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이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짧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긴 사람도 있다. 수명이 다하여 죽는 과정도 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시간과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도 있다. 또 병을 가져 고통의 과정을 겪는 이도 있다. 반면 고통 없이 건강한 시간을 거쳐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도 있다.
이 같은 일반적인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과정이다. 그러나 끝을 알고 가는 과정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삶의 과정이 끝날 수도 있음을 알고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 가운데에 프로 산악인(山岳人/climber), 알피니스트(alpinist)들이 있다. 산이 좋아서 오르지만 생명을 걸고 오르는 산악인들이다.
고미영. 160cm와 50kg의 작은 체구. 2007년 대한민국 여성 산악인으론 최초로 8,000m급 정상 3개 등산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9년, 7월 10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산 봉우리에 올라 총 11좌 등정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날 11일, 하산하던 중 해발 6,200미터 지점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실족 사망한다.
이때가 그녀의 나이 42살. 그녀는 알피니스트 김재수(46)씨와 함께 14좌 등정을 모두 성공한 후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사이였다. 미영이를 보낸 김재수씨. “이제 미영이의 꿈은 눈 속에 묻히고, 사랑은 눈꽃으로 남게 됐다”며 비통함을 남겼다. 사랑하던 사람을 남겨두고 산이 좋아 산에 묻힌 그녀. 지금도 눈꽃으로 살아 있음에야.
박영석. 한국에선 최초,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미터 정상 14좌를 최단기간으로 정복한 산(山) 사나이.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란 마음으로 살았던 그다. 2011년 10월18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됐다. 수색대가 수색했으나 찾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을 남긴 채 사망처리 됐다. 47세.
박영석 대장은 대원 신동민, 강기석과 새로 개척한 루트의 안나푸르나(8,081m) 남벽을 오르다 같이 실종됐다. 마지막 교신은 “눈과 가스를 동반한 낙석으로 운행 중단 한다”였다. 그는 등로주의자, 즉 새로운 산악길를 만드는 개척자였다. 그러느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그의 육신은 갔지만 그의 개척정신은 남아 흐른다.
1979년 5월29일. 미국 알래스카산맥 디날리산(6,194m) 원정대에 참가,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하다 추락 사망한 고상돈(31). 절벽은 1,000미터. 대원 이일교도 사망. 대원 박훈규는 살았으나 10개의 발가락과 7개의 손가락이 절단됨.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한국인 최초로 등정한 산(山) 사나이. 아내를 남겨두고 그는 갔다.
1977년 9월15일 낮 12시50분 에베레스트 산을 한국인 최초로 오른 고상돈. 그는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그리고 정상에 쌓인 눈을 파헤친 뒤, 성경(Bible) 한권과 사진 3장을 묻었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리다 숨진 동료들을 추모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디날리산의 맥킨리봉은 북미에서는 가장 높은 산에 속한다.
김창호(49/원정대장), 임일진(49/댜큐멘터리감독), 이재훈(24/의료담당), 유영직(51/장비담당), 현지에서 합류한 정준모(한국산악회이사), 네팔인 셰르파4명. 3,500미터 캠프에서 눈 폭품에 휩쓸려 실종. 10월14일 일어난 히말라야 원정대 사고소식이다. 모두 사망했다. 김창호대장은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무산소로 등정한자다.
그는 박영석과 같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등로주의자다. 이번에도 새 길을 개척하려다 캠프에서 참변을 당했다. “가장 성공한 원정은 안전한 귀가”라며 안전을 최우선,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다. 그는 갔지만 그의 도전정신은 살아 있다.
이번 사고로 한국 산악인이 비운을 맞은 숫자는 90여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산에 가는 사람에게 “왜, 산에 가느냐?”란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질문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도 같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에 속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산(山)사람들. 그들은 갔으나 우리 마음에선 영원히 산악인으로 살아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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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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