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캔디 모양의 파스타를 크림 소스와 피스타치오에 버무린 캔디 파스타는 파올로데마리아의 대표 메뉴다. <잇쎈틱 제공>
시금치를 활용해 색을 내고, 이탈리아 와인 프로세코로 풍미를 낸‘프로세코 와인 시금치 그린 리조또’. <잇쎈틱 제공>
서울에서도 경복궁 주변은 자연과 도시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고즈넉한 우리의 역사와 함께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웅장한 북악산이 있어 가을이 되면 삼청동, 서촌, 부암동 등 그 주변 동네는 골목 사이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특히 부암동은 나무 사이사이, 주택건물 사이사이 보이는 두꺼운 돌 벽의 한양도성 성곽이 둘러싸여 있어 마치 둥지 안에서 포근히 보호를 받는 한 마리 작은 아기 새처럼 편안함 마저 느끼게 한다.
가을과 어울리는 이탈리아의 구수한 맛
짧은 부암터널을 지나 마치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하듯, 부암동의 한 자락에 이탈리아의 맛과 멋, 그리고 문화를 알리는 레스토랑이 있다. 조용한 부암동에 이탈리아의 구수한 맛을 풍기는 ‘파올로데마리아 피네 트라토리아(Paolo de Maria Fine Trattoria)’(파올로데마리아)이다. 과한 모던함을 강조하는 트렌드 레스토랑과는 달리 35년 경력의 오너 셰프의 철학이 곳곳마다 묻어나는 귀한 곳이다. 역사의 도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온 파올로 데 마리아(Paolo de Maria)와 지니 최 부부가 운영한다. 14세 때부터 호텔 관광 전문학교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주방 일을 시작한 파올로는 본인을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나는 요리하는 사람(cook)이다. 셰프라는 표현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나를 셰프로 표현할 때 의미가 있다.” 본인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에서 그의 자신감과 음식에 대한 믿음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의 겸손함에 파올로 데 마리아라는 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같이 싹트기 시작했다. 파올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집밥에서부터 요리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14세부터 낮에는 학교에서, 휴일과 방학 때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한번도 주방을 떠난 적이 없다. 여객선 주방에서부터 160년 역사를 간직한 토리노의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까지 그의 경력은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 사람에게 이탈리아의 맛을 전하는데 열정을 뿜어냈다. 그는 “20년쯤 경력이 되었을 쯤에서야 요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과 나라마다 지역마다 특성 있는 문화와 재료의 이해가 있어야 맛을 제대로 즐기고 표현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파올로데마리아 피네 트라토리아는 쉬운 이름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레스토랑을 크게 3개의 타입으로 나누어 구분하는데 이중 트라토리아는 그 중 중간 정도로, 편안함과 맛있는 그 집만의 단품 메뉴가 돋보이는 곳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분식이집이나 백반집처럼 편안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즐기는 오스트테리아(osteria)와, 완전한 격식을 차리는 풀코스 메뉴의 리스토란테(ristorante)의 중간인 셈이다. 파올로데마리아에서는 코스요리에 대한 부담 없이 한국의 신선한 계절 식재료와 함께 계절 마다 바뀌는 정통 이탈리아 메뉴들이 항상 준비된다. 메뉴를 보면 신기한 이름과 함께 맛을 상상하게 되는 파스타가 있다. 일명 캔디 파스타다. 피스타치오 로즈마리 크림소스로 속을 채운 블랙 캔디 파스타는 한입을 먹는 순간 세 번의 감탄을 하게 된다. 검은 색 캔디모양의 파스타를 노랗게 코팅해주는 소스는 면 안에 쏙 배어 진하면서 피스타치오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면서 절로 감탄이 나온다. 오징어 먹물을 넣어 검은 빛이 돌고 섬세하게 캔디 모양으로 주름이 잡힌 파스타는 부드러움과 함께 알덴테의 끈기로 식감이 조화롭다.
