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토 소스로 푹 삶은 양지에, 상큼한 라임 뿌린 ‘로파 비에하’
▶ 카리브해 밥상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
라 아바나의 로파 비에하. 오래된 낡은 옷이란 뜻으로, 소고기 양지를 토마토 소스에 푹 삶아 낸다. <잇쎈틱 제공>
제주도 서쪽에서 쿠바 음식을 파는 라 아바나의 플랜. 푸딩 위에 크림을 얹은 달콤한 디저트다. <잇쎈틱 제공>
아레파 그릴의 돈냐 베네수엘라. 옥수수로 만든 아레파 빵 속에 고기를 푹 끓인 파베용이 들어간다. <잇쎈틱 제공>
라 아바나의 우에보스 아바네로스. 우에보스는 계란이란 뜻으로, 쿠바에서 아침 식사로 주로 먹는다. <잇쎈틱 제공>
아레파 그릴의 라 메히카나 아레파. 과카몰레, 할라피뇨, 고수, 블랙빈이 다른 아레파에 비해 두 배가 들어간다. <잇쎈틱 제공>
뭍에 사는 이들에게 제주는 낭만과 여유가 있는 곳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가고 싶은 곳이자, 한국인들에게도 계절마다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제주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한 시간만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제주 공항의 야자수가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한다. 섬의 최고 장점인 신선한 해산물과 맛있는 돼지고기, 깨끗한 환경에서 나는 채소 등 풍성한 먹거리 또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런 신선한 재료들이 한국음식이 아닌 이국적인 매력으로 탄생될 수도 있다. 바로 카리브해의 맛과 멋을 품은 음식들이다. 멀다고 모른척하기엔,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지역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다. 카리브해 지역으로 떠나고 싶은 이들이여, 우선 제주로 떠나보자.
토마토소스에 4시간 푹 삶은 소고기
카리브해는 지구본을 한국에서부터 반 바퀴 돌려야 찾을 수 있다. 미국 남동부 아래쪽, 멕시코만 옆의 바다이다. 크고 작은 섬들과 남미의 북쪽 나라들이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있다. 멀수록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궁금하고 또 기회만 있다면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나 있을 법한 곳이다.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가장 큰 섬,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 중 유일하게 사회주의 국가로 남은, 베일에 싸인 곳이다. 지리적으로 미국 플로리다주와 가까워 쿠바 샌드위치를 비롯한 쿠바 음식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친근하다. 제주도 서쪽 음식점 라 아바나에서 쿠바의 맛을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손에서 탄생하는 쿠바맛은 어떨까.
식당은 테이블 4개를 갖춘 작은 규모지만 진한 초록색 벽과 큰 쿠바 국기가 확실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라 아바나의 김재형 대표는 직장생활 후 쿠바 여행을 갔다가 쿠바의 매력에 빠졌다. 숙소도 교통도 아직은 열악한 곳이지만 연중기온 28℃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 카리브해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알록달록 예쁜 건물, 그리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 음악과 춤을 즐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여행의 편리함 보다는 그 공간의 에너지가 김 대표의 마음을 훔친 듯하다.
쿠바에는 호텔보다 현지인들의 삶을 깊이 볼 수 있는 작은 숙소에서 여행객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는 호스트들이 많다. 쿠바는 음식점 보다는 오히려 집밥에서 더욱 쿠바를 잘 느낄 수 있다. 김 대표가 호스트의 어깨 너머로 배운 쿠바 음식은 정성과 영양이 듬뿍 들어 있어 어떤 비싼 요리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이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심플하게 표현해낸 맛이 라 아바나의 특징이다. 대표 메뉴 로파 비에하(Ropa Vieja)는 쿠바의 국민음식으로 꼭 먹어봐야 한다. 로파 비에하는 ‘오래된 낡은 옷’이란 뜻인데 아마도 소고기가 부드럽게 찢어진 모습 때문일 것이다. 정성을 담아 푹 끓여내면 입에서 녹듯이 부드러워지는 소고기 양지를 토마토소스에 4시간 가량 푹 삶는다. 잘 익은 양지를 손으로 결 따라 쪽쪽 찢어 검은콩 요리(Frijoles Negros)와 플랜테인(바나나와 비슷한 열대과일) 튀김에 밥과 함께 한 접시에 담아 먹는다. 검은콩은 밥 위에 올려 라임을 뿌려먹어야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쿠바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처음 간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에 길게 쓰인 음식 이름을 보면 감히 발음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글로 쓰여 있어도 더듬더듬 읽게 되니 맛을 보기 전부터 살짝 위축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에보스 아바네로스(Huevos Habaneros) 정도는 한번쯤 폼 나게 외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에보스는 계란이고, 아바네로스는 아바나(쿠바의 수도)식이라는 뜻과 아바네로 고추를 넣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바네로 고추는 중남미에서 많이 먹는 고추인데 한번 만지면 바로 손을 씻어야 할 만큼 맵다. 우에보스 아바네로스는 아침 식사로 주로 먹기 때문에 매콤한 맛보다는 파프리카와 양파로 야채의 건강한 단맛을 충분히 내 맛과 영양 둘 다 만족스럽다.
