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이 없어 무료검진 서비스 행사장을 찾는 한인들이 적지 않은 마당에 아이러니하게도 정규 수의과병원에서 보험으로 당당하게 치료받는 팔자 좋은 견공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개살구 개소리 개망신 등의 예처럼 ‘개’자가 붙은 낱말은 한결 같이 이미지가 나쁘지만 ‘개 보험’(펫 보험)은 저질보험을 이르지 않는다. 보험업계의 떠오르는 유망 업종분야다.
한국에선 8월16일이 말복이고 미국에선 그 열흘 후인 26일이 ‘전국 개의 날’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개를 삼복더위와 관련짓는 건 동서양이 매한가지다. 물론 미국인들이 개의 날에 보신탕을 먹지는 않는다. 폭염에 헐떡이는 개들을 보살피고, 여름철에 많이 늘어나는 유기견들을 앞장서 입양하자는 취지로 개 생태학자인 콜린 페이지가 2004년 제정했다.
미국인들의 개 사랑은 유별나다. 전체 미국인 중 약 75%가 애완견을 가족의 일원으로 대한다고 말했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개와 한 침대에서 잔다고 했다. 최근 통계에 잡힌 미국 내 개의 개체수가 9,000여만 마리이므로 이들 중 적어도 4,500만 마리가 매일 밤 주인과 한 이불 속에서 잠잔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늘어진 개 팔자는 세상에 없을 터이다.
미국인들이 지난해 애완견에 쏟아 부은 돈은 자그마치 700억 달러였다. 10년 전인 2007년에 비해 거의 70%가 늘었다. 애완견의 생일에 동네 개들을 모두 초청해 뒷마당에서 파티를 열어주는 건 예사다. 일부 유대계 주민들은 애완견이 10살을 넘기면 자녀들의 전통의식처럼 예복을 입혀 ‘바 미츠바’(성년 축하식)를 열어주고 랍비를 초청해 축복기도까지 해준다.
전체 미국인 가구 중 약 30%가 1인 가구다. 1960년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늘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결혼과 자녀출산을 계속 늦추는 추세다. 이들의 아버지 세대인 베이비부머들도 전 세대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장수하는 경향이다. 돈 있고, 시간 많지만 마음 붙일 데가 없는 미국인들이 어느 때보다 많아지면서 개를 자녀처럼 기르는 가구도 계속 늘어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젊은 층 입주자들은 십중팔구 개를 기른다. 관련 통계를 보면 개를 기르는 전체 미국인들 중 38%가 밀레니얼 세대다. 애완견 주인들 중 31%가 개에게 옷을 사 입히며 두명 중 한명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사준다. 출근길에 개를 자식처럼 ‘탁견소’에 맡기는 주인이 2%이다. 특히 유언장에 개 몫을 챙기는 주인이 무려 44%나 된다.
잘 먹고 잘 살아서인지 개들의 평균수명이 40년 전보다 두배쯤 길어졌다. 그래서 개 건강보험 회사들이 성업을 구가한다. 밀레니얼 재주꾼들을 채용하려고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제록스, HP 등 전국의 5,000여 기업체가 직원 베니핏에 애완동물 보험을 포함시켰다. 개뿐만이 아니라 고양이와 배불뚝이 돼지, 심지어 족제비까지 커버해주는 보험사들도 있다.
개 보험도 사람 건강보험마냥 플랜에 따라 보험료가 천차만별이다. 월간 20달러 미만의 기본플랜부터 60달러 이상 드는 종합보험도 있다. 보험으로 CT나 MRI 검사는 물론 암의 키모치료와 콩밭 이식수술까지도 받는다. 개 보험사는 지난 1982년 단 한개(네이션와이드)뿐이었지만 지금은 최소한 11개로 늘어났고 가입자도 지난 2년간 12~15% 늘어났다.
한국에서도 2007년 창업한 ‘하이펫 애견보험’을 필두로 펫 보험이 한때 붐을 이뤘지만 모두 흐지부지 사라지고 지금은 두 회사만 펫 보험상품을 팔고 있다. 보험료가 비싼데 비해 중성화(거세), 꼬리 자르기, 선천적 질병 등 커버되지 않는 항목이 많고, 특히 보험사와 가입자들이 서로 속인다며 불신하기 때문이다. 애완동물 보험 가입률이 0.1%에 불과하다.
개 보험이 나쁘진 않지만 개는 개처럼 기르는 게 좋다. 사슴을 야생동물로 놔두듯이 개도 개로 놔둬야 한다. 주인과 함께 자며 휴가여행도 같이 가고 주인 등에 업혀 등산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스웨터에 신발도 신는다. 개들이 본성을 잃어간다. ‘개 같은 세상’을 고발했던 60년대 히트 다큐멘터리 영화 ‘몬도 카네(Mondo Cane)’에 어울릴만한 모습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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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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