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처가 사장이 직원회식 자리에서 흥에 겨워 “공처가는 오른편에, 마초남편은 왼편에 모이시오”라고 지시했다. 모두들 오른편으로 몰려가 엉거주춤 섰지만 체격이 우람한 사원 한명은 의연하게 왼편에 섰다. 사장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지고”라고 치하하자 그 사원은 겸연쩍은 듯 “아닙니다. 사람들 많은 곳에 끼면 아내에게 야단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처가는 영어로 hen-pecked husband이다. 암탉에 쪼이는 수탉 같다는 뜻이다. 역사도 장구하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자신이 원조공처가로 치부된다. 이브가 건네준 금단의 열매를 찍소리 못하고 받아먹은 그는 여호와가 진노하자 “이브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라며 발뺌했다. 돈벌이가 신통찮았던 소크라테스가 아내 크산티페에게 물벼락 맞는 그림도 있다.
철학자가 아니라도 아내에게 쪼이는 남편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요즘 세태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졌고 사회진출 기회가 늘어났다. 부부 맞벌이가 사회규범이 됐을 뿐 아니라 남편보다 수입이 더 많은 아내들이 수두룩하다. 아예 아내가 돈벌이(Bread-winner) 역할을 전담하고 남편이 집에서 밥하기, 빨래하기, 애 보기 등 주부역할을 맡는 가정도 생긴다.
연방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맞벌이 부부 중 아내 수입이 남편보다 많은 가구비율은 1987년 17.8%에서 2013년 29.3%로 늘어났다. 2015년엔 38%로 더 늘어났다는 비공식 조사보고서도 있다. 4반세기 사이에 20% 포인트 이상 많아졌다는 계산이고, 맞벌이 부부 10가구 중 거의 4가구는 암탉이 수탉행세를 하는 역전된 가구구조라는 이야기다.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올 경우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는 건 가정상담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남편은 아내가 예전처럼 존경해주지 않음에 따라 가부장으로서의 자존심과 권위의식을 잃고 집안 일 대신 바깥의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는다. 성 관계가 뜸해지거나 아예 중단되고, 급기야 이혼으로까지 치닫는다.
시카고대학 경제팀이 1970~ 2000년 센서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돈 잘 버는 여자와 돈 못 버는 남자 사이의 결혼은 애당초 드물었고, 결혼이 이뤄졌다 해도 이혼으로 끝난 예가 많았다. 또 수입이 남편보다 많은 여자들은 의도적으로 자기 수준보다 낮은 일자리로 이직하려고 시도했고, 남편이 기죽지 않도록 집안일도 예전처럼 열심히 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지난날 얘기고 요즘 젊은이들은 다르다. 전국 밀레니얼 세대 3,100명을 대상으로 한 코네티컷대학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수입이 자기보다 많은 부인을 둔 남편들은 그렇지 않은 남편들보다 웰빙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부양 책임감이 해소된 탓이다. 아내들도 많은 수입에서 오는 자부심과 성취감 덕분에 웰빙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보다 더 특이한 조사보고서가 엊그제 보도됐다. 아내보다 수입이 떨어지는 남편들은 센서스 조사 때 자기 소득을 평균 2% 부풀리고, 아내 소득은 평균 2%를 깎아서 보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내들이 센서스에 응답할 때도 거짓말 상황은 비슷했다. 이들은 자기 소득은 평균 1% 이하를 줄이고, 남편 소득은 평균 3.7%를 부풀려 응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사를 위해 당국은 2003~ 2015년의 센서스 응답자들이 스스로 밝힌 소득액수와 같은 기간 고용주들이 연방 국세청(IRS)에 신고한 해당 응답자들의 봉급 지급액을 일일이 비교했다. IRS 자료는 절대적으로 정확하다. 허위신고를 법으로 금하기 때문이다. 센서스국은 응답자들이 소득을 얼마나 정직하게 밝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 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남편들이 자기 소득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것은 체면치레의 객기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아내들이 자기 소득을 스스로 줄이는 것은 의외다. 여성권리가 신장되고 고소득 여성 직업인들이 늘어났다지만 아내 소득이 남편보다 많은 건 전통적 가부장제도에서 아직도 떨떠름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소득 때문에 수탉이 암탉에 쪼일 상황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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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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