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와 미주 한인의 뿌리인 이 공사관 건물이 굴욕적으로 수탈당한지 102년만인 2012년 우리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는 6년의 세월을 빌어 지극한 정성과 복원의 노력으로 2018년 5월 22일 재개관일에 산뜻한 옛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 날은 조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 기념일이기도 하였는데 마치 대미 외교를 통한 국권 회복의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한 고종 황제의 비탄의 눈물인 양 궂은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개관식은 세월의 아픔만큼이나 공사관 바로 앞 써클 잔디밭의 가설 연단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특기할 인사로는 본국 주관 부서인 문화재청장 및 그 수행원단과 고종황제의 손녀인 뉴욕 거주 이해경 왕녀와 본국 거주 초대공사관원 후손 3명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요인 좌석 배치나 진행 의전에서는 상식에 어긋나는 모습들이 보여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포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 한 예가 며칠 뒤 지역 유력지가 ‘마지막 황녀에 대한 결례’를 아쉬워 하는 시론을 게재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재미 한국교육 지원운동을 하며 공사관 3층 공간 활용에 관한 첫번째 동포간담회를 마치고 한국학교 재미 지도부와 의견 조율을 거쳐 2013년 3월 31일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효과적 활용방안 건의>라는 제목의 교육 지향적 청원서를 정부관계 부처와 5개 한인회에 공시하는데 자문역할을 한 바 있다.
그 요지는 이 공사관 건물이 어디까지나 외교 역사 유물로 강대국들의 식민지배 야욕과 가쓰라-태프트 밀약같은 비이성적 탐욕외교의 희생물이었던 만큼 3층 공간을 외교 역사 교육관으로 개발하여 교육 재생산을 영구도모 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밀약외교의 당사국이기도 한 미국을 포함한 세계 외교계에 강대국 위주의 잘못된 외교관행을 반성 경계하며 나아가 공정하고 평등한 외교 행태를 촉성하는 한편 재미 한국학교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나라를 잃은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실증교육하여 국권수호의 중요성을 엄중하게 새겨 배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교육계의 간절한 열망을 깡그리 무시하고 우리의 새싹들이 배워갈 것이라고는 없는 속빈 전시공간을 꾸며낸 주무부서의 일방주의는 요즘 말로 재미 동포사회를 완전히 무시하는 관권 갑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세번에 걸친 동포간담 토론 설명회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요식행위였던가? 막강한 외교력과 자금력을 동원한 일본의 총력 반대와 방해 로비 운동을 번번히 이기며 본국을 대신하여 위안부 인권 미의회 결의, 위안부 기림비의 지속적인 확산, 버지니아 동해병기안 주의회 결의 성취를 이끌어 낸 재미 동포들의 뜨거운 조국애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다음, 개관식 의전의 비교육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오백년의 역사를 통해 정립된 우리 고유의 정신 문화의 가치 체계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을 지배해 온 국민 윤리이념은 충효(忠孝) 사상이다. 직설로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이지만 한 발 더 깊이 새기면 요즘 한국학교가 열심히 주장하는 ‘뿌리’ 의식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근본인 뿌리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이번 개관식 의전은 조선에서 태어나 조선의 기본 국민 윤리인 충효의 도리도 지키지 못한 모반(謨反)의 행사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이다. 주인격인 적통의 왕녀는 단하에 앉히고 공사관 당시의 서열상 한참 아래였을 공사관원의 후손들은 단상 상석에 모셔졌다. 그뿐인가? 모금운동을 주도했던 동포지도자들의 실수로 사전 가격약정이 없음을 이용하여 건물값을 두 배로 받아 횡재한 전 소유주는 단상에 자리했다. 주인과 손님을 뒤바꾸어 놓은 셈이다.
알려진대로 영국과 일본은 살아있는 황실을 문화 아이콘으로 하여 문화국민임을 자부하며 관광수입마저 알찬 재미를 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몰락한 왕실도 엄연한 우리의 역사이며 뿌리인 것이다. 살아 있는 왕족을 경원하면서 경복궁을 한국 문화 관광 1번지로 삼는 문화정책의 모순을 어떻게 합리화 할 것인지 궁금하다.
끝으로 초대 요인의 여행 편의 대우문제이다. 역사적인 건물이다보니 공사관 개관 당시 주역 인물들의 후손 네 분이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고종황제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해경 왕녀, 초대공사 박정양의 증손녀 박혜선, 서기관 이상재의 증손 이상국, 서기관 장봉환의 증손 장한성 등 네 분이다. 해경왕녀를 전화 인터뷰해 보니 초대장을 우편으로 받고 보행이 불편한 고령임에도 뉴욕에서 내려오는 동포들의 SUV 한자리를 얻어 타고 편도 6시간, 왕복 12시간을 다녀가셨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후손들은 1인당 2,000달러 정도의 항공경비 지급이나 여행의 편의를 제공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에도 해경왕녀는 미국 동포이기 때문일까 응분의 대우를 받지 못하셨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워싱턴DC의 부동산 등기부 등본에는 이 공사관이 대한제국의 소유가 아니라 고종황제 개인소유(Present King of Choseon Ye)로 등재외어 있으니 직계인 해경왕녀는 상징적으로 주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의전문제를 가벼히 다루지 않는 이유는 의전이 곧 긴요한 교육과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3층 전시실의 한켠에 이제라도 한국의 특기인 컴팩트한 아이티시청각(글, 음성, 사진) 해설 설비를 추가하여 지방의 한국학교 학생들이 워싱턴에 들렸을 때 꼭 방문하여 이 공사관에 얽힌 외교 역사를 정확하게 듣고 갈 수 있는 교육 기능을 추가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재미 한국교육은 한인 정체성을 뚜렷하게 갖춘 차세대를 육성하며 미 주류 정계에 한국외교 지원세력을 양성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띄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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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원 재미한국학교 자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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