빛깔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파스타는 ‘이탈리아 치즈 퐁듀 바르베라 와인 생면 파파르델레’다. 파스타 반죽에 바르베라 와인을 넣은 파파르델레(이탈리아 파스타 종류로 2, 3cm 가량 넓은 면의 한 종류)로 자줏빛 생면의 오묘한 색감에 마치 퐁듀에 파스타를 담가 먹는 듯, 치즈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접시에 깔린 와인 퓨레에서 와인의 향이 가득 올라와 코에서부터 기분 좋게 와인이 느껴져 마치 치즈에 와인을 곁들여 마시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한국 식재료로 맛을 내는 정통 이탈리아 요리들
수많은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자국의 요리법에 한국의 계절 식재료를 응용하는 요리사를 만나면 경의를 표하고 싶다. 파올로의 요리는 이탈리아 현지 재료부터 한국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들에 대한 이해를 그대로 드러낸다. ‘감자크림과 부라따 치즈가 곁들여진 낙지 전채요리’는 가을에 선보이는 새로운 계절 메뉴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쓰러진 황소도 벌떡 일어나게 한다는 낙지를 이탈리아 스타일로 즐길 수 있다. 대파의 하얀 부분과 잘 감자를 익힌 감자 퓨레 위에 올라온 낙지는 마치 바닷가 갯벌의 낙지를 연상시킨다. 따뜻한 감자 퓨레는 우유크림보다 부드럽고, 올리브오일에 구워진 낙지는 탱탱함 보다는 부드러움으로 승부를 건다. 부라타치즈를 터트려 그 안의 크림이 같이 올라오니 한 스푼을 입에 넣는 순간 씹을 여유도 없이 녹아버린다. 가을낙지가 사람의 기운과 기분을 동시에 업 시켜주는 순간이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다. 파올로데마리아의 자연의 영양과 맛을 살린 요리는 먹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한다. 초록빛과 빨간 빛깔이 침샘을 자극하는 ‘프로세코 와인의 시금치 그린 리조또’는 처음 마주하는 순간은 심플하지만 리조또 안의 맛은 모든 미각 세포를 자극한다. 시금치의 건강함은 리조또의 쌀 안에 초록 빛깔로만 나타내고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는 마지막에 느껴지는 은은한 시큼함으로 표현된다. 파마산 치즈와 버터로 고소함과 투명하게 빛나는 빛깔을 더해 주어 보는 것과 입 안의 경험은 반전의 연속이다.
문화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전파되기도 하지만 교육이 필요할 때도 있다. ‘문화를 이해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파올로는 이탈리아의 훌륭한 요리학교 시스템을 들여와 요리학교 IFSE(Italian Food Style Education)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탈리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들의 재료와 식문화까지 배울 수 있는 교유과정이 준비되어 있다. 무작정 떠나는 유학보다는 많이 고민하고 천천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다.
지역 특성 배인 식문화
파올로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유명한 음식으로 ‘바냐 카우다(Bagna cauda)’를 꼽는다. 마늘과 소금에 절인 엔쵸비에 헤이즐넛 오일을 넣고 작은 램프 위에 끓이면서 여러 채소들을 소스에 찍어먹는 요리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이 요리는 아직도 사랑 받는 토리노 대표 음식이지만 헤이즐넛 오일이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올리브 오일이나 버터로도 대체하고 있다. 원조의 관점에서 보면 헤이즐넛 오일 대신 다른 오일로의 대체는 변형이지만, 환경이 바뀌고 만드는 사람의 창의성이 들어가면서 진화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냐 카우다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소금이 중요했던 시절에 시작된 요리임을, 또한 헤이즐넛이 풍부했던 시절에 시작된 역사임을 기억한다. 다른 오일로의 외도가 변형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 의한 진화임을 알고 있다. 하나의 음식에도 그들의 스토리와 역사와 문화가 숨어있어 주변환경과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나의 요리는 한끼를 먹는다는 것 이상으로 어쩜 역사의 흐름 속의 한 순간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의 음식이 흔해질수록 그만큼 고유의 방법과 그에 깃든 문화가 존중되고 인정하는 마음으로 즐긴다면 입맛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미식의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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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샘플·박은선 잇쎈틱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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