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25년간 재직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88)가 치매 초기라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했다. 오코너는 지난달 법원에 보낸 서한에서 “의사들로부터 치매 초기단계, 아마도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면서 더 이상 공적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오코너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미국의 첫 여성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법조인이다. 그런데 그 레이건 전 대통령 역시 83세 때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이를 공식 발표한 후 공적생활에서 모습을 감춘 바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말년에 보여준 용기 있는 행보가 특별한 울림을 낳고 있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오코너는 종신직인 대법관 자리에서 2006년 조기 퇴임했는데, 그 이유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던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치매라는 노년의 불치병으로 연결된 세 사람의 스토리는 우연의 일치나 운명의 장난이라 하기에는 너무 기이하고 심산하다. 그만큼 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진 탓이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1952년 스탠포드 법대대학원 동창인 존 J. 오코너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고 평생 부부 법조인으로 서로를 지지하며 살았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24년간 보수·진보간 중요한 균형추 구실을 하면서 낙태의 권리와 어퍼머티브 액션 지지 등 미국 역사에 기록될 수많은 판결을 남겼다.
그러나 그처럼 자랑스러운 아내에 대한 기억을 남편은 훗날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다른 노인 여성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말년을 보내다가 2009년 79세로 타계했다. 남편을 위해 대법관직까지 그만두었던 오코너는 이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당시 큰아들 스캇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사랑에 빠진 10대 소년 같다”면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요양원 생활을 행복해하는 데 대해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 2006)가 생각난다. 44년 결혼생활을 함께 해온 캐나다의 은퇴부부. 자존심 강한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는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자 자진하여 요양원에 입소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동안 매일 찾아오는 남편은 알아보지 못하면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를 돌보는데 헌신한다. 남편은 그녀의 기억을 되돌리려 무진 애를 쓰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놓아주기로 한다.
치매에 관한 또 다른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 2014)는 50세의 이른 나이에 유전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언어학자 앨리스의 이야기다. 줄리안 모어의 연기가 가슴을 저미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은 앨리스가 미래의 자신에게 남긴 영상이다.
“앨리스, 나는 너야.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 침실로 올라가서 화장대 맨 윗 서랍을 열면 안쪽 깊은 곳에 약병이 있을거야. 굉장히 많은 알약이 들어있는데 그걸 물과 함께 모두 삼켜야해. 그리고 침대에 가서 잠을 자는거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훗날 앨리스는 우연히 이 영상을 발견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정신능력조차 가물가물한 상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암이 아니라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육체적 고통보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잃고 품위를 잃는 병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치료법은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신약 개발 정도인데, 의학계는 앞으로 치매 환자의 수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난 후 내게 알츠하이머병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숙고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오코너와 레이건은 치매에 관한 다른 공통점도 갖고 있다. 레이건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후 이 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치료법을 찾기 위해 국립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함께 ‘로널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창설했다. 오코너는 남편이 숨진 후 ‘알츠하이머병 치유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미국 청소년의 시민교육 웹사이트(iCivics)를 출범시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리고 레이건은 1993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오코너는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았다.
가장 위대한 미국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레이건의 유산이 사라지지 않듯이 오코너 역시 남은 삶이 어떠하더라도 그동안 성취해온 수많은 업적과 유산은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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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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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원도사, 미국만 그렇나? 조국인 한국도 차별한다. 어느나라든 다 차별, 싢으면 산속에서 혼자 살면 되겠네요.이기사는 치매를 애기하는데 참,도사 답다.
먹고 자고 일하고 나와 내가족을 잘 보살피는건 당연하지만 우리모두는 이웃이있어 나도 우리 모두가 잘 살수있다는걸 알아야하는데 요즘 어떤 사람들은 지들끼리만 사는게 진짜라고 다섯 여섯살 애들처럼 우기며 다른 소수민족 종교 얼굴색을 미워하고 차별 대우 하네요.
참정말로훌륭한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