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열리는 나토 국방장관회의 사진은 남성일색 군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다소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회의참석 국방장관들의 다수가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EU의 주요국 국방장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들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 군 출신은 없다. 지난 2013년 독일 최초로 국방장관에 발탁돼 지금까지 재임하고 있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7명의 자녀를 둔 의사 출신이다. 유럽은 군의 문민화를 넘어 군 인사의 남녀장벽까지 허물어 버린 지 오래다.
다른 서방국들의 경우 여성 국방장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자리에 민간인을 임명하는 ‘문민통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방 최고책임자에 민간인을 앉힘으로써 “군대는 국민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군에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다.
한국군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나라인 미국 역시 ‘문민통제’가 확고하다. 군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자칫 권력의 도구 혹은 주체가 될 위험이 높은 만큼 강력한 통제가 뒤따라야 한다는 게 독립전쟁 당시부터 형성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국방장관에 민간인을 임명하는 전통이 지속돼 오고 있다.
현 법률에 따르면 군 출신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려면 전역 후 7년이 지나야 한다. 국방장관 뿐 아니라 국방서열 1~4위까지 모두 이 원칙에 해당된다. 현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는 2013년 전역한 만큼 이 원칙에 저촉됐지만 연방의회의 특별면제를 받아 가까스로 장관에 임명될 수 있었다.
미국의 국방장관들은 학자나 기업인, 정치인 출신이 대부분이다.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물리학자도 있었다. 민간인이 국방장관을 맡는다고 국방이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는 찾아 볼 수 없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뛰어난 군인들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군 현실은 이와는 너무나 다르다. 박정희 시절 이후 민간출신 국방장관은 단 한명도 없었다. 6공 출범을 앞두고 최광수 전 외무장관이 한때 국방장관으로 거론되다가 군의 반발로 무산됐던 기억이 있다. 시대가 바뀌고 안보환경이 달라졌지만 국방장관에 사성장군 출신들이 앉는 전통만은 요지부동이다. 수년 전 한국군의 한 합참의장은 전역식을 가진 후 불과 1시간 뒤 국방장관 취임식을 가져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군 출신이 국방수장 자리를 독점해 온 데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오랜 군사정권 아래서 형성된 왜곡된 문화와 인식의 영향이 크다. 왠지 군 출신이 장관에 앉아야만 국방이 제대로 굴러갈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조성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은 계속 미루어진 채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기무사에 의한 계엄문건이 터져 나옴에 따라 군에 대한 완전한 문민통제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들게 됐다. 기무사 문건은 한국군의 의식이 여전히 1980년을 전후한 과거에 갇혀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등 반 민주적 내용들로 가득하다. 단순한 대비문건으로 보기엔 내용 또한 너무나 구체적이다. 군은 아직도 자신들이 한국의 지배세력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상명하복에 의해 움직이는 군은 본래부터가 민주적 조직이 아니다. 일사분란을 강조하는 지휘체계 속에서 다양한 시각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사고의 폭이 좁을 뿐 아니라 극단적이고 과격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군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정무적·외교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장관자리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계엄문건 파동 후 해체수준의 기무사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군 개혁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분명하고도 확고한 문민통제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장성출신’이 아닌 ‘병장출신’ 민간인 국방장관을 기용하는 게 바로 그 시발점이다.
1차 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루즈 클레망소는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정치인이 하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막연한 안보불안감’이라는 말뚝에 묶어둔 채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심리적 목줄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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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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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병장이 국방장관에 가는 시대가 도래한것 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