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으로 미국 사회가 여러 갈등을 표출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와중에 대학까지 인종차별 소송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최근 아시안 입학 지원자 하버드 차별소송 불똥이 예일까지 튀며 법무부와 교육부가 입학 선발에 대한 감사를 강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 지원의 모든 형태를 제거하기 위해 대학 ‘차별철폐 조처’(affirmative action) 입학정책을 트집잡아 과거의 잘못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계 지원자에 대한 의도적 인종적 차별은 없었다. 아시안 지원자의 합격률이 낮은 이유는 ‘플러스 요인’, 즉 동문자제와 체육특기자에게 주는 특혜 때문이며 상대적으로 이들 ‘갈고리’(hook)에 백인에 비해 아시안 학생이 매우 두드러지게 적어 불이익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대학은 감사에서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불법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학문적 평가에서는 차별의 증거가 뚜렷해 보이지만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체육특기자와 소수민족 지원자는 대학 학력평가시험인 SAT·ACT 점수와 대학의 수준 높은 강의를 이해할 수 있는 읽기와 쓰기능력 평가시험인 AP점수가 대학이 요구하는 기준이 다른 지원자 그룹에 비해 현저히 낮아 ‘학력평가 조정’을 통해 특혜를 주어야 그들을 입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포괄적인 입학정책을 채택하여 운영하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순수한 학문적 실력주의 입학정책을 시행해 본 적이 없으며 오랫동안 비학문적인 무형의 자질에 더 큰 비중을 두어왔다. 성적 평가는 중요하지만 입학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전체적인 그림 중에서 대학은 여러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성적 순위로 입학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헌법 어디에도 그런 권리는 없다.
대학들에게 인종차별 죄를 덧씌우는 것과 이 혐의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원고가 주장하는 백인 지원자들보다 불합격 비율이 높다는 것은 오랫동안 알려져 왔지만, 이러한 사실이 인종차별의 근본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입학 결정은 대학의 고유한 자유재량권이기 때문에 부정이나 고의성이 없는 한 행정부나 사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누군가를 입학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대학이 할 일이다.
평등하게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권력과 재력의 힘에 의해 불평등·불공정하게 대접받고 살아 온 게 현실이다. 이러한 불이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사회적·경제적 배경이 취약한 이들에게 대학의 문호를 일정 수준 할당하는 것이 통합적인 사회를 만드는 지혜이다. 다양성은 입학에 대한 포괄적 접근 방식이다. 실력주의 맹신이란 편향되고 암묵적인 편견을 버리고 다양성이란 이데올로기를 수용해야 한다.
사실, 실력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평등을 양산해 내는 어두운 면이 숨겨져 있다. 왜냐하면, 실력주의가 처음에는 상당한 계급상승의 유동성을 촉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원자의 학업수준은 가정 형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버드는 수백 년 동안 세상사에 경험을 쌓아온 대학이다. 현재의 편향된 관행에 신뢰할 만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만든 시스템이 완전히 투명하지 않고 주관성을 띄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고쳐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대학의 자율권을 뺏어서는 안된다. 하버드에서 윌버 벤더 입학관리처장(1952-1960)과 그 후계자들이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학구적 실력주의에 근거한 입학허가 모델을 그토록 확고하게 거부했던 이유는 대학이 경쟁력을 갖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아탑의 가치뿐만 아니라 대학의 이익도 중요하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체육특기자·동문 자녀·손 큰 기부자 자녀·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 자녀·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녀와 그 후손들은 대학입장에선 ‘학생 저수지’의 바람직스런 배경의 후원자들이다. 하버드 학부는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입학을 허용하는 비율은 전체 신입생의 15% 미만이다.
대학 입학은 제로섬 게임이다. 한 그룹의 파이 조각을 없애 버리면 다른 그룹의 파이 조각이 클 수밖에 없다. 차별철폐 조처가 폐지된다면 결국은 부유층 자녀와 백인 학생들이 소수민족 우대 할당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불균형의 가장 큰 피해자는 18-20% 입학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아시안의 똑똑한 학생들이 아니라 3%의 최소 입학 점유율만을 보이고 있는 소득 하위 20%의 저소득층 가정 출신 자녀들이다. 시급하고도 더 중요한 이슈는 실력에 근거한 차별철폐 조처가 아니라 계급에 근거한 차별철폐 조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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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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