되는 세계 입양아 중 20여만명(40%)이 한국출신이다. 작년 미국으로 입양된 세계 88개국 4,714명 중 276명이 한국아기였다. 중국과 에티오피아에 이어 세번째 많다. 작년 한국의 전체 해외입양아 398명 중 거의 70%가 미국으로 왔다.
한국 아기의 미국인 양부모들은 대부분 선량하다. 두 아들을 한국에서 입양한 브래드 오웬 전 워싱턴주 부지사 같은 명사들도 있다. 워싱턴주 해안마을 스큄의 밀드레드 오닐 여인은 한국에서 입양한 발달장애 딸이 강간당해 낳은 손자를 팔순이 지나도록 시애틀로, 밴쿠버BC로 데리고 다니며 교육시켜 오늘의 세계적 비올리스트 리처드 영재 오닐로 키웠다.
하지만 악랄한 양부모들도 있다. 미국 내 한국입양아 11만여명 중 1만 8,000여명은 양부모의 학대와 파양으로 시민권조차 못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김상필(필립 클레이)씨와 신성혁(아담 그랩서)씨는 어른이 된 후 불법체류자로 체포돼 전혀 모르는 모국으로 추방됐다. 김씨는 5년을 버티다가 지난해 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해 파문을 일으켰다.
해외 입양아들이 장성한 후 친부모에 관심을 갖는 건 인지상정이다. 한국이 잘 살게 될수록 귀환 입양아들은 많아진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미들턴 씨처럼 자신의 뿌리를 찾지 못하고 실망한다. 철부지 때 해외로 입양 보낸 정부당국이 이들의 성장 후 뿌리 찾기도 도와줘야 마땅하다. 해외 입양아들의 친부모 상봉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보다는 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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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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