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가이지스의 전설’이란 것이 있다. 가이지스라는 목동이 어느 날 동굴에서 청동으로 된 말 조각상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거인의 시체가 있고 그 시체에는 반지가 있었다. 그가 반지를 끼자 몸이 보이지 않게 된다. 투명인간이 된 그는 궁으로 들어가 왕을 죽이고 왕비와 결혼한 후 리디아 왕국의 새 왕이 된다.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가를 보여준다.
현대 판타지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이 전설의 변형이다. 평범한 시골 사람이었던 스메아골은 끼는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반지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 이를 먼저 발견한 친구 데아골을 죽이고 반지를 차지한다. 그러나 반지와 가까워지면서 그는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고 괴물 골룸으로 전락하고 만다.
갑자기 굴러 떨어진 부가 어떻게 인간을 타락시키는가를 신화나 문학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준 사례로 잭 위티커를 빼놓을 수 없다. 웨스트버지니아 소도시에서 건설회사 사장을 하며 안락한 삶을 살고 있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사건이 2002년 크리스마스 날 발생한다. 이날 허리케인이라는 마을 수퍼마켓에서 퀵픽으로 산 파워볼 복권이 당첨돼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인 3억1,400만 달러를 받게 된 것이다. 일시불로 1억1,300만 달러를 받기로 한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돈을 좋은 일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거액을 헌금해 새 교회당을 지었고 잭 위티커 재단을 설립, 1,4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자선사업에 썼다. 그러나 돈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었다. 나이트클럽과 스트립 바, 도박장 출입이 잦아지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거액을 줄 테니 옷을 벗어보라고 제의하는 게 습관이 됐다. 스트립 클럽 매니저에 차에 현찰 수십만 달러가 있다고 자랑했다 도난당하는가 하면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불행해진 것은 본인뿐이 아니었다. 스트립 클럽 매니저가 강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면서 클럽은 주류 판매면허를 박탈당하고 일하던 직원 수십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에게 복권을 판 마켓 여직원에게 집과 차를 사줬지만 이 또한 화근이 됐다. 떼 부자가 된 줄 알고 친척들이 몰려왔고 돈을 주지 않자 형제들 하고도 원수가 됐다. 또 누군가 앙심을 품고 여직원 남자 친구가 아동 성추행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마을을 떠나야 했다.
더 큰 비극은 위티커 손녀에게 찾아왔다. 남편이 자살하고 암 투병 중인 딸을 대신해 애지중지 길러온 손녀 브랜디가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쓰다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브랜디는 할아버지가 복권에 맞은 지 2년 만에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복권에 당첨됐다 망한 사람은 위티커 혼자가 아니다. 2006년 3,000만 달러짜리 복권에 맞은 에이브러험 셰익스피어는 돈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여자 친구 꾐에 빠져 명의 이전을 해 준 뒤 살해당했고, 2001년 2,70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된 데이빗 에드워즈는 과소비와 마약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극빈자 보호소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2,000만 달러 복권에 맞은 제프리 댐피어는 처제에 납치돼 살해당했고, 2012년 10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된 우르즈 칸은 당첨 하루 만에 독살됐다. 셰익스피어와 댐피어 살해범은 체포돼 종신형에 처해졌지만 칸 살해범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이런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복권에 맞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전문가들은 복권 당첨자의 70%가 7년 안에 파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돈 : 복권 당첨자의 어두운 여행’의 저자 에드워드 우겔은 자신이 아는 수천 명의 당첨자 가운데 행복하게 사는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다.
지난주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인 15억 달러 복권 당첨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나왔다.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쁠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생긴 큰돈에는 돈이 없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유혹과 위험이 따른다. 이를 이겨 내고 참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복권 당첨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 때 복권을 찢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란 위티커 아내의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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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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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가 비극입니다. 역시나 본능에 충실해지는군요. 인간이 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