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종주기 <상>
▶ 어둠속 닿은 노고산대피소는, 규정상 예약 없인 숙박 못해, 재외동포 배려 차원에 겨우…
화엄사의 각황전과 석탑.
시의 동산 입구.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뒤돌아본 섬짐강 물줄기.
구례 버스터미날에서 탄 차에 커다란 배낭을 걸머진 등산객들이 대여섯명이나 타고 있다. 이 버스를 타는 산객들이라면 모두가 나와는 동행이 될 것이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지리산을 가는냐 묻는다. 그렇다 한다. 이 버스로 화엄사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하다. 자기는 성삼재까지 더 간다며, 화엄사에서 내리면 등산길이 길어지니, 자기와 같이 성삼재로 가야는데, 예약이 안되어 있으면 산장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들 모두가 성삼재로 간단다. 물론 난 예약을 못했다. 난 화엄사로 갈 마음을 먹고 있다고 말한다. 화엄사 앞에서 나 홀로 차를 내린다(13:30).
막상 혼자서 내리고 보니 다소 난감하다. 내가 굳이 화엄사를 고집한 것은 딱 40년전인 1975년 8월에 군에서 제대한 계제에 몇몇 죽마고우와 노고단까지 걸었던 추억 속의 구간이기 때문이다.
화엄사 입구를 찾아 가노라니, 길가에서 감, 귤, 호박 등으로 좌판을 벌린 세명의 나이든 여인들이 나를 바라본다. 뭔가를 사드리고 싶다. 역시 짐이 되겠기에 주저하다가, 가운데에 앉은 나이가 더 지긋한 분의 좌판에서 감 3개를 집어든다(14:00). 단지 감 3개를 집는 내 작은 손이 부끄럽다. 자초지종을 해명할 수도 없어 민망하다. 이 감 3개가 아주 소중한 내 식량이 되리라는 것을 이 때에는 전혀 모른다.
노랗게 또 붉게 만발하여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국화화분 10여개를 가게 앞에 잘 진열해 놓은, ‘산나물 밥상’ 식당에서 된장찌게를 시킨다(14:10). 5000원이다. 밥과 찌게 외에도 깔끔한 반찬이 무려 13가지나 된다. 주인댁의 후한 인심에 비해, 혼자와서 독상을 받는 내가 마냥 송구스럽다.
대가람의 언저리답게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길을 따라 정갈하게 다듬어진 숲속 길이다. 10여분을 걸어가니, 치밀한 무늬의 단청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져 있는 일주문에 이른다. 한자로 ‘지이산대화엄사’라고 새긴 큰 글씨에 이어 ‘석전 91세 황욱’이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씨를 쓰신 분은 40년전에 이곳에 나와 같이 왔었던 친구 ‘황병태’군의 집안 조부뻘이 되시는 분임을 알겠다. 91세가 되셨을 때는 수전증을 앓고 계셔서, 붓을 주먹으로 꽉 움켜잡고 글씨를 쓰는 이른바 ‘악필법’을 구사하실 때 였겠다. 그래서 그런지 떨림이 있는 획필인데 그렇기에 더욱 강건강직한 느낌을 받게 되나보다. 이 분도 내 친구도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인생은 광음속의 덧없는 나그네라는 말이 되뇌어진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우리네 인간사 모두가 일장춘몽이고 수유이며 순간이고 찰나이다.
다시 10분쯤 길을 따라가니, 오른쪽에 개천을 건너는 큰 돌다리가 있고 ‘시의 동산’이라는 안내표석이 있다. 사찰에 시의 동산이라니 궁금하여 다리를 건너간다. 아마도 절과는 관계없이 마련된 동산인 듯 한데, 고금의 명시들이 새겨진 40개 가량의 현대적 조각작품들이 둥글게 조성한 숲길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향상된 조국의 문화 수준을 느낀다. 뿌듯하다.
사자를 닮은 동물의 석상이 수호신이 되어 양쪽 어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석조교량을 지난다. 화엄사 경내로 들어선 것이다. 얼핏 이 사바세계가 아닌 신묘한 청정 불국토가 아닌가 싶은 신령하고도 상서로운 분위기에 감싸인 사찰건물들이 나타난다(15:00). 이 울창한 산림속에 돌연 수십개는 족히 될듯한 수많은 건축물들이 빼꼭히 들어 차 있다. 불국의 성스러운 궁성이 바로 여기이다. 국보 제67호라는 각황전은 그 단청이 오히려 소박해 더욱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앞에 있는 석등은 국보 제12호라고 한다. 사찰건축물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여기 저기 10여명의 참배객들을 보게 된다. 구내 매점이랄 수 있을 곳에 이르른다. 불사를 위한 성금을 모으고 있다. 담당 보살님이 내어주는 특수한 펜으로 기와 한장에 가족의 이름을 써넣는 것으로 필요한 티끌 하나를 보탠다. 그 분이 말없이 문득 미소로 건네주는 감 1개가 더없이 따뜻하다. 염화시중의 미소, 이심전심의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이려니.
