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문 배우기에 기를 쓰고 있다. 한문이 좋아서 또는 (유식하게 되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석적으로 배우는 한문이 재미있어서다. 즉 손자 ‘孫’이란 ‘자손을 이어주는(絲 ) 아들(子)’ 이라는 식의 한문배우기다. 한문은 그림에서 파생된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글씨 자체로도 하나의 미술적인 멋이 있다. 더욱이 동양화와 어우러질 때 고전적인 운치도 있기 때문에 훗날 취미로 서예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예술은 햇빛처럼 자연스러워야한다고 한다. 하나의 문장, 서예가 그렇듯 타오르는 불꽃… 나르는 새처럼. 나의 글쓰기가 그럴리는 만무하다.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아는 것과 어떻게 쓰여지는 것은 다르다. 나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무르익어 주길 바라지만 문장 하나 만드는 것 조차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쓴 글을 여러번 고쳐 써보고… 아니 아무리 고쳐써봐도 늘 부자연스러운 것이 (나의)글쓰기 폼새이기도 하다. 문학이든 어떤 예술이든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의) 한문배우기가 그렇듯 그것이 자연스럽게 무르익기를 기다리기에는 우리는 우리의 글쓰기(문학) 그 먼 이야기를… 너무 필요이상, 충만한 욕심으로 과시해 오지는 않았는지…
이문열의 ‘금시조(金翅鳥)’를 다시 읽었다. 30여년 전에도 읽었지만 글쓰기(서예)를 다뤘다는 점에서 다시 읽고 싶어졌다. 서예를 소재로, 작가의 예술론을 피력한 작품인데 주인공은 서예를 통해 금시조를 보고 싶어하지만 결국 실패한다는 내용이다. 글은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 즉 말년에 가서 작품들을 불태우면서 비로소 금시조를 보게된다는 결론을 맺게 되는데 여기서 하나의 예술…서예를 두고 왜 스승과 제자가 반목해야 되는지는 다소 의문을 남긴다. 서예가 하나의 예(藝)라면 모방은 藝의 본질이 아니기에 다툼의 여지가 없고 학문(道)이라면 그것 역시 배우는 자의 열(熱)과 성(誠)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족함의 문제일지언정 반목은 있을 수 없다.
작가는 여기서 서예를 하나의 문학으로 보고 그 대립구도 속에서 본질추구를 표면화하고 있는데 (한국)문학의 현주소는 아직 학문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문학에서의 藝보다는 知적인 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죄송하다) 이문열의 문학이 추후 극단적인 대립, 추종자와 안티로 나뉘어 반목하게 되는 것은 문학의 수직관계(학문이라는 생각)와 연관지어 볼 수 있지나 않을까.
약 십여년 전 이문열 선생을 만났다. 버클리에 방문차 와 있는 선생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선생이 잘 나가는 베트스 셀러 작가라서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 ‘금시조’를 읽었을 당시의 그 치열한 목마름이 작가의 이름(文烈)만큼이나 다시한번 열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 어찌보면 나약하고 치졸하기도 한, 문학이란 이름에 목숨을 건 인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가치를 영혼에 담기에는 너무도 빈한하고, 개인의 가치가 훈훈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기보다는 집단주의, 물질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혈혈단신… 원고지에 영혼을 불태우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었던 부정적이었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을 그저 몇 마디의 대화로, 서먹한 눈길 몇차례로 충분히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겠지만 그래도 묻고 싶은 질문이 꽤나 많았었다.
만나본 선생은 예상대로 묵직하고 (문인다운) 선한 인상이었다. 다만 그 당시 한국에서 선생의 ‘책 장례식’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뒤라 표정이 다소 어두운 것이 맘에 걸렸다. 선생은 상대가 기자라는 직업의, 그런 보편적인 직함을 가진 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에 대한 탐색이라든가 표정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이… 아니 선생은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나의 호의를 눈치채고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마음의 상처를 (다소 부담스러운 제스쳐를 곁들여) 마구잡이로 쏟아놓았다.
선생은 2천년돈가 총선 당시 일부 인사의 낙선운동, ‘조선일보’ 등의 절독 운동에 나선 시민단체들을 '홍위병'이라 매도했다 된통당한 바 있다. 나는 여기서 선생을 만난 감회를 뒤로하고 싶은데, 그것은 실망스러웠기 때문보다는 그의 이글거리는 분노 속에서 철저한 자기 부정 속에서 비로소 타오를 수 있었다는 상상의 새… 그의 金翅鳥가 떠올라 안타까움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금시조’ 는 이문열 작가가 내놓은 순수소설 중의 하나로 1982년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문장도 미려하고 체험을 바탕으로한, 치열한 사색이 담긴 수작이었다. "내 일찍이 네놈의 천골(賤骨)을 알아보았더니라. 가거라. 너는 진작부터 저자거리에 나앉어야 할 놈이었다” 이 말은 스승 석담이 제자 고죽에게 퍼붓은, (‘이문열 책 장례식’에서도 사용된 문구) 제자의 글이 道에 이르지 못하고 藝로만 전락하고 만데 대한 분노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작가가 스스로 스승 석담편에 서 있는지, 아니면 제자 고죽의 편에 서서 자유로운 영혼(순수 예술가)으로 남기를 바랬는지는… 각자 읽는 이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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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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