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남·북전쟁은 노동력 부족으로 발생한 동족간의 참혹한 내란이었다. 남부 대지주들이 노예문서를 통해 흑인들을 독점하고 있어 북부 산업가들은 상대적으로 노예 해방이 절실했다. 애당초 이 전쟁에서 노예 인권은 중요하지 않았고 링컨 또한 남과 북으로 국가가 분리되는 것을 우려해 노예 해방을 지지한 것뿐이다.
흑인들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노예제로 부터 해방되었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그들 사이를 구별하는 색채를 입법화하기 시작했다. 공립학교와 주거단지·버스·기차 등 공공장소에서 흑·백 분리는 합법화되었고, 심지어 식당·화장실 사용뿐만 아니라 인종간 결혼까지 금지했다. 많은 주(州)에서는 1964년의 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권법에 의해 1967년 짐 크로우 법이 위헌이라고 선언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63년 8월 25만명이 참여한 워싱턴 평화행진에 고무된 케네디 대통령은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민권법 제정을 추진하다 1963년 11월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암살되었다. 후임자 존슨 대통령은 상원의원들을 설득해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켜 공공시설과 장소, 고용 그리고 교육에서 흑백차별이 금지됐다. 민권법의 제정은 민권운동의 승리를 의미했지만 현실에서는 차별행위가 사라지지 않았다.
“백인은 악마다. 내 인생에서 만난 백인들은 부도덕한 사람도, 정직한 사람도 단지 증오와 탐욕자들이다” 라고 말한 말콤 X는 1965년 2월 뉴욕 맨해턴에서 3명의 괴한으로 부터 샷건과 반자동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8월 LA 왓츠 폭동에서 흑인청년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6일간 계속된 폭동이 일어났다. 1967년에는 전례 없는 인종폭동의 물결이 미국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71개 도시에서 68건의 인종폭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7월 뉴어크에 이어 디트로이트에서 와츠 폭동보다 두 배가 더 큰 규모의 폭동이 일어났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1968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로 최악의 혼란을 야기 시켰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7만5,000명의 연방군과 주방위군이 진압에 나서야만 했다.
폭동이라 불리는 거의 모든 사건은 빈곤과 열악한 교육환경, 그리고 불평등을 생산하는 제도적·문화적 차별에서 촉발된다. 흑인들의 투쟁은 그들의 영혼을 되찾기 위한 숙명적인 저항 이었다. 이 투쟁의 한쪽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하는 비폭력과 인종차별 철폐의 주창자 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흑인 공동체를 식민지로 취급하고 오만한 악취를 풍기고있는 백인 우월주위자들에게 폭력과 분리주의를 내세웠던 말콤 X와 그를 추종하는 카미첼, 브라운, 뉴턴등이 주도하는 옹호자들이 있었다.
차별과 분리는 오랫동안 미국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흑·백으로 분리되고 사회를 위협하며 불평등한 두 사회로 이동하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인종폭동을 겪으면서 민권운동은 장벽제거에 바쳐졌다. 미국사회가 배출한 비주류 대통령 존 F 케네디, 흑인사회가 배출한 걸출한 인권 지도자 말콤X, 마틴 루터 킹을 잃고서야 인종차별은 비로소 1970년이 지나서 서서히 과거의 유물이 되어갔다. 암살 배후에는 이들을 감시한 FBI 국장 후버를 지지한 정치세력과 백인 우월주의자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들로 추측될 뿐 암살 사건은 여전히 미궁 상태이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명예·성실·봉사·희생이라는 ‘사회적 자본’은 인종차별과 수많은 전쟁으로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퇴색되어 버린지 오랜데, 트럼프 대통령은 뜬금없이 온 나라를 사분오열시킨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동남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으로 몰아넣은 사람들, 그리고 정부·기업의 가장 좋은 일자리 상당수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던 백인들의 잃어버린 이익과 특권을 되찾기 위해 반이민정책, 보호무역, 인종차별 정치행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이며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비판했듯이 미국은 다인종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결합’(bonding)과 ‘연결’(bridging)을 진정성 있게 표방하고 있지 않다. 지금 미국이 필요한 것은 도덕적 가치를 포함해 수많은 다른 인종적·종교적 다양성 가치들을 수용하는 ‘열린사회’로 가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이들의 가치와 이익을 위한 정책과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 소수 기득권층이 선호한 방향으로 선물을 쏟아 내도록 방관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호락호락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꿈틀대고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올바른 변화를 바라는 시민의식으로 침착하게 평가를 내려 악취 풍기는 싹들을 잘라내야 한다. 그들이 시들어가는 장미인지 아닌지 확실히 증명해내야 하며 미국이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고자 한다면 그들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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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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