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문재인 정부의 실험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소수의 검증되지 않은 신념과 이론은 성역화돼 반대 의견은 숨을 죽였고 ‘묻지 말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급함이 대세가 됐다.
정부 출범 1년까지는 화려한 포장과 기대가 통했지만 지금부터는 실제 결과가 정책 성패를 좌우한다. 일단 포장을 뜯어보니 기대와 달리 들어 있는 것은 명품이 아닌 조악한 짝퉁이다. 정부가 명품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이는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말로 들린다. 시작이 이 정돈데 앞으로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국민들의 잠 못 이루는 밤과 한숨은 깊어질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역사와 경험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중시하고,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한다. 국가 예산도 정치적 신념과 명분을 위해 사용한다. 정책의 동기와 그로 인한 방향이 잘못됐으니 역효과만 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반 국민들은 다르다. 책상에서 배운 이론보다 현장이 더 중요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우선시한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터득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욕이 앞서 정책을 너무 급진적으로 추진한다. 역사상 모든 개혁은 현실과 조화를 이뤄가며 속도를 조절할 때 성공했다. 지난 1997년 영국 노동당은 18년 만에 보수당에 압승했다. 당수였던 토니 블레어가 이념에 집착한 노동당의 오래된 ‘급진주의’를 ‘제3의 길’이라는 ‘개량주의’로 바꿈으로써 영국 국민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당 정책의 방향과 속도를 모두 바꾼 덕분에 세 번 연속해 집권할 수 있었다.
탈원전,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등 비(非) 안보분야 정책은 지금처럼 부정적인 영향이 바로 나타나 최악이 되기 전에 개선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안보정책의 오류는 전쟁 등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못 느끼고 지나간다. 알았을 때에는 해결할 방도가 없거나 엄청난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초기 자각증상이 거의 없는 것 자체가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암과 닮은꼴이다. 둘 다 주기적인 조기진단과 예방만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우리 안보의 핵심 두 축은 한미동맹과 자체 안보역량이다. 올해 6월 미북 정상회담 이후 첫째 축인 한미동맹이 유사 이래 가장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연합훈련이 돈도 많이 들고 북한에 도발적이어서 중단하고, 주한미군도 언젠가 철수하겠다고 공언했다. 놀라운 것은 우리 국민과 정부 모두 이를 괘념치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상 한미 양국 모두 동맹의 가치를 이렇게 낮게 평가한 적은 없다. 참으로 위험한 찰떡 공조다.
한미동맹이 흔들리면 두 번째 축인 자체 안보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상식이다. 1970년대 한미동맹이 흔들릴 때 자주국방으로 이를 극복한 것이 모범적 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반대다. 자체 훈련 중단, 약소(弱小)지향의 국방개혁, 최전방 대비태세 약화 등 자체 안보역량을 스스로 허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암에 걸리기 좋은 행동만 골라서 한 덕분에 암에 걸렸는데 정작 환자는 모르고 있으면서 병을 악화시키는 일만 하고 있는 꼴이다. 정부가 평화를 위한다면서 평화를 더 위태롭게 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이 그들을 더 가난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만약 종전 선언이 있거나 북한이 평화공세를 계속하면 어떻게 될까.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전방 대비태세를 허물어 6·25전쟁 직전과 같은 상황이 돼도 심각함을 못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떠난 미군을 다시 불러올 수도, 허물어진 대비태세를 되살릴 수도 없는 결정적인 시기에 북한이 악의로 표변하면 꼼짝없이 파멸을 맞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좋아져도 최악을 대비하는 안전장치는 있어야 한다. 더구나 세계 최강대국 틈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소홀히 하면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역사가 생생히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암 환자는 미신에서 벗어나 전문병원을 찾아 과학적인 진단과 치료를 시작해야 살 수 있다. 빠를수록 비용과 노력이 준다. 지금 당장 안보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을 통해 헝클어진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역량을 재정비해야 한다. 안보가 이념이나 국내 정치에서 벗어나 전문 영역으로 복귀해야 한다. 정부가 이 당연한 목소리를 진영의 논리로 간주해 귀를 닫으면 국가와 국민, 정부 모두 역사와 후손 앞에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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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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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등 시민 단체 , 학자들로 국정을 운영할수는 없다.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