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가깝고 진정한 교우관계를 관포지교(管鮑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라고들 한다. 내게도 이런 귀한 친구가 있다. 70년 가까이 벗을 하며 오늘까지 변함없이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나이 들수록 만년지교(萬年之交)로 곰삭은 갓김치 지처럼 깊은 우정을 더해 간다.
지난 6월 말에 한국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6.25발발 68주년 행사에 초청되어 한국에 나갔다. 10년 만의 한국 나들이다. 제사보다 잿밥이라고, 나는 공식행사가 끝나는 대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 달릴 생각에 들떴다. 아물아물 잿불처럼 꺼져가는 인생 90줄에 10년 만의 벗과의 해후이다.
내게는 정말 교칠지교(膠漆之交)의 두 친구가 있었다. 젊어서 고락을 같이한 친구다. 모두 고향이 이북 함경도이고 6.25사변 격동기인 1950년도에 교편을 잡았다. 나이도 동갑이고 같은 종교를 갖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부산 데레사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이종택은 2년 전 불치병으로 먼저 가고, 부산 당감초등학고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이송연 장로는 부산을 지키고 있고 나는 1995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우리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 이해하며 인격적으로 다져온 절친한 우정이다. 비록 몸은 6천마일의 대양을 사이에 두고 나눠져 있지만 아교풀 같은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다.
이번에도 한국에 나가는 것을 맨 먼저 알린 곳이 부산 이송연 장로였다. 서울에 내 조카들과 친척 그리고 가까운 동창, 동향인들이 있고 부산에도 생질들과 교계에 가깝게 지내오던 이들이 많지만, 전달 서열의 1번은 단연 이송연 장로다. 내가 한국에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짧은 기간에 효과적인 여행계획도 꼼꼼하게 설계했다고 했다. 그는 6.25 때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상이군인이기도 하다. 또 거기에 그의 처인 정경숙 권사도 벌써 여러해 전에 파킨슨 중후군에 걸려 하반신 불구로 걸음도 짜작 짜작 제대로 걷지 못하는 중증환자로 매우 불편한 형편에 가사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6월 30일 서울역에서 KTX로 부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조금 지나서였다. 이즈음 한국은 우울한 장마철이었다. 세찬 바람이 많은 비를 퍼다 뿌려대는 불순한 일기에도 불구하고 이송연 장로는 지팡이를 짚고 정경숙 권사는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부산역 개찰구까지 마중을 나왔다. 나는 기쁘고 반가운 마음 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다짜고짜 정경숙 권사를 와락 한참을 끌어안았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비도 바람도 우리의 정은 당해내지 못했다. 역 부근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연지동 새싹로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에 여장을 풀고 1주일 동안 서울로 다시 올라올 때까지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친구의 아내는 내가 좋아 하는 식해(함경도 시캐)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한국에 나가기 전에 불편한 몸으로 자갈치시장에 가서 살아 있는 가자미를 사서 절이고, 메조 고슬 밥을 만들어 삭히고, 토종 무,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여러 가지 양념들을 버무려 작은 옹기단지에 켜켜이 정성으로 담그어 두어서 나는 식해를 원도 없이 삼시 세 때를 먹을 수 있었다. 식해는 뼈 생선의 발효식품으로 뼈째로 먹으며 젖산이 풍부하고 단백질이 많아 관절염에도 좋은 음식이다. 식해를 담그는 일은 여러 가지로 번거롭고 특별한 음식솜씨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사실 내 아내는 평안도 출신이어서 함경도식 식해를 담글 줄 몰라서 결혼 후 60년 지금까지 한 번도 아내가 만든 식해를 맛있게 먹어 볼 수 없었다. 미국에 사는 지금은 어쩌다가 마트에서 가끔 사다 먹지만 본 고장의 깊은 식해 맛을 볼 수 없는 터이다.
나는 부산에 살 때 식해가 먹고 싶으면 강원도 속초 아바이 시장에 택배로 주문하여 먹을 정도로 정통 함경도 식해를 좋아한다. 남편의 친구를 위해 힘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려운 내색 없이 진심으로 베풀어 주는 호의에 감사의 말을 했더니 ‘이번에 가시면 또 언제 만날 수 있겠어요? 이종택 교장님도 앞서 가셨는데, 두 분 남은 인생 건강하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그간의 수고를 웃음으로 덮었다. 정말, 정말 부부 합심으로 대해주는 선심에 부창부수의 뜨거운 환영과 후대에 마음깊이 진실한 우정에 감사하며 지내다가 얼마 남지 않는 인생길 더 끈끈한 관포지교의 우정을 다지며 정성으로 베풀어 준 친구 아내의 사랑에 감사를 마음 깊이 담고 돌아왔다. 오리지널 함경도 식해 또 언제 먹어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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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전시사관학교 워싱턴전우회장 /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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