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STORY 살며 사랑하며…연매출 100억 중소기업 이끌던 사장님
▶ 프랑스 출장길에 미술관서 힐링, 피카소 그림 보다“한국에 옮겨볼까?” 파스텔풍 프랑스 목조가옥 그대로 재현하고 어린왕자 기념관·오르골 등 볼거리 가득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훗날 자신이 작가로 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키는 대학을 졸업한 후 스물다섯 살 때부터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 적당한 수완으로 장사를 이어가던 하루키는 서른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진구 구장을 찾았다가 벼락을 맞은 듯 “다른 삶을 살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는 외야 한구석의 잔디밭에 누워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공의 궤적을 보며 불현듯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쓴 첫 작품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한홍섭(72) 쁘띠프랑스(Petite France) 회장도 하루키가 그랬듯 뒤늦게 인생의 항로를 바꾼 기업인이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쁘띠프랑스는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프랑스 문화 테마파크’다.
청평댐에서 남이섬 방향으로 10㎞쯤 가다 보면 나오는 쁘띠프랑스는 파스텔풍의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프랑스 현지 건축가가 프로방스 양식을 살려 설계한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의 유럽으로 날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사실 한 회장은 지난 2008년 쁘띠프랑스를 개관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페인트 회사만 운영한 사람이었다. 1968년 ‘대동화학공업사’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한 이래 우여곡절도 있었고 위기의 순간도 숱하게 찾아왔다.
그랬던 한 회장이 남부러울 것 없는 회사를 매각하고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낯선 분야에 갑자기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가평의 쁘띠프랑스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한 회장은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은 ‘꿈’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 회장은 한창 페인트 사업이 번창하던 1980년대 초·중반 프랑스로 출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 미팅으로 녹초가 될 때마다 그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는 했다.
“하루는 피카소의 딸이 아버지의 소장품을 처음 공개하는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미술관을 찾아갔어요. 피카소의 자화상은 물론 그리다 만 미완성 스케치들을 넋 놓고 감상하는데 문득 ‘프랑스의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를 한국에 옮겨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랑스 문화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당시 한 회장의 나이는 이미 마흔 줄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결심을 하자 원래 하던 일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프랑스 관련 책과 자료를 닥치는 대로 섭렵했고 1년에 서너 차례 이상 자비를 들여 프랑스로 날아갔다.
말하자면 한 회장에게는 피카소의 눈부신 그림이 ‘푸른 하늘을 가르는 공’이었던 셈이다. “결심이 확고히 섰으니 다음 차례는 나의 꿈이 뿌리내릴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말도 마세요. 수년 동안 수원·인천·강화·용인·양평 등 수도권의 온 동네를 다 물색한 끝에 1995년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장소를 발견했어요. 청평호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자리였죠. 가평의 12만2,000㎡(3만7,000여평) 부지를 매입한 게 1996년이었죠.”
순조롭게 진행될 줄만 알았던 사업은 뜻하지 않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다소 지연됐다.
기존 페인트 회사의 고객사들이 우후죽순 부도를 내면서 사업 초기자금 마련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부지 매입 후 2년이 흐른 1998년에야 가평군으로부터 사업 허가를 받은 한 회장은 건물 설계와 콘텐츠 기획, 공사 등을 거쳐 2008년 7월 꿈에 그리던 테마파크를 개관했다.
개관 첫해 12만명을 기록한 방문객은 5년 만에 60만명 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랐지만 그때만 해도 방문객의 90% 이상은 내국인이었다. 그랬던 쁘띠프랑스가 수도권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한 것은 2014년이었다.
그해 방영된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아시아 전역에서 흥행 대박을 터뜨리면서 이 작품의 촬영지 중 하나였던 쁘띠프랑스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기 때문이다.
2014~2015년 두 해 연속 총 방문객 100만명을 유치한 쁘띠프랑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지난해에도 90만명 수준을 유지하며 큰 타격 없이 넘어갔다.
“물론 초기에는 한류 열풍의 덕을 본 측면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수년 동안 꾸준히 여행객들이 쁘띠프랑스를 찾는 것은 결국 콘텐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건축 자재를 분해해 원형 그대로 옮겨온 목조 가옥부터 마리오네트 인형, 만들어진 지 200년이 넘은 오르골까지 저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지 않은 물건이 없습니다. 자랑 같아 쑥스럽지만 한 번 온 사람은 실망하는 법이 없고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도 두 번 이상 쁘띠프랑스에 놀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아요(웃음).”
쁘띠프랑스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 가운데 백미는 역시 ‘생텍쥐페리 기념관’이다. 쁘띠프랑스는 생텍쥐페리재단과 정식 제휴를 맺은 국내 유일의 테마파크로 이 기념관에는 소설 ‘어린 왕자’의 친필 원고와 작가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쁘띠프랑스 개관 준비를 하면서 2000년 한 해 동안 네 차례나 재단 사무실을 찾아가 왜 생텍쥐페리 기념관을 만들려고 하는지 설명했어요. 일면식도 없는 어느 동양인의 말에 처음엔 관계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죠. 그러다 어느 순간 저의 진정성을 알아줬는지 ‘국제 라이선스 계약을 맺자’고 하더군요. 꿈과 희망의 상징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인 ‘어린 왕자’의 기념관을 만든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유럽 문화 마을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조금이라도 더 멋진 공간을 만들기 위해 80번 넘게 프랑스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자신이 사는 작은 소행성을 길들였던 것처럼 저 역시 ‘내 마음의 소행성’인 이 마을을 앞으로도 열심히 돌보고 꾸며야죠.”
“중학교 중퇴 후 16세 때부터 장사” “배움 갈망에 대학원만 10곳 수료”
‘니스’배달하며 영업 노하우 몸소 익혀
유행·고객 마음 잡으려면‘공부’가 답한홍섭 쁘띠프랑스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중학교 2학년 때 중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대개 형제자매들 가운데 장남에게 ‘투자’를 하는 게 그 시절의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공부는 큰 형님의 몫이었죠.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인 경기도 용인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어요. 당시 서울에서 니스 제조업을 하던 외사촌 형님 밑에서 장사를 처음 배웠습니다.”
가내공업 수준의 공장에서 드럼통 몇 개를 놓고 만든 니스를 자전거에 싣고 일일이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영업하고 배달하는 게 당시 한 회장의 일이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낸 후 한 회장은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청계천 상가 1층에 자그마한 니스 회사를 차렸다. 한 회장은 “10대 시절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익힌 영업 노하우와 사업 감각은 훗날 페인트 회사와 쁘띠프랑스를 운영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고 회상했다.
한 해 방문객만 100만명에 달하는 관광 테마파크의 대표이지만 한 회장은 지금도 ‘배움’을 향한 갈망을 숨기지 못한다. 어린 시절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는 지난 30년 동안 대학원 최고위 과정만 10곳 이상 수료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유행과 고객의 마음을 따라잡으려면 ‘공부’ 이외엔 답이 없어요.
문화와 경영에 대한 안목을 쌓고 싶어서 고려대 최고위 경영자 과정, 중앙대 건설대학원 최고위 과정, 숙명여대 미래문화 최고경영자 과정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학교를 찾아다녔습니다. 페인트 사업이 달리 아는 게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다면 테마파크 사업은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있어 시작한 일이니 이 정도의 노력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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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나윤석 기자·사진= 권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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