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손님들이 가득하다. 노익장 어지간한 어르신들로만. 모두 허연 대접에 담긴 허연 것을 드시고 계신다. 면에 걸쭉하게 붙은 허연 소스가 마치 크림 소스 파스타처럼 보인다. 가벽에 가로막힌 주방에선 50년 된 부뚜막 연탄불에 부글부글 뭔가 끓고 있다.
평상시엔 콩비지 전문 식당이었다가 여름엔 콩국수 명소로 변신하는 서울 중구 주교동 ‘강산옥’이다. 10여 년 전부터 콩국수를 개시한 이 집 콩국수는 유독 맛이 좋다. 각종 포장재를 파는 가게들만 늘어선 청계천 노변 낡은 건물 2층까지 여름마다 콩국수 애호가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굵은 밀가루 면발의 콩국수 대접을 받으면 이런 설명을 꼭 듣게 된다. “비벼 드세요. 스파게티처럼. 숟가락으로 콩국물을 떠드시면서.” 면 두께가 중면이라 아니나 다를까 스파게티 같다. 혹자는 비벼둔 강산옥의 콩국수 사진을 보더니 대번에 “비빔 콩국수네!” 하기도 한다. 좋은 콩을 구해다가 매일 콩을 불리고 강한 연탄불 화력에 팔팔 끓여 만드는 이 집 콩국물은 콩의 진한 단백질 맛을 온전히 낸다. 질감은 꾸덕하지만 된 죽 같지 않고 유화를 잘 시킨 파스타 소스 같이 농후하다. 마치 크림처럼 가볍고, 입안을 흐르는 느낌이 유독 부드럽다. 팔이 아프도록 거품기로 휘저어 공기를 넣은 것이 비결이다. ‘휘핑 콩국물’이라 할 수 있다.
입맛에 맞춰 소금간을 보고 짜장면 비비듯 비벼 먹는데, 김치 먹을 간도 생각해야 한다. 액젓 향이 짜르르하게 혀 끝에 와 닿는 새빨간 김치는 매일 담는데, 담백하게 고소한 콩국수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콩국수 위 고명으로 듬뿍 얹은 오이채가 아삭아삭하니 콩국물과 면의 무거운 질감을 가볍게 완충시켜준다.
양이 적어 보이지만 그래도 막상 먹기 시작하면 배가 불러 다 비우기 힘든 것이 파스타와 꼭 닮았다. 이 타이밍에 사장님은 또 한 번 설명을 들려준다. “배부르시면 면은 남기고 콩국물만 떠서 드세요.” 국수 사이에 밴 콩국물까지 꾹꾹 짜서 긁어 먹었다. 문 닫을 채비를 하는 배짱 식당에서 콩국물 페트병 하나를 사들고 나왔다. 그나마도 다 떨어지고 주인이 집에서 드시려고 따로 챙겨둔 것을 팔아주어 간신히 샀다. 콩국수의 성지다.
콩국물? 콩물? 콩국?
이런 콩국수가 강 너머 반포에도 있다.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의 ‘베테랑’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본점을 뒀는데 본점과 같은 콩국물을 사용해 서울식 짭짤한 콩국수를 판다. 아무 고명도 없이 쫄깃한 면을 큼직하게 똬리 틀어 놓고 강산옥의 것처럼 부드럽고 크리미한 콩국물을 부어 얹는다. ‘마신다’는 행위가 불가능한 콩국물들이다. 먹어야 하는 콩국물이다.
이 집 콩국수도 유별나기가 보통이 아니다. 파주에서 햇 장단콩이 나올 때 톤 단위로 사서 건조시키고 크기 별로 선별해 진공포장해 저온창고에 보관해둔다. 크기를 구분하는 것은 콩 사이즈가 다르면 익힘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덜 익은 콩은 비린내를 내고, 과하게 익은 콩은 메주 군내를 낸다. 더도 덜도 아니라 딱 떨어지는 콩국물 맛을 맞추자면 콩의 크기도 중요한 것이다.
