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비가 잘 오지는 않지만 한번 오면 퍼붓는다’(It never rains but pour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진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주말 미국과 한국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21일에는 LA를 대표하는 음식 평론가 조나단 골드가 57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7월 초에 암 발병 사실을 통보받고 7월 말에 숨을 거뒀다 한다. 사우스 LA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베벌리힐스 고교를 졸업하고 UCLA에서 음악사를 전공하며 락스타를 꿈꾸기도 했으나 음식 평론가로 진로를 바꿨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음식 평론가로 전 세계를 누비며 온갖 요리를 시식하다 최근 자살한 앤서니 보데인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1년에 2만 마일씩 다지 램 픽업트럭을 몰고 LA의 이름 없는 식당을 샅샅이 훑었다. 그는 지난 2월 평창 올림픽에 맞춰 LA타임스가 발행한 코리아타운 특집에서 그가 사랑한 한국 식당 38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음식평은 때로는 단순한 음식 소개를 넘어 시적이기까지 하다. 한 예로 그는 ‘부일 삼계탕’에 대해 “밋밋한 수프에 회색 바다 소금을 넣으면 맛이 마법처럼 피어난다. 밥을 감싸는 간 마늘, 마른 과일의 달콤함, 부드러운 닭살의 향기 등등”이라고 썼다. 그가 음식 평론가로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22일에는(미국 시간) 한국 진보 정치의 큰 별 노회찬이 떨어졌다. 드루킹 뇌물 수수 혐의로 특검 조사를 앞두고 있던 그가 아파트에서 몸을 날려 62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노의원은 고등학생 때 10월 유신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고 고려대 입학 후에는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동 운동에 헌신했다. 2004년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그는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한다”는 발언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1%대이던 진보 정당 지지율이 지금 10%로 올라선 것은 그의 공이 크다는 데 이론이 없다. 그는 유서에서 경공모로부터 4,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면서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해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썼다.
2009년 박연차 600만 달러 뇌물 수수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서를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적었다.
노무현과 노회찬의 죽음은 어째서 한국에서 한 때 폐족으로 불렸던 노무현 추종 세력이 재집권에 성공하고 진보가 뜨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에서 진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최소한 책임은 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돈을 받았다고 꼭 죽어야 하는 지 의문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신념과 추종 세력을 쏟아질 비난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반면 이명박과 박근혜는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돈과 관련된 추문으로 감옥에 갔는데 한 번도 참회다운 참회도, 속죄다운 속죄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추종자들 가운데 책임을 지고 자살은 그만 두고 정계 은퇴를 하는 인간도 없다. 그러고도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짓이다.
하늘은 이 둘로도 부족했는지 해방 이후 한국 최대 작가의 하나로 손꼽히는 최인훈을 데려갔다.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현실에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가는 길에 자살하는 이명준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광장’은 나온 지 6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도 남북 분단의 고통을 가장 치열하게 바라본 문학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0년 4월 혁명과 함께 탄생한 이 작품 서문에서 작가는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썼다.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그는 함북 회령 출신으로 서울 법대에 다니다 소설가가 된 후 ‘광장’ 이외에도 ‘회색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총독의 소리’ 등등 걸작을 남기며 한국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다. 세 사람 모두 각각 칼럼을 써도 좋을 정도의 인물인데 한꺼번에 이렇게 가다니 안타깝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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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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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6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미화가 아니라 선거 책임자가 절차를 어긴 선거법 때문에 부끄러워 자살 했는데 수백억씩 뇌물 처먹은 놈하고 같소
잘못은 솔직하게 인정해야지 자살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됩니다. 왜 자살을 미화 하는지요.
그 수구꼴통글은 옥뭐시기 아니였나??
허,,, 이 게 웬 일인가. 수구꼴통 노인네들이 좋아하는 글만 쓰시던 분이....
진보는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갖혀서 말라죽고 보수는 쏟아지는 돈에 깔려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