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적이는‘액체괴물’슬라임 카페, 쫀득 거리는 것 늘렸다 구겼다
▶ 의미없는 주물럭거림 같지만, “속이 시원… 머릿 속 깨끗해져”
생크림 같은 버터 슬라임 만들기
1. 흰풀(75~100㎖)과 폼크림을 1대 1 비율로 섞은 뒤 소다물 15㎖ 추가
2. 렌즈세척용액을 10~15방울씩 넣으면서 꾸덕꾸덕하게 굳을 때까지 섞기
3. 원하는 색상의 색소를 넣고
4. 양손으로 색이 골고루 퍼질 때까지 주무르기
5. 손에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탱탱해지면 완성
투명한 클리어 슬라임 만들기
1. 물풀 100㎖와 소다물 75㎖를 넣고 섞기
2. 렌즈세척용액을 10~15방울씩 넣으면서 섞어주기
3. 불에서 깨끗하게 떨어져 나올 정도가 되면 완성
지난달 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 문이 쉴새 없이 여닫힌다. 엄마 아빠 손을 꼭 잡은 아이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20, 30대로 보이는 커플들도 연이어 입장한다. 카운터에서 국그릇만 한 볼과 숟가락을 받아 들고 자리를 잡더니 액체 이것저것을 붓고 휘젓기 시작한다. 30분을 훌쩍 넘기는 반복 작업은 노동에 가까워 보이는데도 아이며 어른이며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곳은 몇 년 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폭풍적 인기를 끌었던 ‘액체 괴물’의 최신판 ‘슬라임’(slimeㆍ끈적하고 말랑한 점액질 형태의 장난감)을 만드는 카페다.
서교동 일대에는 이 카페를 중심으로 반경 1㎞ 안에 슬라임 카페가 3곳이나 더 있다. 2015년 유튜브 인기 어린이 채널에서 처음 소개될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 장난감 정도로 취급됐는데, 지난해 가수 아이유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영상을 올리면서 어른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300만건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들에 사람들은 “소리가 너무 좋다“ “힐링 된다” 등의 댓글을 달며 호응했다. 직접 나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늘어나면서 슬라임 카페는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는 곳이 있을 정도로 연일 북적거린다. 서교동 슬라임 카페 직원은 “방학 주말에는 대기시간이 3시간 걸리기도 한다”며 “주로 오전에는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오후에는 20, 30대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다 큰 어른들까지 이 끈적거리는 장난감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슬라임 카페에서 만난 한예원(29)씨는 ‘묘한 성취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슬라임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주말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불쑥불쑥 일 걱정과 상사 스트레스를 떠올리고 있는 나를 보고 문득 ‘왜 제대로 쉬지도 못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쫀득거리는 걸 늘렸다 구기기도 하면서 속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머릿속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씨처럼 슬라임에 빠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대로 쉬고 싶은 욕구가 해소된다고 말했다. 입시가 끝나면 취직, 취직 후에는 승진을 두고 반복되는 경쟁의 굴레에서 매 순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짓눌려 있는데,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주물럭거림으로 조금은 내려놓게 된다는 얘기였다. ‘잠깐 딴짓하면 낙오’라 생각하며 달려온 기성세대는 사치라고 여기는 ‘쉼’이 이들에게는 ‘일’만큼 중요해 보였다. 올 4월 이직한 박현진(32ㆍ가명)씨는 “이직 준비를 하면서 항상 목표와 의미에 시달려서 그런지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면 ‘진정한 멍 때리기’로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만족감이 든다”고 했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변형시킬 수 있는 매력도 슬라임에 만족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백현지(24)씨는 ‘참아라’는 말 때문에 슬라임을 더 자주 찾게 됐다고 했다. 일주일에 6일 저녁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백씨는 “얼마 전에도 사장님에게 이상한 손님들 때문에 일이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참으라고만 하더라”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던 기분을 슬라임이 조금은 위로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슬라임 중에서는 구슬 같은 액세서리가 들어간 제품이 인기가 높다.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이 유행하면서 만질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유튜브 인기 슬라임 ASMR 콘텐츠들은 조회 수가 2,000만건을 훌쩍 넘는다. 대기업 11년 차 직장인 이세영(37ㆍ가명)씨도 종종 잠들기 전에 슬라임 ASMR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씨는 “바스락거리거나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해지고 잠도 잘 온다”며 “늘 긴장하고 분초를 다퉈야 하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인데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졸이고 있던 마음이 풀어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낯선 감각이 주는 쾌락과 간단하고 직관적 행위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떤 감각에 몰입해 보는 경험에서 멀어지게 되고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적인 감각들만 느끼게 된다”며 “일상에 지치고 피로할수록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촉감과 청각 즉,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30세대가 성취감을 느끼기 힘든 사회이다 보니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쉽고 빠르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는 것”이라며 “특히나 스마트폰을 항상 쥐고 있어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이들에게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새로운 촉감이 주는 재미도 크다”고 밝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순간의 안정감을 찾는 트렌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씁쓸한 시선도 있다. 김지호 교수는 “스피너(손가락을 잡고 튕기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장난감), 컬러링북, 나노블럭, 숫자 점 잇기 등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어 하는 어른들을 위한 상품이 벌써 몇 개째 생겨나고 사라지고 있다”며 “현재에서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심리 때문에 형태만 바뀔 뿐 제2, 제3의 슬라임은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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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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