쿠바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럼이 빠질 수 없다. 라 아바나에서는 럼베이스의 모히토 (Mojito), 다이끼리(Daiquiri), 쿠바 리브레(Cuba Libre)가 준비돼 있다. 럼에 콜라와 약간의 설탕 그리고 라임이 들어가는 쿠바 리브레는 ‘쿠바 해방(Free Cuba)’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세기말 쿠바에서 있었던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후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칵테일이다. 1900년대 초에 코카콜라가 쿠바로 수입되면서 대중이 편하게 마시는 칵테일로 자리 잡았다. 콜라와 설탕의 단맛과 상큼한 라임이 들어간 쿠바 리브레는 카리브해의 더위를 시원하게 내려준다.
손으로 들고 먹어야 제 맛, 돈냐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가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있듯 제주의 동쪽 바다를 바라보며 아레파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베네수엘라인인 엘로니스 엔리케 로페스 세데뇨씨와 성동희씨가 운영하는 아레파 그릴(Arepa Grill)이다. 아레파는 베네수엘라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먹을 정도로 현지인들의 삶이 묻어있는 음식이다. 세데뇨씨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만들어 준 아레파를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 방식 그대로 옥수수가루를 반죽해 동글동글 두툼하게 손으로 빚어낸다. 그릴에 올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워낸 후, 빵을 반으로 갈라 버터를 듬뿍 발라준다. 구워진 모양은 마치 우리의 옛날 호떡과 비슷하다. 하지만 식감은 쫄깃함보다는 뚝뚝 끊어지듯 거친 옥수수가루 특유의 질감과 은근한 고소함이 입안에 감돈다. 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들을 빛내기 위해 아레파 빵은 묵묵히 지원해줄 뿐이다.
예부터 베네수엘라는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될 만큼 식자원이 풍부했던 땅이다. 스페인 식민지를 거치며 스페인 문화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본토 원주민들이 조화를 이룬 다채로운 문화를 이루게 됐다. 여러 민족의 유입은 결국 식탁 위에 다양성과 새로운 변화들을 생기게 한다. 고소하게 구워진 아레파에도 어떤 재료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무한 변신이 가능하다.
베네수엘라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고기를 푹 끓여 블랙빈과 같이 먹는 파베용(Pabellon)이 들어간 아레파, 돈냐 베네수엘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파베용은 원주민들이 먹던 플랜테인과 아프리카 콩, 소고기 그리고 스페인 치즈가 조합된 음식이다. 튀긴 바나나가 곁들여져 고소하면서 진한 단맛이 난다. 단연코 이 집 간판 메뉴이다. 파베용은 위에서 말한 쿠바의 로파 비에하와 비슷한 음식이다. 들어가는 재료도 같고 고기를 끓여내 얇게 찢어내는 것도 비슷하다. 아마도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스페인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미노 아레파는 튀긴 바나나와 구운 가지, 검은 콩과 치즈가 들어간다. 특히 채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메뉴다. 과카몰레, 할라피뇨, 고수, 블랙빈 등이 다른 아레파에 비해 두 배가 들어가는 라 메히카나는 멕시코의 타코와 비슷한 맛이어서 멕시코의 맛과 든든한 한끼를 모두 잡고픈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아레파를 맛있게 먹는 팁이 있다. 무릎에 큰 냅킨을 깔고 포크, 나이프는 옆으로 살짝 치워둔다. 이때 안에 있는 치즈가 살짝 녹을 수 있게 따뜻하게 나온 아레파를 조금 눌러주고 햄버거를 먹듯 손으로 들고 먹어야 진정한 아레파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성동희씨는 “칼로 잘라 먹으면 우리나라 쌈밥을 쌈 따로 밥 따로 고기 따로 먹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아레파는 테이블에 준비된 실란트로 소스와 하우스오일 소스를 곁들이면 더욱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남미하면 사탕수수를 빼 놓을 수 없다. 사탕수수의 영양소는 살리면서 정제과정은 거치지 않아 건강한 단맛을 내는 파넬라가 있다. 파넬라에 물을 넣고 시원하게 마시는 파넬라 아구아와 우유에 파넬라를 넣은 파넬라 콘레체는 달콤하게 갈증을 날려준다. 한국에서 파넬라 음료를 파는 곳은 거의 없어 한잔 마셔봐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문화를 알리는 것은 더 이상 대사관이나 문화예술인만의 몫은 아닌듯하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청년은 쿠바 여행길에서 먹은 맛있는 로파 비에하로 쿠바의 맛과 문화를 전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여성은 남편의 나라 베네수엘라 음식을 알리고자 한국에서 아레파의 씨앗을 심고 있다. 요리에 대한 전문과정을 밟은 정식 셰프는 아니지만 타국의 맛과 문화를 존중하는 그들의 마음과 열정으로 우리는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는 수고스러움 없이 한국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국민음식을 맛 볼 수 있다.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쿠바 리브레를 마시고 아레파를 한입 베어 무니 카리브해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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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 샘플ㆍ박은선 잇쎈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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