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아파트 건설 붐 맞춰, 철봉·시소 등 획일적 설계
▶ 상상력이 아이들을 더 신나게 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6동 양천공원 내 설치된 ‘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 전경. 야외무대와 철골 지지대를 그대로 살리고, 그 사이로 목재선을 만들어 아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놀 수 있게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작구 본동 어린이공원의 경사진 언덕에 아이들이 다양하게 놀 수 있는 나무 기둥이 마련돼 있다.
지난달 31일 ‘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모래 위 나무 기둥에 오르고 있다.
덴마크 글라드삭세 도서관의 책 놀이터 모습. 놀이 기구를 지지하는 구조물들이 모두 책 모양이다. 빨간소금 제공
2016년 5월 전남 순천 연향동에 들어선 ‘기적의 놀이터 1호’에서 아이들이 모래 언덕과 모래판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순천시청 제공.
서울 중랑구 신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모래 언덕 ‘바람의 언덕’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놀이터가 달라지고 있다. 미끄럼틀과 시소, 그네로 획일화돼 있던 놀이터들이 최근 자연과 모험 등을 주제로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놀이터가 생기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가 곳곳에 마련됐다. 1973년에는 주택건설촉진법(현 주택법)으로 ‘어린이 놀이터는 최소한 그네, 미끄럼틀, 철봉, 모래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새겨 넣었다. 놀이터가 정형화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안전과 위생 문제가 지적되면서 모래판은 우레탄 등 고무소재의 바닥으로 바뀌고, 정글짐과 철봉 등은 사라졌다. 대신 창의력을 키운다며 우주선, 배 등의 독특한 시설물이 놀이터 중앙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놀이터가 놀이시설을 공급하는 업체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이 놀 공간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되돌려 주는 프로젝트가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창의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터
유치원에 다니는 아린(6)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늘 묻는다. “배 타고 물 주러 가도 돼요?” 아린이가 배를 타고 물 주러 가는 곳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공원 안에 있는 ‘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다. 아린이는 공원 한복판에 설치된 커다란 야외무대로 뛰어간다. 그곳에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배가 떠 있다. 계단 대신 정글짐을 이용해 배 위로 오른다. 나팔 모양의 소리 파이프에 입을 갖다 대고 ‘출발’을 외친다. 파도(바닥에 펼쳐진 그물망)를 넘고, 배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미끄럼틀)를 찾는다. 바다(모래 사장)에 도착해 물고기(통나무)를 만나고 물미역(나무 기둥)을 헤친다. 이어 아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수동펌프에 도착한다. 있는 힘껏 물을 퍼 올리면 연결된 관을 통해 물이 쏟아진다. 임무 완수.
올해 5월 문을 연 이 놀이터는 기존에 자리만 차지했던 야외무대를 바꿔서 만들었다. 무대와 철골 지지대를 재활용했다. 무대 위에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조합 놀이대를 올렸다. 선체에 달린 나무 실로폰, 착시 원형판, 소리 파이프 등은 아이들이 다양하게 놀 수 있도록 돕는다. 갑판에서 이어지는 13m의 긴 미끄럼틀은 무대 뒤 모래 놀이터로 연결된다. 무대 뒤에는 233.3㎡의 모래판에 149톤에 달하는 백모래가 수북하다. 모래 위에는 통나무와 나무 기둥을 놓아 아이들이 나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그 옆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동펌프가 있다. 고무줄과 움직이는 나무 패널 등으로 꾸며진 놀이터 벽은 놀이터를 둥글게 감싸 안는다. 돛을 연상시키는 햇빛가리개도 공중에 펄럭인다. 야외무대 아래 창고는 실내 놀이터로 단장 중이고 놀이터 옆 잔디 언덕에는 영ㆍ유아가 놀 수 있는 작은 그네와 앙증맞은 의자가 있다.
이곳에는 숨겨진 매력이 있다. 야외무대나 놀이터로 진입하는 첫 계단이 모두 높이 60㎝로 낮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이 내려서 기어갈 수 있는 높이다. 또 장애아동이 잘 놀 수 있도록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회전판 놀이시설을 두고, 진입통로의 턱도 없앴다.
