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내가 한번 꼭 가고 싶은 곳이었다. 물론 그곳이 옛날 선비들이 살던 양반 동네이며 가면을 쓴 탈춤이 유명한 곳이라는 것은 거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곳엔 내게는 귀한 분이 한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년 전 내 여섯번째 산문집이 나왔을때 그 책이 나오도록 힘을 써준 분이 바로 그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차가 없는 내게 안동이라는 곳은 너무 먼 곳이었다. 그런데 추석이 지나고 어느 일요일, 서울에 살고 있는 조카 내외가 내가 머물러 있던 청주로 와 나와 언니, 언니의 아들인 조카까지 데리고 우리들은 안동을 방문했다.
그분이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그 분이 시무하시는 안동 성결 교회를 찾아갔다. 목사님한테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점심도 대접 받고 꿀 한통까지 받고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교회가 아담하고 성도들도 친절하고 그날 아주 아름다운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안동을 떠나기 전 그곳 간이역까지 둘러보았다. 그곳 역 마당 한구석 조그만 비석엔 안동역이라는 요즘 뜨는 노래 가사가 적혀있었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첫눈이 내리는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이런 가사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첫사랑이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가 첫눈이 내리는 간이역이기 때문에 좀더 애잔하게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하며 나도 잠시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 어떤 지인 한 분이 한국엘 가면 꼭 안동역이라는 노래를 배워 오라고 내게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침 우리 언니가 나이 구십일세에도 일주일에 두번씩 노래 교실에 나가기 때문에 함께 안동역을 몇번이고 열창을 했다. 12월 달에 이곳 라스모어 한국인들이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데 그때 한번 이 안동역이란 노래를 불러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 인생은 한번 만나면 꼭 헤어지는 때가 있다. 잠시잠깐의 이별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헤어지는 죽음의 이별도 있다. 이제 나이가 팔십쯤 되어 보니까 죽음이란 것이 결코 먼데가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별로 슬프거나 겁나는 일도 아니란 생각도 든다.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철이 드는 것이나 같다.
한국에 가서 약 삼주간 체류했는데 이번엔 여학교때 가장 절친했던 짝꿍도 만났고 함께 김백초 무용소를 몇년 동안 같이 다녔던 친구도 만났다. 약 팔년만이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떻게 그들이 변했을까가 가장 궁금했다. 그들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내 짝꿍은 살이 많이 쪘고 그렇게 크고 동그랗던 눈이 너무 작아져 처음엔 몰라볼뻔 했다. 또 한 친구는 아직 예쁜 구석이 남아있지만 다리가 많이 약해져서 층계를 내려갈 때 옆으로 서서 한발자욱씩 한발자욱씩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튼튼한 다리로 한때는 춤을 정말 잘 추었던 그녀가 안타까웠고,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들은 둘다 강남의 사모님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재산이 오십만불이 넘으면 정부에서 주는 혜택인 일인당 약 이백오십불 가량을 육십오세가 넘으면 주는데 그것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자신의 강남 아파트를 육개월 전에 처분했는데 지금 시세로 약 칠억을 날렸다고 한탄이었다. 한달에 약 일억 정도가 뛰었다는 얘기다.
한 친구가 내게 내글이 실린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 쓴 칼럼 ‘친구야!놀자!’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을 보여주며 내 동창들이 거의다 읽었다고 한다. 나는 새삼 인터넷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 글이 늙었어도 재미있게 사는 얘기를 실어서 아마 한국에서도 좀 떴나보다.
이번 여행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내가 먹고 싶고 종종 생각했던 음식들을 거의 먹은 것이다. 청주에 육거리 시장이란 곳이 있는데 우리가 몇년간 한국에서 살 때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곳이다. 사람 냄새가 난다고 남편은 늘 그렇게 말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각종 떡이며 갓 구워낸 호떡, 붕어빵, 온갖 튀김류며 싱싱한 오징어, 팔뚝만한 칼치 등을 마음껏 먹고 왔다.
돌아오기 전 안동을 거쳐 영덕이란 곳을 갔는데 그곳은 대게가 유명한 곳이어서 대게 여섯마리를 단돈 오만원에 사서 실컷 먹었고, 속초에서는 물에서 뛰노는 싱싱한 생선들 다섯가지를 그 자리에서 회로 쳐서 마음껏 먹었다. 싱싱한 날 회로 배가 차보기는 처음이다. 난 그동안 미국에선 고등어 회는 비린내가 날 것 같아 먹지를 않았는데 그곳에서 맛보는 고등어회는 하나도 비리지 않고 고소해서 또 한번 놀랐다.
언제나 집을 떠나보면 집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삼주쯤 되면 슬슬 집 생각이 나고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내 마음대로 운전하며 친구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던 일과 교회의 교우들, 깨끗한 공기와 좋은 환경과 꼬마 손주놈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리 다들 내게 잘해준다 해도 구순 언니가 해주는 밥도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언니가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서글퍼진다. 나는 돌아와서 혼자 입속으로 언니와 함께 부르던 안동역을 불러본다. 안동역은 마치 잃어버린 내 고향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아마 나는 이 노래가 더 정답게 느껴지나 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첫눈이 오던 어느 간이역에서 기다리던 첫사랑을 생각하게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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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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