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은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본보에 글을 써왔던) C모 선배는 글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돈 안 드는, 소위 깨작깨작 아무데나 쓰면 된다고 표현적이 있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글 쓸려면 원고지도 필요하고 책도 사서 봐야지… 한 달에 한번쯤은 문학잡지도 사서 봐야지, 물론 아무 노트북에다 연필로 깨작깨작 글만 쓴다면야 아마도 글 쓰는 일이야말 세상에서 가장 돈 안드는 행위의 하나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는 일이야말로 사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는 트렌지스터(라디오) 한 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음악은 마음을 열고 가슴에 거지 한 명 들어앉아 있으면 된다. 즉 음악에 대한 그런 갈급함만 있으면 음악만큼 공짜로, 무한대로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취미활동도 없다.
사람들은 종종 음악회나 가야하고, 고급 음반이나 사서 모으고 때로는 비싼 오페라 하우스나 찾아가야 진정한, 음악을 사랑하는 매니아인줄 착각하는데 사실은 그 정반대가 바로 음악을 좋아하는 모습이다.
거리의 악사… 아니 어느 악기점에서 누군가 바흐의 음악을 (기타로) 두드리고 있을 때, 마치 천상의 천사라도 내려온 듯, 가슴을 열고 영혼으로 음악을 호흡할 수 있는 자. 그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음악은 가슴 속에 거지 한 명… 사실은 가난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작은 사건이고 일상에 비추어지는 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음악은 신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라했다. 영혼이 가난한 자들이 오히려 부자이며, 음악을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뒷 골목 누군가의 낡은 기타 소리… 삶의 모습을 참답게 비쳐주는… 구슬픈 빗소리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바흐의 음악을 좋아한다. 바흐를 좋아할뿐 아니라 사랑하고 또 경외한다. 바흐의 음악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성서의 ‘돌아온 탕자’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한다. 마치 어린 시절을 회상케하는 아늑함이라고나할까. 바하의 종교적인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하며 순박한 영성을 일깨우는, 홈으로의 귀환… 평화로운 안식을 안겨준다.
서양음악의 진정한 출발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로부터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부터 약 3백여년 전, 태아가 눈을 뜨고 걸음마를 시작하여 성년에 이르고, 낭만기를 지나 그 수명을 다하기까지… 그 시기는 마치 서양문화의 전성기를 보는 것 처럼 가장 화려하고도 창조적인 시기였다.
물론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음악의 역사는 계속되겠지만 그 표현 양식에 있어서 詩, 미술 등 기타 다른 예술과 연계하여 볼 때에도 음악이 그 역할을 가장 최대한으로 발휘한 시기가 바로 바흐의 바로크 시대, 고전파, 낭만파 시대로 이어지는 약 3백년 간이었다. 아무튼 서양음악은 바흐로 시작하여 바흐로 끝난다고 한다.
그 형식적인 크기, 예술적인 크기, 종교적인 크기 때문이다. 경건하고 내면의 향수를 담은 바흐의 음악은 (각사람의) 종교가 무엇이건 간에 신의 경건한 모습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들려준다. 3백 여년이 넘은 곡들이 무수히 전해지고 있지만 오늘날까지 그 처럼 널리, 수많은 곡들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바흐의 곡밖에 없다고 한다. 마치 멀리 떠난 방랑자의 향수… 순박한 농부, 죽마고우, 조강지처의 따스함같다고나할까.
당신은 바흐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바흐라해도 모두의 바흐일수는 없다. 그것은 바흐의 음악이 (너무 형식적이고)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흐뿐 아니라 모든 클래식(서양음악)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서양음악은 본래적으로 종교적, 혹은 귀족들을 위하여 존재되어 왔던 장르의 하나였다.
귀족이라면 당연히 음악을 이해야했고 어느 정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야했음은 마치 양반이라면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했던 극동의 어떤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바흐는 ‘음악이야말로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보았다.
말인즉슨, 음악이란 인간이 단순히 즐기는 그런 향락의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초월적인, 신으로 향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인간을 경건하게 하며 아름답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을 고급 정신을 보유한, 영장류로 만든다는 것이다. 바흐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 종교음악에 헌신했다. 그가 남긴 음악만 무려 천 곡이 넘고 잊혀진 곡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칸타타와 미사 음악 등이 그가 (작곡한)음악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같은 세속 곡들도 그의 종교음악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경건하고, 소박하고,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무엇보다 영혼(이성)에 호소하는 제 3의 소리…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사도 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神으로 부터 받은, 음악의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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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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