숲 놀이터도 새로운 변화다. 서울 동작구 본동 어린이공원은 언덕 비탈 꼭대기에 있다. 이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비탈진 경사에 따라 나무 기둥을 박아 아이들이 그 위를 지나가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뛰어놀기도 한다. 언덕에는 나무로 된 흔들다리와 밧줄과 돌이 붙어 있는 지지대 등이 함께 있는 조합 놀이대가 있다. 기존에 입구와 출구가 분명했던 놀이대와 달리 어느 방향에서든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 설계됐다. 메뚜기 모양의 구조물도 성격이 불분명하다. 수십 개의 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듯해 아이들이 그 사이로 숨을 수도, 올라갈 수도 있게 했다. 모양은 메뚜기인데 아이들은 자동차, 우주선 등으로 표현하며 이것을 타고 마을(조합 놀이대)로 간다고 했다. 놀이터 한복판 바닥에는 웅덩이처럼 파인 트램펄린이 있다. 친구들과 놀이터를 찾은 오도영(12)군은 “(나무 기둥 사이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타고 올라가기도 해요. 공을 던져서 받기도 하고 매일매일 노는 게 달라요”라고 했다.
모험과 체험이 가득한 놀이터
전남 순천에서도 놀이터 실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2016년 5월 순천 연향동에 지어진 ‘기적의 놀이터 1호(엉뚱발뚱 놀이터)’에는 아예 놀이기구가 없다. 곡선의 나무 벽으로 둘러진 입구를 돌아 들어서면 원형 통이 묻힌 모래 언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위로 넓은 모래놀이터가 펼쳐진다. 모래 위에는 낡은 고목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다. 백사장 주위로 자갈이 놓여진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의 위에는 세 개의 수동펌프가 있다. 언덕 사이에 움푹 파인 지형에는 긴 대형 비닐을 깔아 미끄럼틀을 대신한다. 공들여 만든 도심 놀이터지만 마치 시골 산기슭 같다. 이곳을 설계한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는 “기존의 틀에 박힌 놀이시설에서 벗어나 가공하지 않은 자연소재를 주재료로 어린이가 스스로 상상하며 놀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순천 시내에 연이어 문을 연 ‘기적의 놀이터 2호(작전을 시작하~지)’와 ‘3호(시가모노)’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그물망이 모래 사장 위에 설치돼 있고, 10m가 넘는 집라인과 레펠(밧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장치)이 있어 아이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한다.
학교 내 놀이터도 변신을 꿈꾼다. 올해 7월 서울 중랑구 신현초등학교 내에 마련된 ‘꿈을 담은 놀이터’는 모래 언덕과 연못 위로 지나가는 나무 다리, 나무집 등으로 꾸며져 아이들의 흥미를 끈다. 학교 안 어디서든 놀 수 있도록 막힌 문을 뚫고, 빈 공터도 모두 활용한다. 학교 전체를 놀이공간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지역 특징을 살려 만든 놀이터도 있다. 올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들어설 ‘산마루 놀이터’는 골무 모양의 거대한 정글짐이 설치된다. 봉제산업의 메카였던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반영했다. 여기에도 흙과 모래를 이용해 노는 자연 놀이공간이 조성된다. 서울시의 창의 놀이터 사업의 자문을 맡고 있는 진승범 조경 디자이너는 “과연 아이들의 흥미를 계속 끌 수 있는지 여부가 놀이터 디자인의 핵심”이라며 “흙, 돌, 모래, 물 등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재료를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목공소 연상시키는 놀이터, 문학 놀이터…
유럽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미 혁신적인 놀이터가 많다. 일본에서는 도시 외곽에 거대한 모험 놀이터인 ‘플레이 파크’가 늘어나고 있다. 숲 안에 흙무더기가 있는 구릉지 등에 만들어진 이 공간에 톱과 망치 등 공구를 둔다. 숲속 목공소를 연상시키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나무 오르기, 줄타기, 흙 파기, 불놀이 등 기존 놀이터에서 할 수 없었던 모험을 즐긴다. 400여곳의 모험 놀이터가 만들어진 독일에서도 정형화한 놀이시설을 찾기 어렵다. 대신 지역 특색에 맞춰 폐자재를 이용한 놀이기구나 나무 판자 등으로 오두막집처럼 꾸민 놀이공간 등이 대표적이다. ‘동화의 나라’ 덴마크에서는 도서관과 결합한 문학 놀이터도 있다. 덴마크의 글라드삭세 시 도서관 정원에는 대형 책 모양으로 만들어진 놀이기구가 있다. 4m에 달하는 벽체를 세워 동화 속 인물을 그려 넣거나, 밧줄과 돌 등을 부착해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했다.
김성원 놀이터 디자이너는 “2차 세계대전 뒤 유럽에서는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전쟁의 폐허에서 주운 잡동사니로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줘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려 했다”며 “우리 사회도 시민들과 예술가 등의 협의를 통해 획일화한 놀이터에서 탈피해 아이들의 놀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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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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