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이었으니까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서 일단락이 된다. 죽는 순간부터는 망자는 생전의 어떤 상황도 되돌릴 수가 없다. 나의 이런 잡문(雜文)도 어느 순간이면 끝난다. 사람은 같이 태어나서 같이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은 삶의 경로와 그 길이가 각각이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 노회찬 전의원을 마음속으로 추모한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지금도 일부에서는 저주를 퍼붓고 있다. 하도 심란해서 마음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도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분들의 삶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 다른 죽음도 있었다. 2015년 전 경남기업 회장이던 성완종이 뇌물을 준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 8명의 명단을 남기고 자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단 한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 중에서 김기춘, 홍준표의 이름이 눈에 띈다. 아다시피 법비(法匪) 김기춘의 삶은 비루하기가 이를 데 없다. 홍준표는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대해서 ‘자살을 미화하지 마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인지는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도 의문의 여지가 아주 많다.
지금도 진행 중인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각종 재판에 대한 의혹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제대로 밝혀진다면 대한민국의 사법부의 신뢰와 삼권분립, 법관의 양심을 바로잡는 일대 기회가 될 만큼 사법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악의 사법파동’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법과 도덕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도 없지만, 이 땅에 계속 살아야 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대들의 인생까지도 지배하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준엄하다.
그 중에는 한명숙 전 총리가 있다. 처음에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유명한 ‘의자가 돈을 받았다’는 건으로 무죄가 확정되자, 검찰은 또 다른 건으로 기소하고, 그것도 1심 무죄, 2심에서의 황당한 유죄,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를 확정하는 동안 ‘한 인간으로서 어디까지 인내해야만 했는가?‘그 사건에 대한 대법원 재판관여 내용들이 이제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살아서 싸우겠다’는 천금보다 무겁고 값지며, 죽음보다 더 비장함과 결연함이 시대를 넘어 숙연케 한다.
다소 감상적이겠으나 사람은 ‘머리로 사는 사람들’과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야 머리와 가슴이 각각 일 수가 없겠으나 이런 끔찍한 죽음과 삶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가, 사회중심적인가의 차이로 보이기도 하다.
두 그룹간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기보다는 서로를 향해 바보이거나 미쳤다고까지 생각한다. 머리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돈과 지위, 권력’에 생의 목표와 관심이 집중되는 특징이 있다.
누구나 그런 관심과 욕심이 없을까만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게 도덕, 양심과 충돌하면 법 이전에 대개는 스스로 양보, 포기하는 선택을 하여 자기희생으로 전체와 조화를 모색하지만 머리로 사는 사람들은 그것만이 삶의 최후의 목표이고 보람이자 가치인 듯 순간의 모면에 몰두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오지심(羞惡之心)마저 없다. 남보다 열심히 일했고,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으니 돈과 지위, 권력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철석같은 믿음의 뿌리가 굳건하다.
주변과 사회를 둘러본다는 것은 시간낭비이자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패배적 감상주의자나 열등자, 마이너리티들이나 하는 짓으로 본다. 그래서 머리들은 가끔씩 가슴들이 돈이나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게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세상이 뒤집힌 걸로 받아들인다.
돈 대신에 이슬만 먹고 살라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돈과 가까이 있으면 ‘위선’이라고 몰아 부친다. 가슴들은 이런 머리들의 공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여리다. 영악하지도 못하다.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이를 ‘도덕적 결벽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지 말자고 이글을 쓴다.
무한 경쟁의 신자본주의 거센 추세도 알고 보면 아주 계산적인 소수의 머리들이 수많은 가슴들을 아픔과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나 현상은 국가사회나 인류를 매우 비관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더디겠지만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당위이다. 한국의 촛불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상황들이 그런 진전의 전형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소망이 되는 분들’의 삶은 아무리 닥친 현실이 어렵더라도 바라보는 수많은 가슴들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불과 한 달 차이를 두고 워싱턴을 다녀 간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을 대하는 나의 소회는 매우 혼돈스럽고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노회찬의 길’보다는 ‘한명숙의 길’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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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생각 가치관 자존심 중요하게생각하는게 다르니 뭐라할수있나요 하튼 좋은글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