좋은 커피를 만들 때나, 맛있는 밥을 지을 때 중요한 것이 ‘핸드 픽(hand pick)’이다. 베테랑에선 콩국물 만드는 데에도 핸드 픽을 한다. 상하거나 깨지거나 벌레 먹은 낱알을 제거해서 콩의 맛있는 맛만 남긴다. 5~20%의 콩이 이 과정에서 버려진다. 불리고 삶고, 불순한 맛을 내는 껍질도 남김 없이 제거한 후에야 기계식 맷돌로 콩국물을 갈아낸다. 끝이 아니다. 대형 거품기로 휘저어 미세한 거품을 콩국물에 집어 넣어야 끝난다. 고운 빙수 얼음을 섞어 희석시키는 것도 요령이다. ‘공기 반, 콩 반’인 베테랑식 휘핑 콩국물이 만들어진다. 전주에서 만든 콩국물은 서울 지점으로 보낸다. 고속터미널에 위치한 이유다. 당일 소진이 원칙. 본점에선 전주식으로 콩가루와 설탕을 쳐서 내고, 서울 지점들에선 둘을 생략하고 원래의 소금간만으로 서울식 변형 콩국수를 낸다. 서울 입맛엔 충분하다. 콩 외엔 아무 것도 넣지 않는 이 식당의 콩국물은 잣을 안 넣었는데도 잣 같이 톡 튀는 싱그러운 고소한 맛이 난다.
면은 남겨도 국물은 꼭 다 드세요
참, 여기선 콩국수용 콩국물을 콩국물이라고 안 하고 ‘콩물’이라고 한다. 전라도식이다. 면을 넣어 먹고 설탕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부어 달달한 맛을 가미한다. 겉보리나 메밀껍질로 색을 낸 밀가루 소바를 넣어 먹기도 한다. 경상도에서는 이걸 또 ‘콩국’이라고 한다. 단 맛은 내지 않고 짭짤하게 간하는 대신에 채친 우뭇가사리를 넣어 먹는 방식도 갖고 있다. 콩은 다 같이 삶고 갈아 먹는데 이름은 제 각각이다.
땅콩과 깨를 첨가해 고소함 배가
콩국수에 콩만 들어가라는 법도 없다. 중구 충무로5가 인쇄소와 오토바이 상점이 즐비한 좁은 뒷골목의 ‘만나손칼국수’에선 껍질 깐 땅콩과 깨를 첨가해 고소함을 배가시킨다. 이곳 역시 전문은 칼국수인데, 여름이 되면 콩국수를 계절 메뉴로 올린다. 올해 콩국수도 5월부터 시작했다. 사장님 가족이 고향 경상도에서 농사지은 콩을 수확하자마자 콩국수를 시작한다. 한 번에 다 받아 두지 않고 저온에 보관해뒀다가, 그때그때 서울로 받아 콩국물을 만든다.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후 늦게 가면 이미 배추를 손질하며 문 닫을 채비를 하고 있다. 저녁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은 주변 상권이 일찍 퇴근하는 이유도 있지만 새벽 같이 불을 켜고 면을 만들고 육수를 내고 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콩국수의 면도 매일 아침 만든다.
노란 기운이 도는 면에 진한 콩국물을 부어 내고 별다른 고명을 두지 않는 것은 베테랑과 같다. 얼음 몇 알을 띄워주는 것이 차이다. 맛은 크게 다르다. 면을 들어올리기가 둔중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거운 콩국물에선 진한 고소함이 참기름 못지 않게 배겨난다. 땅콩의 건조한 고소함과 깨의 달달한 고소함이 콩의 고소함과 진득하게 어우러진다. 소금을 듬뿍 쳐 짠 맛이 고소한 맛을 만나 시너지를 이루는 지점까지 간을 보고 면을 삼키기 시작하면 얼음이 슬슬 녹으며 뒤로 갈수록 먹기 편한 콩국수가 된다.
마늘 향이 강렬한 이 집의 겉절이 김치는 명물 중 명물인데, 사시사철 널 뛰는 배추 가격을 감수하고 매일 한 망씩 먹기 좋게 칼로 쓱쓱 쳐내 만드는 것이다. 진하고 고급스러운 국물맛의 이 집 칼국수와도 잘 어우러지지만 콩국수와도 조합이 잘 맞는다.
이외에도 여름철 콩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식당이야 많다. 콩국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당은 단연 서소문 ‘진주회관’과 여의도 ‘진주집’. 두부에 콩비지, 청국장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콩 요리 전문점 ‘황금콩밭’, ‘사계진미’ 같은 곳들도 있고 최근엔 외식 기업 월향에서 ‘두부’라는 상호로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콩빠두’처럼 콩국물에 두부를 조합시킨 ‘하드코어’ 콩 요리도 유명하다.
