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 참석해 우방국들을 한껏 조롱하면서 회원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을 4% 증액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놓았다.
방위비 증액 요구 자체는 지당한 것이었지만 그가 제시한 4% 인상폭은 크게 늘어난 미국 국방예산 인상률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트럼프는 이어 자신이 나토 회원국들로부터 중요한 양보를 얻어냈다는 가짜뉴스로 자가발전을 했고,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는 “현재로선 불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나토 정상회담에서 우방국들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대답은 “No”다. 트럼프에게 나토를 교란시키는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이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무역전쟁과 기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다. 트럼프는 무역 상대국들이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고수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중국에게는 어느 정도 타당한 지적일지 모르나 캐나다, 혹은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불만이다.
여기서도 그의 요구에는 일관성이 없다. 트럼프는 보복관세라는 폭탄세례를 받은 국가들이 그의 마음을 풀어놓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그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공격을 받은 국가들로서는 보복에 나서는 것 외에 달리 대응방법이 없는 셈이다.
말하자면 그는 교역 상대국으로부터 모종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무역 전쟁이라는 협박카드를 꺼내든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나토에서 탈퇴하겠노라고 연거푸 으름장을 내놓은 것처럼 벌써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협박성 의향을 밝힌 바 있다. 둘 다 같은 맥락이다.
그가 비난하는 다른 국가들의 잘못된 행동이 무엇이건, 종잡기 힘든 변덕스런 그의 요구가 무엇이건, 모두가 명백한 핑계요 속임수에 불과하다. 거래의 달인을 자처하는 그는 어떤 거래도 원치 않는다. 단지 기존의 것들을 모조리 해체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파괴하려 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의 주도로 창설됐다. 베를린 공수와 마셜플랜이 진행되었던 종전 후 수년간은 미국의 진정한 위대함을 만방에 과시한 시기였다.
당시 미국은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정복자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며, 대신 영구적 평화의 기초를 닦는데 주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도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이 정점을 찍었던 1947년에 체결됐다.
미국은 이때에도 미국산 물품에 대한 특별대우를 추구하지 않았고, 대신 세계 각국의 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게임의 법칙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나토가 창설된 1949년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력이 초절정기에 이르렀던 시기였지만 미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우방국은 물론 패전국들까지 격려하는 상호책임 시스템을 신설하는 한편 상호안보를 보존함에 있어 회원국들을 미국과 동등하게 취급했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은 이상적인 미국식 시스템, 즉 미국을 비롯한 모든 강대국들을 법의 통치에 종속시키는 한편 다른 약소국가들을 부당한 괴롭힘으로부터 막아주는 국제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실제로 약소국가들은 강대국들을 WTO에 제소해 승소판정을 받을 수 있고 나토에 속한 소국들은 다른 메이저 국가들과 동등한 무조건적인 안전보장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원하는 바는 바로 이런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불한당들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기가 뭐냐고? 서방연합을 약화시키면 블라드미르 푸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 대답이다.
트럼프는 말 그대로 러시아 첩자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 요원처럼 행동한다. 그것 이외에 트럼프는 약자와 강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법치라는 개념을 혐오한다.
국내적으로는 형사범인 인종차별주의자를 사면하고 국경지역 밀입국자의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떼어낸다. 국외적으로는 독재자들을 찬양하고, 민주적 지도자들을 조롱한다.
그는 미국의 위대한 세대에 속한 정치인들이 만든 국제기구를 지독히 혐오한다. 이들 위대한 정치인들은 세계 최강국의 막강한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자제하며 세계의 신용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국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트럼프는 다른 국가들이 속임수를 쓰고 미국의 관용을 악용하며, 부당한 관세를 부과하거나 제 몫의 방위비분담금을 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진정한 불만이 아니라 핑계에 불과하다. 그는 이들 국제기구를 개선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하고 싶어 한다.
트럼프의 파괴본능을 견제할 방법이 없을까? 아마 의회라면 일부 제동을 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소한 의회 내에 책임감을 지닌 애국적인 공화당 의원들이 남아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회가 아니라도 기존의 세계질서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대기업들이 효과적으로 항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 으름장으로 주식시장이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
투자자들은 트럼프가 엄포를 놓고, 잠시 트윗을 날리다 겉모양만 살짝 바꾸어 놓은 상대국가의 변화된 정책을 수용하며 승리를 선언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난한 사태수습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상대국들이 내놓은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방국 및 교역 파트너와의 협상이 성공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니, 협상이 실패로 끝나길 원한다. 그리고 모두가 이 같은 트럼프의 속내를 분명히 깨달을 즈음이면 나토와 WTO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은 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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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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