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중 하나는 매일 스스로를 칭찬하는 습관이다. 일반적으로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는 남을 칭찬하거나 배려하기가 힘들다. 고래도 칭찬을 들으면 덩실 덩실 춤을 춘다고 하지 않는가. 문제 많은 자식도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잘한 일이 있을 경우 자주 그 일에 대해 칭찬을 해주면 그의 태도가 좋아진다는 임상결과도 있다.
칭찬은 자신을 향한 일종의 ‘앙코르’다. 정신과의사도 환자치료에 앙코르를 사용해야할 경우가 있다. 물론 자기 칭찬에 도가 지나치고 항상 자신을 중심에 세우고 타인을 관심 밖에 두면 자기애적 성격의 소유자란 비아냥을 듣게 된다. 그러니 자기자랑도 적당한 게 좋다.
아침에 일어나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간단히 스트레칭 한 다음 웃음 짓게 하는 유머 책의 한 구절을 읽으면 마음이 유쾌하고 여유가 생긴다. 그런 마음을 지니고 아침을 먹으면 입맛도 돌고 소화도 잘 된다. 이메일을 체크한 뒤 헬스센터로 가서 느린 뜀박질인 조깅으로 센터트랙 10 바퀴 돌면 1마일 정도인데 꼭 한 번 더 뛴다. 곧 이어 빠른 걸음으로 10 바퀴 돌고 한 번 더 걸을 때는 지치는 게 아니라 힘이 더 나서 즐겁고 자부심도 느낀다. ‘한 번 더’ 하는 나 자신에게 속으로 앙코르를 외치기 때문이다.
조깅을 하며 며칠 전 어느 벗으로 부터 날아온 이메일을 되새겨 본다. 거의 반세기 동안 알고 지내는 오랜 벗 중의 하나다. 몸에 여러 개의 줄과 관을 달고 병원의 침상에 누워서 쓴 유서 같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이었다.
암이란 중병이 삶과 죽음에 대해 관조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죽음이란 순환의 큰 섭리를 몸소 체험한 뒤에는 마음이 담담하고 평정한 상태임을 알려 왔다. 숨을 못 쉬는 증상은 암흑의 터널 속에 갇힌 야수의 부르짖음과도 같은 절망과 공포였다며 터널에서 빠져 나와 얼마만이라도 심신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죽기 전, 너무 늦기 전 인연의 끈이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화해와 용서를 나누기를 원하고 가능하면 장례식은 기독교 예식보다 한국 전통관습에 따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은 끝을 맺었다. 이메일을 읽으며 동안인 벗의 얼굴과 천진스런 웃음소리가 형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형수의 모습, 찌는 여름 소록도로 걸어갔던 문둥병 시인 한하운의 모습과 포개지며 눈에 아른거렸다.
Encore(앙코르)는 프랑스 말로 ‘한번 더’란 표현이다. 원래 음악 연주자가 관중의 박수와 환호에 대한 예의로 간단한 곡 하나 더 연주하는 관례이다. 또한 연극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진 뒤 같은 이유로 배우들이 무대에 다시 나와 관중들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앙코르’를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았다.
어느 한 날을 잡아 오피스로 찾아온 환자들에게 일일이 “당신에게 한 번 더 인생이 주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싶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전부 “아니오”를 기대했는데 한두명은 “예”라고 해서 놀랐다. 물론 정신과 환자라 잘 몰라서 그렇게 대답했겠지 했지만 어쩌면 싸움과 비극이 그치지 않는 세상을 피해 정신과 환자로 살아가는 게 그들에겐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잣대로 타인의 인생을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앞의 벗도 남들과 같이 좋은 일 굿은 일 모두 거치며 살고 있으나 보통 사람들에 비해 그리 순탄한 삶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온전히 그의 삶이다. 섣불리 따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정신분석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 말대로 이제는 우리 모두 지나간 삶을 결산하는 끝내기 작업을 해야 될 때인 듯싶다. 다가오는 삶의 종착역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지나간 세월의 부분적 실패와 불운에 집착하기보다 전체적으로 이만하면 괜찮았다는 만족감에 비중을 둔 감사의 생활태도가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그런데 어느 대학교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고령자들이 만약 저 세상이 존재하고 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지난 인생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한다. 현재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다른 삶을 동경하는 호기심의 발로일까? 아마 둘이 합쳐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 고통 속을 헤매는 벗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라면 나는 벗을 위해 삶의 앙코르를 외쳐보고 싶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미련의 소치라는 아인슈타인 말처럼 다음 세상에서 벗이 진정으로 원하고 추구하던 삶을 살기 위해 어서 뛰어가라고 벗의 등을 밀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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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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