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드 자카리아
귀를 기울여보라. 지난 수요일 EU집행위원장과 미합중국 대통령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들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또 다시 뒷걸음질 치는 소리였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진 판에 박힌 절차다. 수순은 이렇다 : 먼저 상대방을 조롱하고 모욕한다. 일부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지만, 대부분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이어 엄청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엄포를 날린 후 뒷걸음질을 치면서 세계를 위기로부터 건져냈노라 의기양양해 한다. 하지만 애초에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트럼프의 두 박자 춤이다.
북한과 관련해 트럼프가 취한 행동을 떠올려 보라. 그는 김정은을 “자국민의 배를 곯리고, 학살하는 미치광이”로 매도하고, 전 세계가 이제까지 전혀 본 적이 없는 “화염과 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날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김정은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하는 것으로 스스로 자초한 위기를 해결한 그는 북한 주민들이 절대 지존인 독재자 김정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자신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이와 동일한 패턴은 바로 얼마 전 트럼프로부터 “적대국 뺨친다”는 비난을 샀던 유럽연합(EU)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과 회담을 마친 뒤 트럼프는 미국과 EU는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중국에 대해서도 수위를 크게 낮춘 발언이 나올 것이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두 박자 댄스는 트럼프에겐 전혀 밑질게 없는 전략이다. 어차피 그의 말은 무게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쓴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라는 책은 “진실된 과장”(truthful hyperbole)에 관한 묘사로 시작된다. (이는 그가 수시로 내뱉는 뻔한 거짓말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일단 진실된 과장으로 협상을 시작했다가 반박에 부딪히면 이를 현실에 근접한 방향으로 슬며시 수정하는 전략이다.
겉보기엔 황당하고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의 행동이 실은 약삭빠르고 현명한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일종의 4차원 장기를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지금 지구라는 공간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트럼프가 상대방으로부터 진정한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협상과 유럽과의 무역협상에서 보듯 그의 통상적 접근법은 지극히 모호한 내용의 발표문을 내놓거나 2024년까지 방위비 분담금을 GDP의 2%로 인상한다는 나토 회원국들의 사전 합의사항을 슬쩍 틀어 마치 자신이 새로 얻어낸 성과물인양 포장해 승리를 주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엄포를 가한 다음 후퇴하는 전략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의 두 박자 춤으로 인해 미국은 변덕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믿고 의지할 수 없을뿐더러 근본적으로 세계질서에 적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평판에 금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다투어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조지 오스본은 자신이 영국 재무장관으로 재직할 당시만 해도 “미국 대통령은 등을 맡길 만한 든든한 우군”이었지만 영국은 물론 그 어느 국가도 이제는 더 이상 그 같은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인 도널드 투스크도 “저런 친구라면 적과 다를 게 무엇이냐”며 “친구란 도움을 요청하는 손이 닿을만한 거리에 서있는 자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제전문가인 아담 포센은 지구촌의 국가들이 미국을 우회해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부터 EU가 얼마 전 일본과 체결한 쌍무협정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제외한 무역협정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들 이외의 다른 많은 협상도 진행 중인 상태다.
포센에 따르면 지구촌 전체가 미국을 비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증거는 해외투자 감소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외투자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 듯 수직낙하 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입된 평균 순해외투자는 2012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포센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대미 직접투자를 밀어 올릴만한 숱한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액이 오히려 감소했기에 더욱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를 통과한 재정부양책으로 말미암아 미국 경제의 성장전망을 높여줄 지출증가, 국내생산에 탄력을 제공할 세제개편, 기업세 인하 등 세 가지 요인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해외 직접투자가 당연히 늘어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의 부국들 가운데 미국만이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결합된 양호한 성장전망을 보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투자 감소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트럼프의 무역과 우방국에 대한 공격, 마음 내키는 대로 개별기업을 벌주거나 포상하려드는 태도, 미더움을 주지 못하는 일반적인 성향 등을 한군데로 모으면 독재자가 통치하는 말썽 많은 국가의 정책결정을 연상시키는 한편의 그림이 완성된다.
굳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오직 미국의 독재자만이 글로벌 경제 전체를 교란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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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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