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을 그것도 패키지 여행을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각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내가 패키지 여행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뭉쳐야 뜬다’ 를 보고 흥미가 생겼고 재미있겠다는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느 새 4번째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역시 같은 지역에서 친숙한 분들과의 여행이 편안하고 우리들의 친분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같다. 지난 4월 28일에 떠나 5월 9일까지(비엔나 하루가 추가된 일정) 12박 13일의 일정으로 발칸반도의 여러나라를 돌아보고, 마지막날 비엔나에서 지낸 하루는 단순히 여행이어서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미지의 나라들을 돌아보며 각 나라만의 풍경과 그들이 겪은 역사에 놀라기도 하고,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놓칠까 귀를 기울여 배움의 자세로 지낸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내전의 상처나 흔적이 아직 잔재한 듯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 커피 한 잔과 담배만 있으면 하루 일상생활에 만족한다는 젊은이들을 보며, 너무도 풍족하게 나태한 듯 살고있는 나의 생활을 돌아보며 좀더 겸손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Day 1 & 2
루마니아에 도착하여 1989년의 시민혁명이 일어난 광장에서 독재자를 몰아내기위해 희생한 젊은이들을 생각해봤다. 그들의 희생을 기념하여 세워진 위령탑을 보며, ‘Freedom is not free’ 이라는 문구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옛 공산당의 잔재가 아직도 남은 듯한 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현지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로 다음 행선지인 드라큘라성을 둘러싼 배경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동시에, 환상이 아닌 실지의 드라큘라를 넌지시 볼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 그는 영화속의 인물이었나보다.
King Carol 1세의 지시로 1873년에 시공되어 1883년에 완공이 된 펠레스 성은 1947년까지 왕족들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되었다 하는데, 방만 160개가 된다고 했다. 내부공사중이어서 안타깝게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지리적으로 너무도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엄청난 힐링이 되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Day 3 & 4
장미 오일과 장수나라의 명성을 갖게해준 유산균제품으로 널리 알려진 불가리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우리는, 13세기에 궁전을 방어했던 요새로 향했다. 그곳에서 터키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궁전, 교회들과 400여채의 집들의 터를 볼 수 있었는데, 아직도 유물들을 캐고 있는 듯했다. 요새의 꼭대기에는 축복받은 구세주 교회가 있는데, 그 내부의 그림들은 전혀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마치 공산권의 혁명과 관련이 있는 듯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다.
곧바로, 근처의 불가리아의 전통마을인 아르바나시로 향했는데, 그곳의 정겨운 풍경, 특유의 담장이 마치 한국의 담장인듯 착각을 하기도 했다. 과거 역사속의 나라의 흥망에 얽힌 이야기는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게 했다.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지어졌다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라 불리는 작은 교회는 남자들의 섹션, 여자들의 섹션, 그리고 갤러리로 나눠져 있는데 남자들의 섹션의 벽화는 1597년 부터 그려졌다고 하는데, 지진으로 몇군데 금이 간곳이 있었고 벽화가 손상되는 것을 염려해서인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화창한 날씨에 감사하며 우리는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로 이동을 했는데, 소피아의 중심지인 레닌 광장을 시작으로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을 돌았다. 네오 비잔틴 양식의 성당은 1877년에서 1878년 사이에 있었던 러시아와 터키간의 전쟁에서 희생한 20만명의 러시아, 유크레니안, 그리고 불가리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20세기 초에 건축된 동방 정교회이다. 소피아 곳곳에 아직도 유적지를 발굴하고 있는 광경이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우리는 장미오일 등의 기념품을 사는 것도 잊지않았다.
Day 5
흔히 발칸 내전이라고도 하는 보스니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되면서 시작이 되었는데, 보스니아 이슬람족(43%), 보스니아 세르브족(33%), 보스니아 크로아트족(17%), 그리고 나머지 슬로바니아족과 마세도니아족간의 분쟁으로 1992년 4월에 시작되어 3년간 지속되었다.
세르비아의 수도인 벨그라드에 도착해서의 첫 느낌은 왠지 모를 짠한 마음으로 길거리의 젊은이들에게서도 밝은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해 아픔과 고통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한국인 남편과 상처한 세르비아인 현지 가이드가 들려주는 인종차별의 이야기로 잠시 생각에 잠기게 했고, 상호가 없이 “?” 마크로 영업중인 카페의 사연에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자주 상호를 바꿔야했던 가게 주인의 고뇌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그의 지혜로움에 박수를 보냈다.
Day 6
보스니아와 허르체고비나를 합하여 흔히 보스니아로 일컫는데, 그 수도인 사라예보는 동서의 문화가 오래전서부터 혼합된 곳으로 역사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 곳이다.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라틴 다리는 1914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도 대공이 암살되어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라예보는 우리에게 1973년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수들이 여자단체 우승으로 세계 제패를 이룬 곳으로 익숙해있고, 1984년 동계 올림픽을 치루면서 친숙해진 곳이다.
