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요즘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들라면 단연 윤리(倫理)가 아닐까 한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에는 도덕이나 윤리 과목이 가장 쉬웠던 기억이 난다. 대개 도덕이나 윤리는 당위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에, 문제 중에서 바르다고 생각되는 것 혹은 정직하고 사회규범에 맞는 것을 고르면 그게 답이었다.
그런데 요즘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다보니 윤리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급변하는 세상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올바른 윤리적 성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윤리적 삶의 실천은 더더욱 어렵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는 윤리를 필요로 한다. 가정윤리, 개인윤리, 사회윤리, 기업윤리, 종교윤리, 의료윤리, 연구윤리, 환경윤리, 생명윤리 등등 윤리와 무관한 일은 없는 듯하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일조차도 실은 매우 중요한 윤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얼마 전에 새우 게 가재 등 ‘갑각류’나 문어 낙지 오징어 같은 ‘두족류’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기사를 보았다. 척추동물만 고통을 느낀다는 종래의 상식을 깬 것이다. 이제는 이런 살아있는 해산물을 요리할 때에도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부응하여 스위스 정부는 동물보호법을 바꾸어 바다가재를 직접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관행을 법으로 금하였고, 이탈리아도 비슷한 조치를 했다고 한다. 요리에도 윤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요즘 플라스틱 쓰레기가 지구를 오염시키고, 거북이나 고래 등 바다동물이나 육지의 동물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안타까운 보도를 접한다. 플라스틱 제품은 분해되면서 많은 양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microbead)를 발생시키는데 이는 토양이나 상수도원인 계곡과 강물 그리고 바닷물에 녹아들고 여기에 사는 어류나 조류 등의 몸에 축적되어 결국에는 이를 섭취하는 사람의 몸에 발암물질로 들어온다고 한다.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만드는데 1초, 사용하는데 20분, 분해되는데 200~40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아마 앞으로 수백 년 동안 바다와 땅에 사는 생물들은 미세 플라스틱이나 이들의 변형인 환경호르몬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1950년대 전후 대중화된 플라스틱은 탄생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각광을 받았으나 한 세기가 되기도 전에 인류는 물론 지구의 모든 생물을 위험에 빠트리는 존재가 되었다. 어떤 환경운동가는 이미 미세 플라스틱으로 축척된 각종 해산물을 먹는 현대인을 일컬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그릇과 플라스틱 포크로, 플라스틱을 먹는 셈’이라고 말한다.
플라스틱 위험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가볍게 들을 일이 아니다. 하찮아 보이는 플라스틱 봉지 하나에도 철저하고 세심한 윤리가 있어야 한다.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과 윤리적 삶이 요청된다.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다. 숙고와 성찰에 근거한 신중한 ‘윤리’적 판단과 행동을 요청하는 말이다. 숙고를 통한 새로운 윤리가 나와야 한다.
새로운 윤리는 인간은 물론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윤리학자 윌리엄 슈바이커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인간중심적 윤리에서 나아가 모든 존재를 끌어안는 윤리여야 한다. 인간의 이웃인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배려하고 피해나 고통을 덜 주며 살아가는 윤리, 인류의 생존은 물론 인간과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윤리(Global Ethic)가 나와야 한다.
해산물을 요리할 때에도, 플라스틱 봉지 하나에도 윤리가 있어야 한다. 세심한 윤리적 성찰이 있을 때 모두의 생명을 위하여 기꺼이 불편을 참고, 단호하게 플라스틱 봉지를 거부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지구 윤리적 삶이 나온다.
이것이 지구 가족 모두를 품에 안는 사랑의 실천이다. 윤리적 성찰에서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자제하는 운동이나 아예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금지하는 정부의 결정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나도 모르게 손에 플라스틱 봉지가 쥐어질 때가 있으니 윤리는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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