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로주의를 추구하며 새로운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고자 했던 도전자들이 자연 속에 묻혔다. 히말라야 구르자히말(7,193 m) 등반대 전원이 눈폭풍에 사라졌다. 김창호, 임일진, 유영직, 정준모 그리고 이재훈 대원의 명목을 빈다. 등로주의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등산은 시작된다는 도전정신이다. 현대 등산의 태동지인 알프스의 절벽을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알프스를 마음의 고향으로 둔 알피니스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이다. 철저하게 알피니스트임을 자부했던 친구 둘이 산의 품으로 돌아갔다.
일진과 창호와는 삼십년 지기이다. 대학산악부에 입회하여 등산 걸음마를 함께 배웠다. 학창시절 몸은 대학에 있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늘 산에 있었다. 학교 수업보다 암벽 루트 하나를 더 숙지하고 오르는 것이 주 관심사였고 전공 서적보다는 산악 서적을 더 많이 읽었다. 강의실 보다는 북한산, 도봉산 캠핑장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산 이야기로 많은 밤을 같이 지새우고 적당히 취해 산 노래를 함께 불렀다. 군대보다 더 살벌했던 산악부였고 선배들에게 맞고 괴롭힘 당해도 동기들이 함께 있어 행복했다.
김창호 대장은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아무도 안 가 본 파키스탄 오지를 홀로 탐사하러 다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탈레반 게릴라가 머리에 겨눈 총구에서도 살아온 이야기를 영화를 보고 있는 것 처럼 실감나게 묘사했다. 창호는 14좌 봉우리 무산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만들기 전 카라코람 지역을 수십번 탐사했다.
나는 창호에게 빚이 많다. 그가 첫 사업으로 하던 스키 샵에서 하루만 빌려 쓰고자 갖고 나온 고가의 외제 선글라스를 박살냈다. 그것도 그 힘들던 IMF시절에. 20년 전에 히말라야 등반을 같이 하자고 해 놓고 의기투합 했던 우리들은 다 도망가고 창호만 산에 남겨 두었다. 지난 20년 동안 창호가 무산소 등정을 위해 산과 사투했던 모든 시간들에 대해 나는 빚이 있다. 기업이나 독지가 후원 없이 홀로 14좌 레이스를 이어 갈 때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마음의 빚이다. 작년 아시아 산악인 황금 피켈상 시상식장에서 부상으로 받은 고가의 등산화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아직 그 등산화를 신고 흙을 밟아 본 적이 없다. 고이 모셔두라고 나에게 준 것이 아닌데 난 그가 준 선물을 귀하게 간직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용도 안하고 있다. 창호야 고맙고 미안하다.
몽둥이가 늘 준비되어 있고 쇳덩이 장비들이 막 날아다니는 삭막한 분위기의 산악부는 싫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몽둥이를 휘두르고 장비를 던져대는 그들과의 정 때문에 그 세계를 떠나지 못한다. 산도 좋아하지만 사람들을 더 좋아했던 임일진 감독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일진이는 선배들에게는 사랑스러운 후배로, 후배들에게 인간적이고 정 많은 선배로 기억될 것이다. 해외원정에서 사용했던 좋은 장비들을 늘 후배들에게 줘버리니 옆집 아저씨도 산책할 때 입는 고어텍스 쟈켓 조차 없다. 국내에서 유일한 산악전문 영화감독의 행색이 늘 별로였다. 그가 산악 다큐를 전문으로 찍고자 했던 것은 아무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호가 가보지 않은 길을 산에서 찾았다면 일진이는 본인의 알피니스트 숙명을 영상을 통해 찾고 있었다. 거대한 수직의 벽을 오르는 클라이머를 다각도의 영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를 메고 외줄에 의지하여 오르고 내리기를 무수히 반복해야 했다.
클라이밍보다 더 어려운 고행이다. 그런 노력으로 몇 편의 산악 다큐를 만들었고 아시아 최초로 토렌토 산악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일진이에게도 빚이 있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했는데 나는 늘 그를 집으로 보냈다. 한잔 더 하자는 것을 거절한 것이 무수히 많다. 이제는 한 잔 하자고 그를 불러낼 수도 없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밤새움을 함께 할 수도 없다. 그의 요청을 거절한 그 시간들의 빚을 어찌 갚을까?
산이 생명이었고 산을 제일로 알고 사랑했던 그 친구들. 우리는 산정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좋은 놈들을 찾을 수가 없구나. 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그 친구! (산노래 ‘산친구’ 일부).
우리를 존재하게 해 준 산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러나 한 순간에 사라진 친구들을 생각하면 무엇인가에는 원망을 해야 하는데 그 대상을 못 찾겠다. 영결식에 그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해야겠다.
김창호 대장과 임일진 감독은 남은 자에게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주고 떠났다. 창호는 파키스탄 카로코룸 지역에서 함께 동고동락 했던 자기가 키우던 말이 있다고 했다. 주인을 잃은 그 멋진 말의 빈 안장에 이제는 누가 앉아줄까? 일진이는 ‘북한산 다람쥐’라는 산악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감독을 잃은 미완성 영화는 세상에 빛을 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아쉽다.
친구들아, 어이해서 예고 없이 눈보라 속 사라졌나? 악우를 잃은 산악인의 마음엔 하염없는 눈물의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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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훈 한국대학산악연맹 21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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