등산로 초입이 어디인지 몰라 이리저리 서성인다. 구석진 위치에 있는 퇴색한 옛 건물을 보수중인 인부에게 길을 묻는다. 나무로 만든 단아한 붉은 구름다리를 건너 사찰의 경내를 나와 지리산 신령님의 영역으로 들어선다(15:27). 지리산 종주의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화엄사(전남 구례)~노고단 대피소
7.0 km(첫날 15:27~17:44; 2h 17m)
제볍 운치있는 다리를 통해 계곡의 시냇물을 건넌다. 길이 왼쪽으로 꺾인다. 다듬지 않은 큰 돌들이지만 걷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게 촘촘히 잘 깔아 놓은 오름길이 펼쳐진다. 노고단까지는 7km이며 4시간이 걸린단다. 자잔한 시나대 지대를 지났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 속에 군계일학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이따금씩 섞여있는 삼림이 펼쳐진다.
가끔씩 산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은 홍보판들이 사진이나 그림을 겯드린 깔끔한 모습으로 길변에 세워져 있다. 예컨대, ‘피톤치드란? 나무가 내뿜는 천연항균물질로 사람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오전 10~12시에 많다’는 식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내용이다.
길이 조금은 더 가팔라진다. 짙은 수림사이로 난 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왼쪽 길섶 바위 아래로 맑은 물이 고인 조그만 웅덩이가 나온다(15:58). 참샘터라는 표지판이 있다. 심심산골의 분위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는 밝은 원색의 프라스틱 표주박 두세개가 작은 말뚝에 걸려있다. 차갑고 맛있다. 참된 좋은 물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려니 한다. 하산객 하나가 말없이 나를 스쳐간다. 그러고 보니 이 늦은 시각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오로지 나 혼자일 듯 하다.
국수등이라는 표지가 있는 곳에 이른다(16:21). 노고단까지의 딱 중간이 되는 자리이다. 시원한 폭포가 일품이라는 집선대를 지난다(16:50). 물 흐름을 이리저리 찾아보지 못한 채, 2.5km 남은 노고단 길을 계속 오른다. 단풍숲이 가관이다.
뒤돌아 아래를 보니 아름다운 수림 사이 사이로 하얀 띠를 구비 구비 펼쳐놓은 듯한 먼 물줄기가 보인다(17:16). 전북 진안의 마이산/팔공산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곡성 남원을 거치고 다시 구례에서 이 화엄사 계곡의 물도 품에 안고서 하동 광양을 지나 남해로 유입되는 섬진(두꺼비나루)강의 흐름이겠다. 한줄기 띠 같은 강물을 바라보면서 배낭에서 감 2개를 꺼낸다. 달다. 감미롭다는 말의 의미가 이런 것이겠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더 급해지기에, 힘들고 지쳐서 허리를 굽히고 오르다 보면 코가 땅에 닿게 된다고 해서 ‘코재’라고 부른다는 구간이다. 그러나 전혀 힘든 줄 모르겠다. 남가주에서 높은 산을 많이 다녀서 그런 것인지.
드디어 잘 닦아놓은 포장도로를 만난다(17:30).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무넹기’라는 표지판이 있다. 1930년경의 가뭄 때, 전북지역으로 흘러가는 노고단의 물 흐름을 이곳에서 200m쯤 길이의 인공수로를 만들어 전남의 화엄사 계곡으로, ‘물을 넘긴 곳’이라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이란다. 어릴때는 나도 ‘넘긴다’는 말이 아닌 ‘넹긴다’라는 말을 항용했었으니, 당연히 반갑게 이해가 된다.
주위에 차츰 어둠이 깃든다. 오른쪽으로 넓은 길을 따라간다. 곧 3층의 목조건물로서 이미 불을 밝힌 노고단대피소가 옅은 어둠속에 드러난다(17:44). 입구로 들어가는 즈음에 낮에 버스에서 얘기를 나누었던 중년남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성삼재까지 버스를 타고왔기에 일찍 이곳에 들어와 내일 아침의 산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힘든 길을 잘 왔다며 치하한다. 자기는 예약을 했었기에 숙소를 배정받았지만 내가 걱정된단다. 어쨌거나 고맙게도 접수구로 함께 가 준다.
젊은 청년직원이 나온다. 예약을 안했으면, 빨리 성삼재로 돌아가서 택시를 불러타고 구례로 내려 갔다가 내일 새벽 3시에 다시 오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밤을 새워 산행을 하겠노라고 말해 본다. 그러나 입산시간지정제를 시행하는 관계로 지금은 산행을 수락하지 않으며 새벽 3시가 돼야 산행이 허락된단다. 동행한 이가 내가 고국방문차 이곳을 찾은 재미동포라고 밝히면서 선처를 당부한다. 그러나 예외는 없으니 빨리 산을 내려 가란다. 난감하다.
