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30세를 전후해 청력을 잃기 시작해 죽음까지 생각했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1808년 <운명교향곡>을 완성한다.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 1795~1864)에 의하면, 그가 베토벤에게 작품의 서두에 등장하는 4음의 동기가 무엇을 나타내냐고 물었을 때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것에서 유래해 그의 제5번 교향곡은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쉰들러의 많은 주장들이 거짓으로 판명되면서 이 증언도 신빙성을 잃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운명’ 교향곡이라 부른다.
제5번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많은 시련을 겪고 있었다. 청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하는 등 세상도 혼란스러웠다. 비록 ‘운명’이라는 제목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베토벤이 청력 이상, 신분의 장벽, 정치적 혼란 등의 어둠과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감동적인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제5번 교향곡을 들으면 1악장에는 어두운 시련과 고뇌, 2악장에는 다시 얻은 평온함이, 3악장에서 열정이, 그리고 4악장에서는 환희가 느껴진다.
<운명교향곡>은 강하게 연주되는 포르테시모(ff)의 ‘운명의 동기’로 문을 연다. 교향곡의 역사에서 이렇게 격렬하게 시작되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1악장은 단호하고 남성적인 리듬이 특징으로 다양한 리듬과 악구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두 개의 주제에 기초한 변주곡 형식의 2악장은 약간 어두우면서도 부드럽고 웅장한 느낌을 가진다. 1악장과 2악장의 관계를 ‘긴장과 이완’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변화무쌍한 전개를 가진 3악장은 스케르초(Scherzo)악장다운 유머스러움이 느껴진다. 4악장에서는 마침내 시련을 이겨낸 승리와 환희의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1815년경,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온전히 영감에만 의지한 창작을 시작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장대한 규모를 가졌고 경외감까지 이끌어내는 곡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은 단연 <교향곡 제9번: 합창>일 것이다. 제9번 교향곡은 최초로 교향곡에 합창을 도입한 작품이기에 ‘합창’이라는 부제로 불려지게 되었다. 4악장만 무려 25분정도의 길이를 가진다. 또한 4악장 구조의 교향곡은 보통 느린 템포의 2악장과 빠른 템포의 3악장을 가지는데, 베토벤은 이 두 악장의 순서를 바꾸면서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반전을 제시했다.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교향곡의 완성자’가 만든 ‘교향곡의 완결판’이라 정의한다.
4악장의 가사는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가 1786년에 발표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에서 따왔다. 4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이 웅장하고 화려한 주제를 연주하고, 마침내 베이스 독창자가 이렇게 노래한다. “오, 친구여! 이제 이러한 노래 말고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하는 환희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년, 베를린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은 Freude(환희)의 독일어 가사를 Freiheit(자유)로 바꾼 감동의 ‘자유의 송가’를 선보이기도 했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은 그가 남긴 마지막 교향곡으로 1824년에 완성되었다. 초연은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베토벤은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지만 지휘자로 무대에 섰다. 연주 후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지만 그는 연주가 끝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알토 독창자가 베토벤을 청중 쪽으로 돌려세우면서 그의 등 뒤에서 일어난 광경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 이 순간을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재해석했다. 영화 속 초연에서는 베토벤이 직접 지휘를 맡고 베토벤의 악보를 필사하기 위해 고용된 여주인공 안나가 그를 도와 연주를 이어간다. 안나는 베토벤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 앉아서 지휘를 하고, 청력을 잃은 베토벤은 그녀의 손짓을 보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간다.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인류의 평화를 그린 〈합창교향곡〉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한 감동을 준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교향곡을 쓸 권리는 베토벤에 의해 소멸되었다. 그 이상 진보할 수는 없다”며 제9번 교향곡을 극찬했다. 또한 2003년 <합창교향곡>의 악보 원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웅장하고 감동 넘치는 작품을 작곡가 본인의 귀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안타깝다. 청력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는 더욱 위대한 작품을 썼을 지도 모른다. 비록 베토벤의 삶은 고독했지만 그는 음악으로 우리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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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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