하지만, 1992년부터의 보스니아 내전의 중심지가 되면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살되고, 곳곳의 총탄의 흔적이 남은 건물들은 그들의 슬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는, U2 의 보노가 부른 ‘Miss Sarajevo’ 의 비디오를 떠올리며 더욱 내전의 아픔을 겪었을 여인들을 상상해보았다. 사라예보에서는 멀리 말레이지아나 인도네시아에서 찾을 만큼 이슬람교도가 지배적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인종간의 갈등, 그리고 종교분쟁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모스타르 다리는 허르체고비나 지역의 상징적인 다리인데, 보스니아와의 민족간의 화해의 징표라고도 한다. 16세기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지어진 발칸의 이슬람 건축의 상징이라고도 하는데, 90년대초의 보스니아 분쟁으로 폭파되었다가 2004년에 복구되었는데, 문화와 종교가 다른 민족간의 화합과 공존의 상징이 되었다.
Day 7 & 8
EU 가입국으로 조금은 부유한 환경이라는 인상의 크로아티아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로 알려진 두브로브니크였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라는 닉네임에 어울리게 짙푸른 바다를 흰 성벽을 돌며 감상했는데, 이곳 역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때의 폭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거의 복구가 되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과 아드리아해를 정상에서 보려면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야하는데, 바람이 너무 심해 우리는 자동차를 대여해서 올라 색채가 다양하고 화려한 멋진 광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곳은 특히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붐벼 자주 한국어 대화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어서, 로마황제의 여름 휴양지였고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이라 불리는 스플릿으로 이동하여 유네스토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고적지 디오클레시안 궁전을 돌고, 해변길에 놓인 벤치에 않아 정박된 멋진 요트와 범선을 감상하며 여유를 만끽했다.
다음날,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되었고, 16개의 호수로 구성된 크로아티아의 가장 아름다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향했다. 청량음료와도 같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공원내의 연결된 16개의 호수가 만드는 폭포소리를 마치 심포니의 향연으로 착각했었고, 어쩌면 이처럼 멋진 하모니는 내게 필요한 힐링선물이라고 생각했다.
Day 9 & 10
이번 여행이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후니쿨라를 타고 크로아티아의 저명한 정치인이었던 스트로스메이어의 이름을 딴 스트로스메이어 산책로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그레브의 시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고, 13세기경 지었다는 고딕양식의 새인트 마크 교회의 그림같은 특이한 타일모습의 지붕에 감탄했는데, 이 교회는 자그레브의 상징적인 건물로 꼽힌다고 한다. 그리고, 빨간우산들을 펼치고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을 진열한 도랙 시장을 산책하듯 느긋하게 둘러본 후, 자그레브 대주교가 위치한 캡톨의 자그레브 성당으로 향했다.
1217년에 완성된 자그레브 성당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하지만,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랜드마크로 자그레브의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인다고 한다. 1880년에 6.3 강도의 지진으로 크게 손상된 이 성당은 여러차례의 복구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성당앞에 오래된 시계는 지진이 일어났던 7시 3분에 멈춘채로 벽에 걸려있어 우리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자그레브를 뒤로하고 우리는 미국의 영부인인 멜라니아의 모국인 슬로바니아의 Postojna 동굴에 도착했는데, 약 15분 정도의 지하열차를 타고 동굴탐험을 했는데, 이 동굴은 웅장한 동굴 구조물과 다양한 동물군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동굴로 꼽힌다고 했다. 수백만년 동안 작은 물방울에 의해 형성된 신비로운 지하의 낙원을 경험하는 듯했는데, 이 동굴안에 무서운 용이 살고있었다고 오래전부터 현지 주민들은 믿었고, 표면이 백색으로 긴 몸에 특이한 4개의 다리가 달린 조류가 아기 용이라고 했다. 이처럼 자연이 만든 걸작은 버지니아의 루레이 동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일행중 누군가가 놀랍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Day 11
슬로바니아에서의 마지 말 일정은, 핸섬한 사공이 손으로 젓는 보트를 타고 Bled 호수 가운데의 작은 섬에 위치한 성모승천의 이야기가 담긴 작고 아름다운 교회를 방문하는 일과로 시작되었다. 1509년에 지진으로 파괴가 되었다가 17세기 말경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졌다는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들이 많다고 했고, 오래도록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신랑이 신부를 안고서 99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야하는데, 그 사이 신부는 계속 침묵을 지켜야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또한, 교회안에 있는 ‘기원의 종’ 을 세번 울리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도 있다고 하여, 우리 모두는 차례차례 종을 울리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이어서, 얼마전 방영된 한국 드라마 촬영지였던 블레드 성으로 이동을 했는데, 성위에서 내려다본 블레드 섬은 평온하기가 그지없었다.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유에서인지,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기는 했지만 마치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나 않은지 그래서 꼭 다시 돌아와야하는 곳이라고 잠시 망상에 잠겼다.
Conclusion
여행은 나에게 밀린 휴식을 주며 재충전을 아낌없이 하게 한다. 그리고, 함께 여행을 했던 지인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다음 여행지를 의논하면서 설렘으로 들뜨게 한다. 어쩌면 여행은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을 되풀이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활력소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의 행복함을 충만케 만들어준 일행들에게 감사하고, 기획해준 여행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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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남<한인여성회장/전 연방사회보장국 선임홍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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