김지운(가명)이라는 동행자가 자기 일인양 걱정하며 라면을 끓여 준단다. 이래 저래 고맙고도 고맙다. ‘인생도처유청산’이다. 야외의 벤치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데, 접수구 직원이 찾아온다. 상사로부터 외국인 자격으로 선처를 하라는 허락을 받았단다. 기사회생. 거듭 고마움을 표하며 입실수속을 마친다(19:30). 지운씨가 자기 옆자리로 배정받도록 직원에게 부탁한다. 따뜻한 사람이다. 이용료가 11,000원이고 담요는 두 장에 4,000원이었다. 필요한 식품을 사고싶다고 하니, 오로지 초코파이만 있단다. 말 그대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초코파이 한 상자를 산다.
남겨 놓은 감 2개와 초코파이 12개가 내 식량의 전부인데, 내일 하루로 산행을 끝내는 것이니 문제될 것은 없다. 물이 중요한데 물이야 얼마든지 중간 중간의 샘에서 얻을 수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너무 더운 난방이 고통스럽다. 깔끔한 목재를 써서 2층 침상구조로 만든 54명 수용가능한 시설이다. 빈자리도 제법 보인다. 평소에는 아주 쉽게 잠에 빠지는 편인데, 단 1분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기다린다. 일각여삼추. 자꾸 뒤척여 진다. 지운씨는 가볍게 코를 골며 잘도 잔다. 새벽 2시가 조금 지나니 몇몇 자리에서 사람들이 일어나는 기척이 있다. 반갑다. 다른 사람의 안면을 방해치 않으려 아주 느린 동작으로 짐을 챙긴다.
비록 잠은 잔게 없으나 그래도 더운 방에서 눈을 감은 채 여러 시간 휴식을 취한 ‘찜질효과’ 때문인지 몸은 아주 거뜬하다. 숙소 밖으로 나와보니 이 시각에 일어난 사람이 나까지 모두 여섯이다. 칠흑으로 어두워 앞이 안보이고 바람이 거세다. 막상 부딪혀 보니 혼자서는 도저히 산행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일찍 산행에 나서는 이 분들이 너무나 반갑고 고맙다. ‘반려’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어진다.
이들을 따라 걸어가니, 음식을 조리하여 의자없이 선채로 먹도록 마련된 주방건물이 나온다. 조리할 식품도 도구도 없는 나는 2개 남은 감과 몇개의 초코파이를 꺼내어 밤참을 먹는다. 그들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려고 그들의 동정을 살피다가 말을 붙여본다. 남자 셋에 여성 둘이다. 한 남자와 두 여성이 한 팀이고 나머지 남자 둘은 나처럼 홀로 온 산객이다. 서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 중 한 여성은 1500회의 산행을 기록했다니 실로 여간한 산꾼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행장을 차리고 밖으로 나선다.
▶노고단~천왕봉~새재마을(경남 산청)
36.0km( 둘째날 03:03~ 20:05;17h 02m )
03시03분이다. 차갑고 거센 바람이 구름을 싣고 온 몸을 휘감는다. 이들은 모두 중간의 어느 산장에서 1박을 하는 산행계획이란다. 천왕봉 25.5km라는 이정표가 있는 노고단 대피소 (고도1400m)를 떠난지 약 10분이 지난다. 지리산의 3대봉으로는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에 이어 이 노고단을 꼽는단다. 깜깜한 새벽인데다 구름이 온 산을 휩쓸며 무섭게 흐르고 있는 전망제로의 상황에서 일행의 뒤를 따라갈 뿐이다.
돼지령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03:55). 멧돼지가 좋아하는 둥글레와 원추리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그들이 빈번히 출몰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노루목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04:50; 1500m; 5.0km). 이곳의 지세가 땅이 넓게 벌어진 곳이라는 우리말의 ‘널목’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일행들이 우의를 꺼내어 입는다. 나는 아직은 견딜만 하여 그냥 걷기로 한다.
반야봉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서있다(05:27). 1분 정도 일행의 뒤를 좆으니 둥그스럼한 큰 바위에 ‘지리산 반야봉 1732m’ 라고 새긴 반야봉의 정상에 올라있다(05:28; 6.2km). 고래로 이곳 지리산의 3대 경관이라고 하면 ‘노고운해, 반야낙조, 천왕일출’을 꼽아 왔다는데, 오늘 나는 ‘노고운풍’에 이어 ‘반야낙우’의 경지를 누린다. 천왕봉에서는, 아예 산행시각이 이렇고 보니, ‘천왕일몰’이나 가당하면 좋겠다.
후레쉬를 터뜨려 정상바위의 사진을 찍고나니 이제껏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폭우로 급변한다. 서둘러 배낭을 내려 우의를 꺼낸다. 그 중에 누군가가 나를 향해 삼도봉으로 갈 거니까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으로 오라고 외친다. 우의를 입는 동안 앞서가는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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