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린든 존슨이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지 50주년이 되던 해인 4년 전, 폴 라이언이 이끌던 공화당은 이 전쟁이 실패로 끝났음을 시인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공화당은 당시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과거 50년간 빈곤율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보고서는 빈곤 퇴치 캠페인이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짓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빈민지원 예산을 삭감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의 직속기구인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는 기존의 빈곤 표준척도에 결정적 하자가 있으며, 개량된 척도를 적용할 경우 지난 반세기 동안 빈곤퇴치에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의 새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빈곤문제 전문가 대다수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빈곤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안 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현실세계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인가?)
어쨌건 새로 나온 경제자문위원회 보고서는 “빈곤과의 전쟁이 거의 끝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자문위원들은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빈민들에 대한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보고서의 평가 내용은 정반대인데 결론은 완전히 일치한다.
사실 경제자문위 보고서는 공개적으로 베니핏 삭감을 촉구하지 않았다. 대신 메디케이드, 푸드 스탬프 및 다른 복지 프로그램을 신청하려는 저소득자에게 선결조건으로 취업을 요구한다. 이렇게 되면 프로그램 적용대상은 크게 축소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 복지프로그램 수령자가 축소되는 것은 노동참여인구 증가로 빈곤의 늪에서 탈출하는 극빈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빈민층에 속한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건강문제, 저임금 일자리의 불안정성, 과도한 서류작업 처리능력 부족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소셜 베니핏을 받는데 필요한 선결조건을 충족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빈민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실제 평가가 어떻게 나오건 빈민정책과 관련한 공화당의 결정은 늘 동일하다.
빈곤과의 전쟁이 실패로 끝났다면 성과 없는 빈민지원을 중단하는 게 맞고, 캠페인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더 이상 빈곤층을 도울 필요가 없으니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서 분명하게 해둘 일이 하나 있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 행정부 뿐 아니라 공화당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화당 주지사들은 저소득 주민들의 베니핏 삭감에 혈안이 되어 있다.
매트 베빈 켄터키 주지사는 메디케이드 수혜자격으로 엄격한 취업 규정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이 법에 위배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그는 메디케이드의 안과와 치과 커버리지를 갑작스레 없애버리는 보복조치를 취함으로써 수십만 명의 저소득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메인 주에서는 오바마 의료보험법에 따라 메디케이드를 확대하자는 주민투표안이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과됐지만 폴 리페이지 주지사는 법원의 명령에 아랑곳없이 소요 예산의 상당부분을 주정부가 부담하는 메디케이드의 확대 시행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리페이지 주지사는 메디케이드 확대로 저소득 주민들이 보험혜택을 받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가는 편을 택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추진해온 빈민과의 전쟁의 동기는 무엇일까?
인센티브는 분명 아니다. 미국은 일을 하지 않고 소셜시큐리티에 의존하려드는 무임 승차객들로 우글댄다는 우파의 일관된 주장을 보수주의자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체장애가 없는 대부분의 지원금 수령자들은 일을 한다; 이들 가운데 일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건강문제라든지 가족 병구완 등과 같은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베니핏을 삭감하면 이들 중 일부가 필사적인 절박감 때문에 인력시장으로 등 떠밀려 나오겠지만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심각한 타격을 입을 이들의 웰빙을 추스르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과도하게 후한 소셜 프로그램들이 노동력참여율 하락을 초래한다는 주장은 국제적인 사례만 보아도 즉각적인 반박이 가능하다. 유럽의 웰페어 국가들, 혹은 보수주의자들이 비아냥대듯 ‘추락 중인’ 웰페어 국가들은 저소득 가정에 우리보다 훨씬 후한 지원을 제공하며, 빈곤율 역시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지도국들에 거주하는 노동적령기 성인들의 취업률은 미국에 비해 훨씬 높다.
하지만 빈곤과의 전쟁이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돈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많은 공화당 주지사들은 주차원의 부담이 크지 않고, 오히려 연방정부로부터 많은 자금이 주 경제로 유입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메디케이드 확대를 거부하고 있다.
연방정부 역시 혹독하리만큼 사회복지 베니핏을 삭감하고 있다. 저소득층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안겨주면서까지 공화당이 절감하려 기를 쓰는 예산액은 지난해 이들이 감세를 통해 부유층에게 나눠준 액수와 비슷하다.
실제로는 인종에 관한 문제라는 전통적인 대답은 어떤가? 소셜 프로그램들은 피부색이 흰 미국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 지금도 이 같은 인식의 상당부분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공화당 지도자들은 비 히스패닉계 백인이 주류를 형성한 메인 주와 같은 곳에서조차 저소득층 주민들에 대한 지원예산 삭감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곤과의 전쟁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공화당 기반지지층을 동기화하는 것과 보수주의자 정치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당수의 블루컬러 백인들은 여전히 빈민들은 게으르고 일하기보다 웰페어에 의존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인 주의 경험에서 나타나듯 이런 믿음은 엘리트 정치인들이 추진하려는 빈곤과의 전쟁의 핵심부에 놓여 있지 않다.
게다가 엘리트들을 동기화하는 것은 이념이다. 그들의 커리어는 물론 정치적 정체성까지도 큰 정부는 늘 나쁘다는 개념으로 두텁게 싸여있다.
빈민지원 프로그램에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임승차자’들에 대한 적대감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정부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혐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된다면 사회는 절박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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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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