콩물, 어디가 맛있을까
역대급 폭염에 집 안에서 8시간 이상 콩을 불리고 김 내며 삶고 열 나는 블렌더에 갈아 가정식 콩국물을 만든다는 것은 냉방 낭비를 불러오며, 나아가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다. 하여 우유나 두유에 견과류와 두부를 갈아 만드는 ‘야매 콩국물’에 만족하는 것도 그럭저럭한 대안이 된다. 그러나 그 위조된 맛에 아쉬움을 느꼈던 합리적 홈쿡(home cook)들은 차라리 전문가에게 ‘콩국수 가사노동’을 외주 주기도 한다. ‘이두부야’ ‘아빠맘두부’ 같은 곳에서 콩국물을 사다가 가정식 콩국수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오뉴월 초여름부터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개그우먼 이영자가 다이어트용으로(?) 콸콸 마시며 진작에 유명해진 이두부야 서울이촌점의 서리태 콩물은 잣을 함께 갈아 넣어 달콤하고 화려한 맛의 미숫가루나 선식 못지 않게 입맛 당기는 간식도 된다.
공기 함유량에 따라 질감이 다르고, 백태 또는 서리태로 나뉘는 주재료, 잣과 땅콩, 깨 등 부재료 배합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콩국물이지만 모두가 진득한 콩국물이라는 지향을 갖고 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목포의 ‘유달콩물’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차별되는 각별한 장르다. 질감은 훨씬 묽지만 맛은 진하기 그지 없는 콩물로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콩물은 물로 희석할 때 아주 적은 비율 차이로도 농후한 상태에서 묽은 상태로 돌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유달콩물은 그 묽은 물성이 되는 경계치에서 고소하고 진한 맛을 최대한으로 유지한다.
최악으로 기억될 뜨거운 여름은 여전히 긴 꼬리를 남기고 있다. 열대야에 시달리고 컨디션도 저하된 우리에게 필요한 마지막 보양식은 뜨끈한 삼계탕 대신 시원하게 식힌 콩국수 한 그릇일지 모른다. 은은하게 채워주고 잡아 이끄는 콩국수는 아무튼 부담스러울 일도 물리는 일도 없는 여름만의 별미지 않은가. 남은 더위, 콩국수 한 그릇으로 시원한 끝마무리 하시라.
<이해림 객원기자·강태훈 포토그래퍼>
[현대해운]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혈관 건강을 챙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요. 여러분은 혈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현대해운]혈관 건강은 주로 노화가 진행되면서 지켜야 할 문제라고 인식되어 왔습니다. 최근 생활 패턴과 식생활의 변화로 혈관의 노화 진행이 빨라지고
서울 수송 초등학교 동창회 2024년12월 마지막 토요일 송년회 모임 714-975-4979
사업체 거래는 그동안 정성과 수고로 이루어낸 사업체를 매각하는또한 바이어의 입장에서는 생업이 되어야하는 중요한 거래입니다.많은 경험과 전문 지식 그리고 신뢰감을 느낄수 있는 전문 부동산 에이젠트와 함께 하시는게 많…
쥐띠 모임 동아리607284용띠 모임 동아리 647688원숭이띠 모임 동아리 688092CELL & TEXT 714-975-4979
혹시나 해서 글 올려봅니다 ROCK 밴드 에서 MEMBER 찾고있습니다 POSITION :키보드 1st GUITARIST 여성 보컬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 피아노 연주자 음향장비 전문가..기타등등..찾고있습니다 로스…
안녕하세요,19년차 캘리포니아 부동산 브로커 다니엘 장 입니다.▶"HIGH IQ (156 )" 그룹 "US MENSA/멘사"◀ 평생회원 인 다니엘 장이 현재 President / Broker 로운영 중인 미 주류 …
한인이 받은 USPS 사칭 사기 문자. 발신 번호에 필리핀 국가번호(63)가 찍혀 있다. “우체국입니다. 귀하의 소포가 일시적으로 압류되었습…
볼티모어카운티 이그제큐티브인 존 올제스키가 메릴랜드 제2선거구의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내년 1월 3일 사임함에 따라, 카운티의회는 이그제큐티…
새크라멘토 한국학교(교장 천청구)는 지난 14일 오전 11시에 가울학기 종각식을 가졌다.박지윤 교감의 시회로 국민의례 후 서청진 이사장을 대신…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